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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제패' 이성렬 유신고 감독, ''이번엔 꼭 세계대회 정상 서고파''

기사입력 : 2019.08.26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공유

[OSEN=박선양 기자]‘초심(初心)잡자’

올 시즌 고교야구 전국 최강을 자랑하는 수원 유신고 야구부 숙소에 걸려있는 표어이다. 야구에 관한한 엄하기로 정평이 난 이성렬(64) 감독의 지도관을 엿볼 수 있는 구호이다. ‘야구를 왜 하는가’, ‘유신고 야구부는 한 팀(one team)이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 감독은 ‘그라운드에서는 냉철한 승부사이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이 주변 지인들의 한결 같은 대답이다. 고교야구 최고령 지도자이기도 한 이감독은 유신고에서만 무려 26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다. 올 시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에 이어 청룡기까지 거머쥐며 지도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이성렬 감독을 만나보았다. 더욱이 이 감독은 8월 30일부터 부산 기장군에서 열리는 2019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한국대표팀 감독을 맡아 개인적으로 3번째 세계대회 정상에 도전한다.

-유신고에서 이처럼 오랜 동안 감독생활을 하고 있는 비결이라면.

◀서로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신뢰’라고 생각한다. 학교재단 이사장님, 교장 선생님 등 학교 관계자들, 학부모와 선수들이 보내준 신뢰, 그리고 동문회의 전폭적 지원 등이 한마음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온 것 같다. 내 지도방식을 믿고 맡겨주고 선수들이 잘 따라와준 덕분이다. 올해는 특히 총동창회가 물심양면으로 야구단을 성원해주면서 전국대회 제패로 이어지고 있다. 대회가 열리면 매일 야구장에 나와 응원하는 최동철 총동창회 회장은 사재를 출연하는 등 야구부 중흥을 위해 발벗고 나서서 감사하다.

-평소 선수들은 어떻게 지도하고 있습니까. 야구계에서는 ‘호랑이 감독’으로 유명한데.

◀다른 학교들과 큰 차이는 없다. 나는 야구 선수 이전에 인성을 갖춘 학생이 될 것을 강조한다. 아침에 학과 수업에 들어가기 전 야구부는 따로 조례를 실시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운동시간에는 야구적인 실수로 선수들을 나무라는 일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생활태도에서 잘못됐을 때 혼을 내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야구는 잘하는데 게으름을 피우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는 선수를 엄하게 다스린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요령을 피우면 혼을 낸다. 현재 야구부 숙소에는 전체 선수(36명) 중 절반 정도가 들어와 생활하고 있는데 학부모들이 더 많이 받아달라고 한다. 내가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인지 학부모들이 집에서 관리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내가 힘들어서 그렇게 못하겠다고 말린다. (인터뷰하는 도중에 야구부 숙소를 찾은 졸업생(kt 투수 이선우)이 후배들에게 아이스크림 한 보따리를 사와 나눠주면서 이 감독에게도 건네자 ‘빨리 스타돼 엄마한테 잘하라’며 호랑이 아닌 아버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감독은 졸업생들이 종종 찾아와서는 후배들에게 ‘학교에서 만큼 생활하면 군대도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한다며 웃었다. 그만큼 엄격한 생활관리로 선수들이 잘 성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학부모들도 종종 반발하는 요즘 시대에 선수들을 엄격하게 지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야구선수이기 전에 학생이다. 인성이 제대로 된 선수가 돼야 나중에 제대로 살 수 있다. 야구를 평생 할 수는 없으니까 은퇴 이후에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인성을 갖춰야 하기에 엄하게 하는 것이다. 학부모들과는 금전적인 문제, 관계 등에서 내 처신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학생들도 보고 인정하게 된다. 물론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오지 않는 선수나 학부모도 있지만 내 지도방식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야구부 숙소에서 선수들과 함게 생활하고 있다. 언제부터 함께 했나요

◀유신고에 근무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서울 집에는 일주일에 2번 정도 간다. 결혼생활 40년 중에서 가족들과 지낸 것은 5년 정도밖에 안되는 것 같다. 자영업을 하며 내조해준 아내와 잘 성장해준 딸과 아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덕수상고-광주진흥고를 거쳐서 유신고까지 가족들과는 떨어져 지내며 선수들, 야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구 지도자를 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야구는 대구에서 시작했다. 경상중을 나왔고 서울 배문고로 올라와서 김인식 감독님 밑에서 배웠다.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발 빠른 1번 타자였다. 공군 야구단인 성무를 나와 건설회사에 취업, 1980년대 한창 붐이었던 중동 건설 현장을 나가려고 친구 아버지 회사에서 준비하다가 우연히 서울 이문초등학교 감독을 겸업하게 되면서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됐다. 오전에는 회사 근무를 하고 오후에 선수들을 지도했는데 이문초등학교가 서울시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지도자로 전념하게 됐다.

-고교 감독은 언제부터 했나요.

◀이문초등학교에서 연거푸 우승하면서 인정을 받았고 덕수상고 감독을 맡게 됐다. 1985년 덕수상고(현 덕수정보고) 사령탑을 맡아 1986년 청룡기대회서 팀을 전국대회 정상에 올려놓았다. 신생팀이었던 덕수상고 야구부의 창단 첫 전국대회 우승이었다. 덕수상고서 3년반을 지낸 후 광주진흥고에서 감독을 4년 정도 하다가 몸이 안 좋아져서 그만두고 잠시 쉬었다가 유신고를 맡아 현재에 이르렀다. 1994년부터 유신고를 맡아 꾸준히 전국대회서 4강 이상에 들다가 2005년 봉황대기와 미추홀기 우승을 차지했다. 지금까지 준우승은 4회 했다. 현재 프로야구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류한준(kt), 최정(SK), 정수빈(두산), 김민(kt) 등이 유신고 출신 제자들이다. 모두 인성과 실력을 갖춘 선수들로 자랑스럽다. 이들이 스타가 되고, 장가를 가서 하는 얘기가 ‘학생시절 감독님이 왜 그렇게 엄하게 했는지 이제 알겠다’고 한다. 우리 학교는 매년 겨울 야구동문, 학부모 등이 모두 모여 ‘야구인 밤’이라는 행사를 가지며 가족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최근 아마야구에서 실시하고 있는 투구수 제한과 함께 변화구 투구 자제에 대해 찬성의견을 적극 피력했다. 어떤 의미인가요.

◀야구 선수로서 최종 성장은 프로야구에서 이뤄져야 한다. 아마야구는 그 과정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어린 투수들의 투구수 제한은 필요하다. 다만 선수층 등을 고려한 탄력적인 운용이 필요하다. 변화구 투구 제한도 마찬가지이다. 신체적으로 한창 성장중인 고교 투수가 부상 위험이 큰 변화구를 많이 던지면 좋지 않다. 투수들에게 변화구를 아예 못 던지게 할 수는 없다. 나는 투수들에게 직구와 변화구 비율을 8대2 정도로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감독 자리를 너무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다는 말들도 있는데.

◀유신고에서 학교 교직원으로 정년퇴직을 하고 현재는 1년마다 계약직으로 감독을 맡고 있다. 성적이 나지 않으면 떠나는 것이고 능력 있는 제자에게 물려줄 계획도 갖고 있다. 주위에서는 아직도 감독하냐며 말들이 많지만 나를 뛰어넘는 후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나도 누구 못지않게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열정이 있기에 그라운드에 남아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뤄야 할 목표는.

◀유신고가 야구 명문고의 위상을 계속 지키게 하고 좋은 선수들을 계속 키워내는 것이다. 그리고 4번째 맡게 된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세계 정상에 서고 싶다. 올 8월말 부산 기장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전 3번의 출전에서 준우승에 머물러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꼭 우승컵을 들고 싶다.

/sun@osen.co.kr

<이 감독을 둘러싸고 있는 2가지 오해에 대한 해명>

이성렬 감독은 올해 생애 4번째로 청소년야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는다. 이 감독은 2005년 세계대회에 이어 2016년 아시아대회 그리고 2017년 세계대회에 감독을 맡아 출전하면서 뜻하지 않게 구설수에 올랐다. 대표적인 것이 2017년 대회 당시 투수 곽빈(두산)에 대한 혹사 논란과 이번 4번째 감독직을 맡는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이다.

이 두가지 논란에 대해 이 감독은 단호하게 해명했다. 2017년 미국전에서 당시 에이스 투수였던 곽빈이 8회 1사까지 144개를 던져 혹사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7회까지 0-0으로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투구수가 108개 됐을 때 곽빈에게 그만던지는 것이 좋겠다고 했는데 더 던지겠다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당시 말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또 4번째 국가대표 감독이 되는 과정에서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2005년 첫 번째 지휘봉은 당해년도 성적 우선에 따라 전국대회(봉황대기, 미추홀기) 우승 감독 자격으로 당연하게 돼 출전, 동메달을 땄고 2016년 아시아대표 때는 대한야구협회가 관리단체가 돼 대한체육회에서 입시비리 등이 없는 지도자로 선정됐다고 한다. 2017년에는 야구협회에서 성적, 지도력, 경력 등 각부문별 성적을 평가해서 대표팀 감독직을 맡아 준우승 했다. 그리고 올해는 공모를 통해 선정됐는데 특혜를 받은 것처럼 비춰져 억울하다고 강변한다.

[이 기사는 월간지 OSEN+ 8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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