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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축구가 재미 없으니 쇼를 하라고? 아마추어들의 위험한 말장난
  • 작성자:hanz811
  • 등록일:2011-04-12
  • 조회수:3786
  • 추천:786
출처 : http://blog.naver.com/lyujaegyu/90111243647 축구가 재미 없으니 쇼를 하라고? 아마추어들의 위험한 말장난 9~10일 벌어진 K리그 5라운드 8경기에서 0-0 무승부 4경기를 포함해 6경기가 비긴 채 끝난 뒤 프로축구에 골이 필요하고, 무승부 경기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올해 5라운드까지 경기당 골 수는 2.3골로 2009년 2.6골, 지난해 2.9골보다 적다. 이런 ‘현상’을 짚어보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골이 없고, 무승부가 많아져서 ‘축구가 재미가 없어졌다’고 주장하는 ‘일부’ 스포츠전문지 기자들의 ‘분석’과 ‘제언’을 보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현재 상황을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해 전체의 이익(흥행)을 그르칠 수 있는 ‘위기’로 규정하면서 수비축구를 버리고 공격축구를 하자고 주장한다. 수비축구를 몰고 오는 ‘한물간’ 스리백(수비전술)을 버리고, ‘팬을 위한 신바람 나는 축구를 위해 전 구단이 모험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공격축구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여기까지도 봐줄만하다. 그러나 이들은 기어이 위험한 발걸음을 더 내딛는다. 한 종합지는 “(공격축구를 지향했던)최순호 강원 감독의 사임이 영향을 준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걱정스럽다”는 프로연맹 고위 관계자의 말에다, “이러면 애써 모은 관중이 다 달아난다. 감독들이 정신차려야 한다. 실리축구라는 말로 수비축구를 미화해선 안 된다. 그건 감독이 자기 한 몸을 챙기는 ‘보신축구’일 뿐”이라는 모 구단 사장의 말을 끌어들인다. 한 스포츠전문지는 더 나아간다. “우리가 골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단호한 판정을 내려 선수를 보호하고 마음껏 기술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골도 늘어날 것이다. 경고를 줄지, 퇴장을 줄지 애매한 상황에서는 무조건 레드카드를 꺼내도록 하고 있다”는 이재성 심판위원장의 말을 인용한다. 공격축구를 위해 프로연맹과 심판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며,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이쯤 되면 상황은 심각하다. 이건 아니다. 축구의 본질을 잘 모르고 도식적인 마케팅(흥행)의 틀에서만 현재 상황을 재단하는 아마추어라면 몰라도 ‘전문지’를 표방하는 스포츠지의 ‘전문기자’가 이러면 안 된다. 원래 축구의 재미는 골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과연 골이 적으면 축구가 재미 없어지는가? 일정 부분 맞는 얘기다. 축구는 11명의 선수가 ‘골’을 넣어 승리라는 목표(Goal)을 달성하려는 경기다. 골이 없으면 뭔가 허전하다. 출처도 불분명하고 과학적인 근거도 희박하지만 축구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펠레 스코어(3-2 승부)라는 말도 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축구에는 골 외에도, 한 경기의 승패 외에도 재미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가 있다. 만약 축구가 단 한 번의 경기로 모든 것이 결판나는 것이라면, 전-후반 90분이 아니라 승부가 날 때까지 날밤을 까고 몇날 며칠을 새워 경기를 계속해야 한다. ‘가능하면 많은 골’도 필요하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전부일까. 생각해 보자. 축구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잔혹한 가설 중 하나는 축구가 전쟁에서 승리한 종족이 패자의 두개골을 차며 놀던 ‘축제’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생존을 위한 일상이었던 전쟁이 줄어들면서 ‘전쟁 후 뒤풀이’였던 축구가 ‘전쟁의 대체재’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현대축구의 틀이 완성되기 전 축구 종주국을 자처하는 영국은 부상자가 속출하는 격렬한 경기인 축구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후 온건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골과 승리에 접근하도록 세부적인 룰을 만들었지만 축구는 여전히 공을 사이에 두고 몸과 몸이 직접 맞부딪히는 가장 원시적이고 격한 종목 중 하나다. 다른 대부분의 종목과 마찬가지로 축구의 기원이 사냥의 동작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더 많은 골(사냥한 짐승)의 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함께 배부르고 즐거울 수 있는 골 수가 의미있을 뿐이다. 축구의 본질에 대한 또하나의 얘기(이건 필자의 생각이다)는 축구는 ‘여러 사람이(한 사람이 아니다)’, ‘인체의 중심인 두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동작이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발(물론 포지션에 따라 머리와 손은 물론 신체 전부를 쓰기도 하지만)을 사용해’, ‘완전함을 추구하는’ 종목이다. 미국 야구 기자의 전설 레너드 코페트가 야구의 본질을 ‘공에 대한 공포를 회피하기 위한 심리 싸움’이라고 정의한 뒤, 야구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볼을 쳐내려는 타자와, 타자가 볼을 쳐 자신에게 되돌려 보내지 못하도록 속도와 비행의 움직임에 변화를 준 볼을 던지려는 투수간 ‘두뇌 게임’이라고 정의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요약하면 축구의 본질은 여럿이 협업을 통해 개인의 불완전함을 보완해 목표(골)를 달성하려는 집단간의 몸싸움이다. 야구보다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육상에 가깝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 얼마나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를 보여주면서 보는 사람을 전율케 하는 육상 말이다. 진검승부를 벌이는 격투기를 비롯한 또다른 개인 및 단체종목에 가깝다. 축구를 ‘게임’이 아니라 ‘경기’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축구의 재미는 볼거리나 게임으로 바뀐 경기의 결과(승리 또는 패배 또는 무승부)나 골의 수에 따라 결정적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축구는 자본력과 인적 네트워크의 고도화의 싸움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프로축구, 특히 K리그의 실상은 어떤가. K리그는 한 판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단판승부가 아니다. 팀당 30경기를 치러 6강 플레이오프 진출팀을 가리고, 이후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을 통해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구조를 갖고 있다. 선수 수급 체계와 시즌 운영방식도, 종족의 생존과 번영을 종족의 번식력 즉 쪽수와 신체적(인종적) 강약, 다른 종족과 합종연횡(정치력)에 크게 의존하던 과거와 다르다. 한마디로 시장을 통해 선수를 사고 판다. 가끔 ‘흙 속의 진주’를 찾아내는, 눈썰미와 운이 좋은 지도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본의 힘을 등에 업은 ‘부자구단’이 선수 수집을 통해 출발부터 불평등한 스쿼드를 갖춘다. 구단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선수들의 연봉, 출전 및 승리수당, 우승 보너스 등 돈은 물론 숙소와 식사의 질까지 다른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 팀 감독들은 동계훈련을 하고, 개별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한(무득점과 무승부를 위한 것이 아니다. 경기 전부터 지거나 비기고 싶은 감독은 없다) 전략을 짜고, 시즌 전체 운영 방안을 마련한다. 감독은 주인 또는 의뢰인(구단주)이 마련해준 재료를 갖고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사다. 이 때 물론 재료(선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가깝게는 요리사(감독)의 솜씨(지도력)에, 포괄적으로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사회 또는 관중)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성장-진화-정체-소멸하는 존재다. 이런 사람과 사물, 관계의 총합이 결과물을 내놓는 무대, 그것이 누적된 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현재 K리그 경기다.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의 땀과 열정, 좌절과 환희가 한번이 아니라 역사성을 갖고 살아 움직이는 것이 축구다. 획일적인 공격축구 강요는 '다이내믹 축구’를 하는 1위 대전을 꼴찌로 내리자는 말이다 모든 팀이 공격축구를 하라는 주장은 현재 리그 1위 대전이 수비를 하지 말고 공격에 치중해 골을 많이 ‘넣는’ 것이 아니라, 많이 ‘먹어서’ 지난해처럼 13위로 떨어지라는 강요와 다름없다. 달리 말하자면 약팀들이 많이 실점하는 축구를 해서 많이 지고, 그래서 순위표의 아래에 팀 이름을 박으라는 말과 같다. 대전 왕선재 감독을 비롯한 약팀 감독은 모두 개막 후 4경기만에 사퇴한 최순호 감독의 뒤를 밟으라는 말과 동의어다. 물론 나는 최순호 감독의 축구 철학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으며 그의 선택을 신뢰한다. 현재 축구가 지나치게 승부에만 목을 매고 있다는 그의 진단과, 재미있는 축구로는 승리를 원하는 팬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었다는 고백과, 그럼에도 여전히 좋은 축구를 하고 싶다는 ‘낭만성’도 사랑한다. 자신의 사퇴가 현재 축구 현실에 조그만 파문이라도 던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조심스러운 의지도 존중한다. 그리고 그 만큼이나 성적에 책임지고 물러난 그의 책임감도 진심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인 전력상으로는 시즌 말 어떤 결과가 나올지가 뻔한 강고한 현실에 균열을 내보겠다는, 어쩔 수 없는 한계에도 몸부림치며 도전해 보겠다는 약팀 감독들의 간절한 몸짓을 폄훼하고 비하할 논리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 아니다. 축구의 진짜 재미는 약팀이 객관적인 전력의 한계를 상쇄할 수 있는 조직력(현대축구는 조직력의 축구이면서 동시에 개인기량의 축구이기도 하다)을 통해 강팀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는 감동 스토리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명확하지 않나? 골이 적어서, 무승부가 많아서 축구가 재미가 없다고? 이 말은 거꾸로 뒤집어 보면 오히려 골에, 경기 결과에만 신경쓰면서 더 풍부하고 의미있는 축구의 가치체계나 휴먼 스토리에는 의도적으로 눈을 감았거나, 자신도 모르게 놓치고 만 기자의 미필적 고의를 까발리는 수치스런 변명에 다름 아니다. 진짜 축구가 재미있기를 바란다면 축구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고, 그 성찰의 결과를 독자와 나누기 바란다. 이른바 수비축구로 사투를 벌이는 약팀들에 돌을 던질 것이 아니라, 훨씬 강한 전력을 갖추고도 약팀들의 수비진을 뚫지 못해 골 없이, 무승부로 경기를 끝내는 강팀 감독들의 무사안일과 무능력에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을 날려라. 축구담당 기자들이 관심을 가질 곳은 많다. 야구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축구만의 강력한 승부수인 승강제를 도입하라고 목소리를 높여라. 자본력이 약한 팀들의 전력강화를 막는 드래프트제도를, 프로축구 전체의 발전보다는 구단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봉숭아학당’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를, 축구판에 끊임없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치권의 불순한 입김을, 축구인 내부의 불건전한 파벌을, 축구를 ‘사랑’하지만 수익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구와 유럽축구 중계에 목을 매는 방송사의 딱한 넋두리를, 현장을 샅샅이 누비며 고민해 생동감 있고 깊이 있는 지면을 만들지 못하는 신문들의 취재환경을, 그리고 무엇보다 번지수를 잘못 찾고 헌 칼을 용감하게 휘두르는 우리 자신의 무모함과 무지를 질타하라. 그래도 골이 많아야, 반드시 승부가 나야 축구가 재미 있어진다고 믿는다면 축구도 야구처럼 먼저 이렇게 하라고 주장하라 야구는 타고투저가 되면 마운드를 높이고, 펜스와 거리를 늘리고, 공과 배트의 반발력을 낮추고, 심지어 글러브를 더 크게 만든다. 투고타저가 되면 반대의 작업을 해 균형을 맞춘다. 심지어는 홈팀의 필요에 따라 경기장 구조까지 변형한다(야구 흥행의 핵심은 승부의 균형이다. 화끈한 8-7 타격전은 재미있지만 대개의 10-0 경기는 재미 없다. 체육기자 초기 4년 동안 야구를 담당한 나는 야구의 백미는 팽팽한 투수전 끝에 7회 이후 극적으로 종료되는 1-0 승부라고 생각한다). 야구처럼 홈팀의 이해에 따라 축구장의 크기를 신축적으로 운영하라고,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경기장에 뿌리는 물의 양이나 시기, 잔디의 길이를 조절하라고. 키커의 피를 말리고 결국은 한 명의 골키퍼가 승자가 되는 승부차기 제도를 K리그에도 재도입하라고. 이 모든 것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규정에 따라, 또는 로컬룰을 존중해 허용하는 것들이다. 골키퍼들에게 돌을 맞을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골문을 넓히라고(이건 말이 되는지 나도 모르겠다) 주장하라. 더불어 매년 공의 탄성과 회전력을 강화해 공격수와 골키퍼의 싸움의 양상을 바꾸는 아디다스의 기술의 진화(?)에, 심판의 수를 늘리고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판정의 정확성과 관전의 재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기사를 써라. 이런 과정이 없이 단지 더 많은 골을 위해, 승부를 위해 '쇼'를 하라고, 프로연맹의 행정력이나 심판의 영향력을 동원하라고, 감독의 전술적인 자유의지를 제한하라고, 선수들의 몸을 굳게 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축구의 본질적인 가치를 훼손하며 장기적으로는 축구를 죽이는 독약과 다름없다.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프로레슬링 쇠망의 역사가 이를 생생히 증명한다. 이 모든 것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축구에는 더 많은 골과, 명확히 갈리는 승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땐 마음대로들 해라. 그 이후는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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