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의 눈] 프로팀 수원의 아마추어식 평정심
입력 : 2012.07.0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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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수원] 홍재민 기자= 시즌은 토너먼트가 아니다. 이겨도 져도 다음 경기가 또 있다. 매 경기에서 일희일비하면 장기 레이스에서의 최종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된다. 수원에서 그런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원은 지난 원정 경기에서 포항에 5-0으로 패했다. 다행히 다음 일정이 올 시즌 10경기를 치러 9승1무의 압도적 승률을 자랑하는 홈경기였다. 상대팀 경남은 리그 9위다. 객관적 전력에서 수원이 단연 앞선다. 일주일 전 실패를 깨끗이 씻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3-0 완패였다.

경기 시작부터 수원의 수비는 평상시와 많이 달랐다. 페널티박스 안에서 볼을 잡은 상대편 공격수들을 그냥 쳐다볼 뿐이었다. 선생님한테 눈물 쏙 뺄 정도로 혼난 학생의 움츠러든 모양새였다. 전반 14분 김인한에게 선제 실점을 내준 직후 수원 선수들은 대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경기는 끝났다. 자화자찬 해왔던 많은 기록들이 이날 90분으로 산산조각 났다.

스포츠심리학에서는 긍정적 경험(승리)을 최대한 오래, 부정적 경험(패배)을 최대한 짧게 가져가야 한다고 말한다. 결과에 상관없이 정해진 루틴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18홀을 도는 골프에서 지난 홀의 실수를 빨리 잊지 못하면 라운딩을 망치고 만다. 이기든 지든 원래 자기 기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44경기를 치른 성적을 모두 합쳐 순위를 매기는 K리그도 마찬가지다. 경기력이 들쑥날쑥 하면 절대로 호성적을 거둘 수 없다.

수원은 경남전에서 전반 14분 선제 실점 했다. 경기 종료까지 76분이 남았다. 한 시간도 더 남은 충분한 여유다. 그런데 불과(?) 한 골 뒤진 수원 선수들이 갑자기 기어를 두 단계 이상 끌어올렸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문전으로 크로스를 ‘막’ 집어넣었다. 신체 접촉 때마다 양팔을 벌려 “아니, 이거 반칙이잖아?”라며 항의했다. 마치 FIFA 월드컵 본선 진출권이 걸린 단판승부에서 패배 직전에 몰린 팀 같았다.

프리미어리그와 K리그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경기에서 패한 팀의 반응이다. 감독과 선수 모두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다. K리그적 시선에서는 “아무 생각 없네”라고 할 법한 분위기다. 잉글랜드 무대 경험이 있는 선수들도 “경기에서 졌는데도 버스 타면 카드놀이 하고 농담하고 그래서 처음에는 분위기 파악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K리그에선 다르다. 한 경기라도 지면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이 고개를 들지 못한다. 선수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공동취재구역을 빠져나간다. 윤성효 감독의 반응이 대표적이었다. 경남전 직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윤 감독은 모든 질문에 대해 “모든 게 내 불찰”이란 동문서답으로만 일관했다. 원정 대승을 거둔 경남에 대한 칭찬 한 마디 할 여유따윈 없었다. 지나치게 우울하다.

이날 홈 서포터즈석에선 윤 감독을 직접 공격하는 구호가 날아들었다. 충격이 상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원의 '지나치게' 침통함은 포항 원정패 직후에도 그랬다는 점이다. 빨리 잊고 경남전에만 집중해야 됐다. 올 시즌 20경기가 지났고, 앞으로 24경기를 더 치러야 한다. 여전히 수원은 리그 3위다. 지구 종말을 맞이한 듯한 반응은 리그를 소화하는 프로팀답지 못하다.

포항과 경남전 2연패는 수원에 많은 교훈을 줬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각오도 다질 것이다. 하지만 다음 주말 ‘무풍질주’ 전북과의 맞대결까지 수원은 승부욕을 불태울 것이 아니라 평정심 회복이 급선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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