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30년특집-9]외국인 선수 608명...15분 뛰고 3만달러 챙긴 페리발두
입력 : 2013.05.0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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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이두원기자=2013년 시즌 K리그 클래식에는 49명, 챌린지에는 7명의 외국인 선수가 활약하고 있다. 1983년 포항이 브라질에서 2명의 용병 세르지오와 호세를 영입한 후 그동안 모두 608명의 외국인 선수가 K리그 무대를 밟았다. 브라질, 유고, 러시아를 비롯, 62개국의 선수가 한국 프로축구 무대에서 활약했고, 이중 4명(신의손, 데니스, 이싸빅, 마니치) 은 한국으로 귀화했다.
한국프로축구 무대에서 활약한 선수 중에는 브라질 선수가 302명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고(34명), 러시아(24명), 크로아티아(20명), 세르비아 몬테네그로(14명), 루마니아(13명) 등 동유럽 선수들도 인기를 끌었다. 2009년부터 아시아쿼터제가 도입된 후에는 호주(16명), 일본(15명), 중국(7명) 등 아시아 선수들의 한국 무대 진출도 늘어났다



608명의 외국인 선수를 끌어 들여 톡톡히 재미를 본 구단도 있지만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돈만 날린 예도 적지 않다. 유공(제주의 전신)의 페리발두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1986 시즌이 끝난 뒤인 11월15일 유공은 다음 시즌 팀 우승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하여 브라질에서 페리발두 단타스란 선수를 스카우트 했다. 계약금 5만5,000달러, 월봉 3,300달러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1987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일부 매스컴은 '페리발두 열풍'을 예고했다. 페리발두를 '군계일학'의 득점왕으로 점치는 성급한 기사도 있었다.

그러나 시즌오픈 불과 한달쯤 뒤 페리발두는 '엉터리 선수'라는 낙인이 찍힌 채 유공과 결별하게 된다. 유공은 축구선진국 브라질에서 대표급 선수로 활약했다는 페리발두의 경력만 믿고 스카우트했으나 아프다는 핑계로 자꾸만 훈련을 기피하고 기량도 생각했던 것만큼 신통치 못하자 5개월만인 4월10일 계약을 해제한 것이다.

페리발두가 유공 유니폼을 입고 뛴 시간은 불과 15분. 3월29일 럭키금성과의 수원경기 후반 31분 신동철과 교체 기용돼 몇 차례의 패스로 볼을 연결한 것이 전부였다.

유공은 페리발두와 계약을 중도 해제할 때까지 계약금 중 2만5,000달러를 계약시 일시불로, 나머지 계약금 중 5,000달러를 4개월간 나누어 지급하는 등 4개월치의 월봉 1만3,200달러를 이미 지급한 상태였다.

유공은 합의에 따라 이미 지급한 3만달러의 계약금 중 1만5,000달러를 되돌려 받고 나머지 1만5,000달러는 다른 팀으로 이적시 받기로 했으나 이후 페리발두의 이적은 이뤄지지 않아 더 이상 받아내지 못했다.

결국 유공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페리발두를 스카우트 했으나 단 15분 써먹고 거금 3만여달러만 날려 버린 꼴이 됐다.

'페리발두' 해프닝은 한마디로 선진축구 브라질 선수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외국인 선수 고용의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페리발두는 1984년 대통령배국제축구대회에 브라질 1부 방구팀의 일원으로 호샤와 함께 출전, 뛰어난 기량을 보였으나 유공으로 스카우트될 당시에는 34살로 체력한계에 이르러 선수생활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한 페리발두가 어떻게 유공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을까. 페리발두는 유공 입단 한달여만인 86년 12월31일 대통령배국제축구대회 때 알게 된 한국인 고모씨와 결혼문제로 한국에 왔다가 유공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이다. 유공은 계약하기 전 두차례 페리발두의 기량을 테스트하는 절차를 밟기는 했으나 그를 너무 과신한 게 불찰이었다.

페리발두는 분명 재능은 있는 선수였으나 나이가 많은데다 '신혼 재미'에 빠져 있어 선수생명을 유지하기에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픽=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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