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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최국 및 개최 도시

history

1. 폴란드
폴란드는 지리학적으로 유럽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인구 4000만 명 정도가 산다. 인근에는 벨라루스 공국, 체코, 독일, 리투아니아, 러시아, 슬로바키아, 그리고 유로 2012 공동 개최국인 우크라이나와 접경하고 있다.
폴란드는 굴곡진 역사를 경험한 나라지만 오랜 시간 동안 독립적인 왕조 국가를 형성해왔고, 1918년에는 공화국을 세웠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구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지만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이후 1989년 완벽한 독립국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4년에는 EU 회원국이 됐다.
그단스크
나폴레옹은 그단스크를 “모든 것의 열쇠”라고 지칭했다. 천 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1945년까지 단지그로 알려진 그단스크는 바다와 접한 도시로서 폴란드, 프러시아, 독일의 지배 하에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시발점이 된 그단스크는 그 자체로 헌법 체계와 국가(國歌), 화폐가 있는 도시국가였다. 1945년 이후에는 폴란드 국기 아래 번영을 누렸다.
격동의 세월을 겪었지만 그단스크의 무역과 중상주의로 먹고 살았다. 그 유명한 한자동맹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이제 역사의 중앙에서 멀어진 그단스크는 최근 세계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바로 자유노조 연대가 태어난 곳이 그단스크다. 자유노조 연대는 1989년 공산당 지배를 종식시킨 반대 정파로서, 레흐 바웬사가 수장이었다. 그는 이후 폴란드의 대통령까지 됐다.
포즈나뉴
포즈나뉴를 거칠게 번역하면 “깨달은 사람” 정도 되겠다. 이 도시에서의 교역은 엄청난 자부심의 원천이다. 여행자들에게 교역이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해도, 폴란드에서 5번째로 큰 이 도시는 다른 어떤 곳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 많다. 포즈나뉴는 9세기 바르타강의 섬에 세워진 나무 요새로 시작됐다. 그 이후 인구가 점차 증가해 육지로 사람들이 이주했다. 1793년 프러시안과 독일의 지배를 받았는데 1919년 폴란드에 귀속됐다. 포즈나뉴는 구 소련이 해체되기 전 첫 번째 항거가 시작된 것으로 저항 정신이 투철한 곳이다.
바르샤바
불사조의 도시로 알려진 바르샤바는 격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축물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도시는 폐허가 됐는데, 무차별적인 폭탄 투하와 거의 100만 명에 이르는 사망을 초래한 계획적인 파괴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혼은 폐허를 통해 되살아났다. 오늘날 바르샤바는 정치적으로, 교육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폴란드의 수도를 자처하며 번영을 누리고 있다. 바르샤바는 기대와는 다른 도시다. 바다로부터 300km 떨어졌지만 바르샤바의 상징은 인어다. 그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전설은 오래 전 그리스의 신 트리톤의 딸 두 명이 깊고도 넓은 대양으로 여행을 갔다가, 한 명은 덴마크의 해변에 머물기로 했고, 또 한 명의 코펜하겐에 있기로 한 것에서 유래한다. 두 번째 딸이 비스와 강을 따라 그단스크를 지나 바르스조바 마을 해변에 머물렀고, 한 어부가 그녀의 아름다움과 목소리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상인이 그녀의 노래를 또한 듣고 난 후 잡았다고 한다.
브로츠와프
파블로 피카소는 전쟁 후 브로츠와프의 재건이 그에게 강력한 영감을 던져줬고, 그 이유를 이 도시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포즈나뉴처럼 이 도시는 섬 위에 세워졌다. 독특하게도 이 도시는 11개 이상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가 거미줄처럼 112개의 교각으로 이어졌다. 모두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고, 격동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곳답게 보헤미안 스타일과 오스트리아 및 독일 스타일이 뒤섞여 있다. 그곳이 바로 브로츠와프다. 고딕 양식의 건축물, 생기 넘치는 문화 이벤트와 신기한 강변 공원이 있는 브로츠와프는 경제의 도시다. 폴란드에서 4번째로 큰 이 도시는 거대 공업과 상업이 존재하는 곳이다. 또 체코와 독일 국경 인근에는 13개의 고등교육 기관이 있다.
2.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공화국은 46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산다. 1991년에 독립 국가가 됐지만 이 나라의 역사는 그 보다 훨씬 오래 됐다. 키이웁 루스 지역은 중세 시대 이 지역 일대를 지배했던 곳이고, 988년 세인트 볼로디미르에 의해 동방정교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1240년 몽골의 침략을 받은 이후부터 우크라이나는 이웃 열강들에게 지배를 당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단 한 번 독립을 획득했는데, 곧 소비에트 연방으로 합병됐다. 이제 다시 독립국이 된 우크라이나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됐다. 유럽으로 여겨지는 러시아 땅 보다 크다.
도네치크
도네츠 바신의 중심에 있는데 도네치크는 우크라이나 광산 지역의 중심이다. 키이웁의 남동쪽이다. 웨일즈의 사업가 존 휴스가 1869년에 이 지역에 제철소를 세우고 광산을 개발했다. 150년이 지난 후 도네치크를 지탱하는 힘은 철강과 광산이다. 도네치크는 부스스하고 촌스러운 공업 도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인정받았다. 도시 중심가는 재정 투입의 영향으로 달라지고 있는 중이다. 5개의 강이 구불구불 도시를 관통해 세계에서 가장 좁은 아조프해로 흘러 들어간다.
크하르키프
나라 전체, 도시, 클럽, 심지어는 가정에서조차 자신들의 문장을 자랑하는 상황에서 그들과 차별화하는 것은 자칫 악몽이 될 수도 있다. 크하르키프는 문장학의 이상향이다. 파란색 리본에 금색 오크 나뭇잎으로 감싼 이 도시의 문장은 건강과 풍요를 나타낸다. 로판강, 크하르키프강, 우디강의 합류 지점에 세운 크하르키프는 우크라이나 북동쪽 농업의 중심지다. 크하르키프는 오랜 시간 동안 이 지역의 엔진 역할을 했고, 거대한 스케일의 기계류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 도네치크, 자포리지흐야가 중공업의 중심이 되면서 크하르키프는 소비에트 연방 핵 기술의 본산으로 거듭났다. 10만 명이 넘는 대학 인구의 영향으로 핵 기술 운용의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키이웁
불굴의 역사를 품에 안고 문명의 발달을 등에 업은 우크라이나의 수도다. 9세기경 성립된 것으로 알려진 키이웁은 몽고, 폴란드의 지배 하에서 벗어나 17세기 우크라이나와 함께 러시아제국에 병합됐다. 1940년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시가지 40%가 파괴되었지만 자생 노력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 형태를 띠고 있다. 1934년 우크라이나의 수도가 된 뒤로 상업.문화 중심지가 됐다. 우크라이나의 축구 영웅 안드리 셉첸코를 키워낸 도시로도 유명하다. 유명 시인 셉첸코와 축구 선수 셉첸코가 공존하는 곳, 키이웁이다.
일비웁
"우크라이나의 작은 파리", "동유럽의 피렌체'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전경을 자랑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선정 세계 유산이다. 도시 안에는 늘 커피 향이 진동하고, 시가 전차가 도심을 거닐며, 오페라 극장에선 늘 소프라노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일비웁은 중유럽과 인접한 탓에 프라하, 크라코프, 비엔나 등의 색깔을 섞어 놓은 듯한 광경을 연출해 볼거리가 풍부하다. 유로 2012 관광객은 우크라이나-폴란드 축구의 발상지이기도 한 이곳을 놓쳐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