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학예회에 나온 모범생...'슈퍼매치' 기자회견, 좀 더 비뚤어져라
입력 : 2012.03.3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류청 기자= 장외설전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었지만, 기대했던 난타전은 없었다.

수원 삼성과 FC서울과의 ‘슈퍼매치’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5라운드 대비 공식기자회견이 벌어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대회의실 분위기는 시작 전부터 화끈했다. 열 대가 넘는 카메라와 수 십명의 기자들이 윤성효 감독과 최용수 감독의 입씨름을 기대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유려한 말의 전쟁은 없었다. 윤 감독과 최 감독은 순간순간 재치 있는 언변으로 기자회견장에 웃음을 불러오기는 했지만, 뜨거운 맞대결은 벌이지 않았다. 한 사람이 화두를 꺼내 들면, 다른 한 사람은 날카로운 부분을 살짝 비켜가는 모양새였다. 기자회견도 예상보다 빨리 끝났 버렸다.

윤 감독이 “내 이름을 풀이하면 ‘붉은 황소를 잡아먹는다’는 뜻”이라며 서울의 전신인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까지 묶어서 비틀었고, 최 감독이 “개인적으로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세계적인 구단들은 상대 구단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충돌이 없었다.

신나는 설전을 기대했던 기자들은 맥이 빠졌다. 다른 게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많이 나와야 수원-서울전 뿐 아니라 K리그 전체의 흥행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 학예회에 정답만을 써내는 모범생이 나온 셈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애를 써서 멍석을 깔아준 보람이 크게 없었다.

팬들이 한국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인 최강희를 좋아하는 이유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 감독은 전북 현대를 7년 동안 잘 이끌어온 것 이외에도 장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입담이다. 최 감독은 지난 시즌 K리그 기자회견에서 선배인 정해성 감독에게 “성격이 X랄 맞다”라고 독설하기도 했다. 최 감독은 “감독들도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해왔다.

직설화법을 구사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서였을까? 11년 터울을 둔 동래고등학고, 연세대학교 선후배간의 만남이었기에 조심스러웠던 것일까? 기자회견은 너무 온건하게 끝났다. 조금 더 불온하고 불손했다면 더 많은 이야기 거리가 나오지 않았을까?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를 만들 수 있는데, K리그는 그 부분에서 아직 걸음마 단계다.

물론 기자회견이 차분했다고 해서 경기가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 경기를 돌아봤을 때, 이번수원과 서울의 경기도 분명히 재미있을 것이다. 좋게 풀이하면 이날 기자회견은 태풍전야의 고요였던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태풍전야의 고요함은 이번으로 그쳤으면 좋겠다. K리그, 조금 비뚤어져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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