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두 딸을 세계 1위로 만든 테니스 대디, 리차드 윌리엄스
입력 : 2013.11.0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테니스피플 제휴] 박원식 기자=동생 세레나 윌리엄스는 서른둘 나이에 2개의 그랜드슬램과 왕중왕전에서 우승을 하였다.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는 스스로 마흔살까지는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윌리엄스 자매의 세계 테니스 장악력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두 자매가 받은 우승트로피는 130여개나 되고 상금만도 8000억원이 넘는다. 그랜드슬램 우승은 50번이나 된다. 두 자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를 빼놓을 수 없었다.

1940년생인 리차드는 1973년 이혼한 첫 부인과의 사이에 두 딸과 세 아들을 두었고, 1979년 세 딸을 둔 프라이스를 만나 윌리엄스 자매를 낳았다. 어릴 때 스포츠 스타가 꿈이었던 리차드는 TV에서 우연히 루마니아의 여자 프로 선수인 버지니아 루지치가 우승하는 장면과 함께 많은 상금을 받는 것을 보고는 테니스가 자신의 가족을 성공의 길로 이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프로테니스 선수로 키울 것을 결심했다. 윌리엄스 자매는 태어나기도 전 이미 자신들의 갈 길이 정해진 것이다.

리차드는 테니스 공부에 들어갔다. 나중에 딸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치기 위해서 테니스 교본과 비디오 테이프를 사서 자신부터 부인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다행히도 두 딸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였고, 리차드는 두 딸의 성공을 확신하며 혹독한 훈련을 계속한다.

벽치기 훈련

리차드가 선호했던 훈련방법 중의 하나는, 딸들을 벽면에 세워놓고 빠른 속도로 볼을 퍼부으면서 라켓으로 방어하도록 한 것이었다. 본능적인 방어능력이 키워졌다. 그는 어린 딸들에게 테니스 교본에서 배운 지침을 소리 높여 외치며 다 닳아빠진 볼과 군데군데 패인 아스팔트 코트에서 하루에 6시간이나 연습했다. 그는 딸들에게 테니스만 가르치지 않았다. 일부러 흑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도 험한 지역으로 소문난 캄튼(Compton)으로 이사하여, "열심히 살지 않으면 저렇게 산다"라며 딸들로 하여금 정신자세를 가다듬도록 가르쳤다.

세레나가 네 살이 지날 무렵 처음으로 유소년 토너먼트에 출전했고, 이후 5년 동안 그녀가 출전한 대회에서 49전 46승을 기록했다. 이후 윌리엄스 자매는 각각의 나이그룹에서 랭킹 1위를 유지했고, 그들의 명성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용품회사와 유명한 테니스아카데미로부터 후원 계약 제안과 초청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991년 리차드는 두 딸의 주니어 토너먼트 출전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테니스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당시 주니어 토너먼트는 테니스 스타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코스였지만, 리차드는 딸들을 격심한 경쟁과 상대 선수들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었다.

리차드는 이전에 세계 1위 마리 피어스와 제니퍼 카프리아티를 가르친 적이 있는 릭 매시를 자신이 거주하는 캄튼으로 불러 두 딸의 경기 모습을 보여주었다. 매시는 윌리엄스 자매의 경기모습을 보고 그들의 기술과 운동 능력에 깊은 감명을 받아 플로리다 아카데미에 초청했고, 얼마 후 윌리엄스 가족은 플로리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어 윌리엄스 자매는 한 의류 업체와 후원 계약을 맺게 되고, 그 수입으로 자매가 다니는 테니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팜 비치 가든에 집을 마련했다.


서두르지 않았다

리차드는 일찌감치 두 딸을 프로 무대에 내보냈다. 언니 비너스가 13살, 동생 비너스는 14살에 프로무대에 데뷔한다. 그러나 WTA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10대 초반의 윌리엄스 자매의 대회 참가를 불허했고, 1년에 몇 번 밖에 없는 비 공식대회에만 출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리차드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1년에 서너 차례의 대회에만 출전하면서도 끊임없는 훈련 속에서 두 자매의 기량은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었던 것이다. 언니 비너스의 경우, 1994년 데뷔 첫 해에 1개 대회에 출전해 2라운드 진출(산체스 비카리오에게 패배), 1995년 3개 대회에 출전하여 두 번은 1라운드 탈락, 한 번은 생애 첫 8강 진출, 1996년에는 5개 대회에 출전, 네 번은 1라운드 탈락, 한 번은 3라운드에서 슈테피 그라프에게 패배하며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한다.

마침내 날아오르다

1997년을 시작으로 두 자매의 비상은 시작된다. 메이저 대회에서 강호들에게 패하며 경험을 쌓는가 싶더니 마침내 언니인 비너스가 US오픈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Top 100에 들면서 자신감을 얻더니, 연말에는 WTA 랭킹이 27위까지 올라갔다. 동생 세레나도 랭킹 300위권에서 Top 10 선수들을 격파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Top 10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 이후 두 자매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계 여자 테니스계를 호령하게 되었다.

승리보다 중요한 가족

리차드가 두 딸을 테니스 스타로 키우는 과정에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 있다. 바로 '가족'과 '균형감각'이다. 두 딸이 태어나기도 전에 테니스 선수로 키울 결심을 할 정도로 목표의식이 뚜렷했지만, 목표 그 자체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두 딸을 테니스 머신으로 키우기 보다는 자아의식을 갖춘 강인한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두 딸에게 자신들이 살고 있는 주변 슬럼가의 모습을 보여주며 반면교사로 삼게 했고, 딸들을 코트에서 데리고 나와서 쇼핑몰이나 해변가, 또는 화랑을 찾게 하는 등, 그들이 보통 사람처럼 평범한 일상을 경험하고 유지하도록 애쓰기도 했다.

"나는 딸들이 어릴 때는 대회에서 서로 맞붙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건 가족의식을 흐리게 하니까요. 그리고 사실은 성인 무대에서도 두 딸이 서로 맞붙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라며 가족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이러한 아버지의 후원속에서 세레나 윌리엄스는 10월 28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WTA 투어 챔피언십 결승에서 세계 5위 리나(30,중국)를 상대로 2-1(2-6, 6-3, 6-0) 로 이겼다. 세레나의 왕중왕전 우승은 네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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