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하대성•하성민, 형제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입력 : 2012.04.0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류청 기자= 두 사람을 둘러싼 이들은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두 사람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6라운드 FC서울과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형제 대결을 벌인 하대성(27, 서울)과 하성민(25, 상주)의 이야기다.

두 선수는 이날 경기에서 다른 유니폼을 입고, 다른 편에 섰다. 하대성은 서울 유니폼을 입고 주장완장을 찬 채 상주를 공략했고, 하성민은 상주의 유니폼을 입고 서울의 공세를 막아내는데 주력했다. 두 사람은 중원에서 몇 차례 충돌하기도 했다. 하성민이 후반 8분 교체될 때까지 53분 동안 같이 뛰었다. 경기는 서울의 2-0 승리로 끝났다.

주목할만한 것은 두 선수가 경기 도중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두 선수는 경기장에 입장해 악수를 하고, 경기를 치르는 동안에도 형제임을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인사를 나눌 때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유니폼을 바꿔 입지도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만난 하대성은 이 사실을 확인해줬다. 하대성은 “동생과 경기장에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형제 사이가 좋지 않거나, 매정한 것은 아니다. 형은 동생이 그라운드에서 스스로 자신의 몫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생도 온몸으로 형을 이겨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두 형제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던 것이다.

냉정해 보이던 형도 아쉬움을 전부다 감추지는 못했다. 하대성은 먼저 동생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는 “동생과 첫 맞대결이었는데, 동생도 경기를 잘해서 다행”이라면서도 “상주가 실점을 하면서 공격적으로 해야 했고, 수비력이 좋은 동생이 나가게 됐다. 90분을 같이 뛴 후에 그라운드에서 악수하고 싶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두 형제는 이날 그라운드에서처럼 살아왔다. 하대성은 신경 쓰지 않는 듯하면서도 동생의 경기 소식을 챙기면서 마음을 썼다. 전북 현대와 부산 아이파크에서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대성은 서울로 이적한 후에도 혹시나 동생에게 누가 될 까봐 전북과의 경기를 앞두고도 말을 아꼈었다. 동생은 이런 형을 묵묵히 따랐다.

형제는 또 다른 그림을 준비하고 있다. 올 시즌 후반기에 벌어진 상주 홈 경기에서는 90분 동안 그라운드를 함께 누빈 후 뜨거운 악수를 나누는 것이다. 하대성은 “오늘 경기에는 매우 아쉽다”라며 “동생이 먼저 교체돼 나가고 상주가 패하는 바람에 유니폼도 교환하지 못했다”라며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이날 경기에서 두 형제가 아쉬움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말보다 행동이 더 절실하게 다가올 때도 있다. 두 선수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맞대결을 벌이며 서로에게 말없는 편지를 보냈다. 형은 동생의 성장을 봤고, 동생은 형의 기량을 확인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형제는 그렇게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첫 번째 이야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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