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킹스컵 태국전, 말 출현이 웬 말?
입력 : 2012.01.1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방콕(태국)] 윤진만 기자= “축구장 다닌 지 40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15일 한국-태국 킹스컵 1차전이 열린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국립 경기장. 저녁 9시 경기 시작을 앞두고 말 여섯 필이 입장하자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취재진도 경기장에 왠 말이냐며 허허실실 웃었다. 한 한국 교민은 “변이나 안보면 다행이지”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 여섯필은 기수의 능수능란한 조종에 따라 경기장 동쪽 하프라인에서 선수 출입구가 위치한 서쪽 하프라인까지 산책을 하듯이 유유히 걸어와 자리를 잡고 행사 시작을 기다렸다. 태국 관중의 표정을 보면 말이 경기장 위에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행사에 말이 참여하면 기품 있어 보인다. 적어도 맨 바닥에선 그렇다. 잔디 위에선 말 굽이 내는 박자와 귀품 있는 말의 자태가 빛을 잃는다. 말굽이 휩쓸고 가면 잔디 위엔 흉터가 생긴다. 현대 축구에서 정돈된 잔디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문화의 차이라고 이해를 해야할까. 언어, 문화, 생활 습관, 생김새 심지어 운전석 위치까지 다르다고 신성한 축구장 잔디 위에 말이 걸어 다니는 행동을 태국의 ‘신선한 문화’라고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스럽다.

더구나 미흡한 대회 준비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오후 9시 시작 예정이던 경기는 릴레이 국민 노래와 폭죽, 국왕 찬양 기념 영상 상영을 이유로 15분 가량 지연됐다. 경기 시작 후에 풍선은 잔디 위에 한동안 머물렀다. 폭죽 연기는 자욱했다. 기자석까지 폭죽 냄새가 났다. 한국 선수단은 경기 전 이유도 모른 채 불이 켜진 양초를 들고 지루하게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1968년 태국이 왕을 기리는 의미에서 시작한 킹스컵. 태국이 원하는 게 세계의 우수팀을 데려와 멋진 경기를 펼치는 ‘컵’의 의미보다 ‘킹(왕)’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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