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통신] '암표에서 쇼팽까지' 유로 개막 현장
입력 : 2012.06.0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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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바르샤바(폴란드)] 홍재민 기자= 유로2012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4년의 목마름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듯 바르샤바의 개막행사 및 개막전은 풍성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성체 축일(가톨릭 국가 휴일)로 한산하기만 하던 바르샤바는 하루 만에 뜨거운 축구 도시로 변태(變態)했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신세계거리’에는 각국의 축구 팬들로 넘쳐났다. 대회 공식 스폰서인 한국 자동차회사가 이 거리를 아예 마케팅 스팟으로 점령해 눈길을 끌었다. 유럽 풍의 예쁜 가로등마다 회사 로고와 대회 마스코트로 장식되어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길거리에 예쁘게 들어선 노천 카페와 레스토랑에는 폴란드와 그리스 팬들로 만원사례를 이루고 있었다. 폴란드의 빨간색과 그리스의 파란색이 강렬한 대비를 만들어 거리에 생동감을 더했다. 숫자 면에선 개최국 폴란드 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그리스 팬들도 뒤질세라 확성기를 동원해 응원을 펼쳤다.



개막전 시작 세 시간 전에 바르샤바 국립경기장에 닿았다. 식전 행사와 주변 스케치를 위해 넉넉하다고 생각한 시간적 여유였다. 역시나 경기장 주변은 일찌감치 폴란드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빨강과 하양으로 얼굴 전체를 이분한 팬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아직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팬들은 “표 삽니다”라는 표시를 들고 배회하며 막판 행운을 바랐다. 디지털 시대인 만큼 아이패드를 이용한 구매 의사 표시도 등장했다.

취재진도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노트북, 카메라 등의 전자장치가 많은 탓에 국제공항 수준의 검색대와 장치를 통과해야 했다. 벨트까지 풀러 검색대 안으로 밀어 넣은 다음에야 겨우 몸수색을 마칠 수 있었다. 취재증에 인쇄된 QR코드 인증도 물론 행해졌다. 위조 취재증을 이용한 불법적 출입을 자제시키기 위함이었다.

미디어센터 안에는 세계 각국 취재진이 몰려들어 분주하게 움직였다. 개중에는 유명인도 눈에 띄었다.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던 잉글랜드 미드필더 스티브 맥나마난도 해설자 자격으로 개막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프랑스 대표팀 출신 수비수 장-알랑 붐송도 관계자들 틈에 껴서 기자석에 자리를 잡았다.



개막전 킥오프 30분 전, 드디어 화려한 식전 행사가 시작되었다. 그라운드 전체를 파란색 천으로 덮었다. 무대 중앙에 그랜드 피아노가 등장했다. 피아노 반대쪽에는 키보드와 비트박스를 갖춘 장치를 디제이가 조작하고 있었다. 폴란드가 낳은 천재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의 모티브를 딴 듯, 대형 오선지가 연출되었다. 각자 자리에 배포된 카드를 관중 모두 높이 들자 경기장 안은 출전 16개국 국기로 물들었다.

행사가 끝나고 드디어 폴란드와 그리스의 개막전 경기가 펼쳐졌다. 경기장 지붕이 덮여있어 폴란드 홈 관중의 함성이 그대로 경기장 안에 남아 옆 사람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소리 묶음을 만들어냈다. 전반 17분 ‘간판 스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깔끔한 선제 헤딩골이 터져 나온 순간 경기장은 뜨거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전반 종료 직전 그리스의 파파스타토폴로스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하자 폴란드 관중 소리가 최대치에 달했다.



그러나 경기는 그들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후반 들어 교체 투입된 디미트리스 살핑기디스가 회심의 동점을 터트린 것이다. 설상가상 단독 찬스를 맞이한 공격수를 넘어트린 보이첵 슈쳉스니가 일발 퇴장 당하고 말았다. 낙승이 단숨에 패전으로 뒤바뀔 수 있는 순간이었다. 폴란드의 상실감은 불과 2분 만에 사라졌다. 후보 골키퍼 티톤이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결정적 수훈을 세웠기 때문이다.

결국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양팀 모두 경기가 끝나고 나서 “이길 수 있었는데 아쉽다”라며 입을 모았다. 그만큼 분위기와 맞대결 양상은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다. 폴란드는 낙승을 놓쳤고, 그리스는 역전승을 날려버린 셈이었다. 기자석 주위에 있던 자원봉사자들의 표정에도 진한 아쉬움이 배어있었다. 하지만 폴란드 홈 관중은 이내 열심히 싸워준 대표팀 선수단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상상할 수 없는 부담감과 맞서 싸웠다는 자긍심 때문이었다.

송고를 마치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경기장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 주변은 물론 시내 중심지에 설치된 팬존에는 그 시간까지 수많은 팬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다들 맥주에 얼큰하게 취한 터라 목청껏 응원가를 부르며 축구의 대향연을 밤새도록 즐길 기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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