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한 할아버지’ 박종환, 선수들 호통 왜?
입력 : 2014.02.1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호랑이, 독사…. 성남FC 박종환 감독 앞에 으레 붙는 수식어다.

프로 세계는 냉혹하다. 사령탑이 승부사 기질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박 감독의 이미지는 그 중에서도 아주 강성에 가깝다.

박 감독이 초대 사령탑으로 확정됐다는 소식에 성남 선수들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성남 선수들은 이전에 박 감독의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전해 내려오는 소문만으로도 움츠러들었다.

박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 한 달 반이 됐다. 성남은 경남 양산에 이어 1월 31일부터 터키 안탈리아에서 동계 전지훈련을 소화 중이다. 박 감독과 함께 한 선수들의 생각은 어떨까? 물어보니 대답은 대동소이했다. 소문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공격수 김동섭은 “무서우신 건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훈련 강도는 약하지 않다. 하지만 훈련 외적인 상황에서는 선수들에게 프로 의식을 느끼게 해 주시려고 하는 것 같다. 간섭도 안 하시고 개인적으로 맡기시는 스타일이신 것 같다”고 했다. 수비수 박희성도 “소문만 들었을 때는 정말 무서우신 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뭐랄까 할 땐 확실히 하고 쉴 때는 확실히 쉬게 해 주시는 느낌이다”고 설명했다. 공격수 김태환은 “인자하신 할아버지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박 감독이 선수들을 배려한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방 배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성남이 묵고 있는 안탈리아 미라클 호텔은 로비를 중심으로 왼쪽의 1동, 오른쪽의 2동으로 나뉘어져 있다. 로비를 거치지 않고 1동에서 2동으로 건너가려면 9층 구름다리를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다.

사실상 떨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박 감독은 이상윤 수석코치와 함께 1동에 머물고 선수들은 모두 2동에서 생활한다. 식사시간에만 다같이 만난다. 선수들은 불필요하게 긴장하거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박 감독은 합숙문화에도 유연성을 줄 생각이다. 박 감독은 최근 주장 전상욱을 통해 시즌 개막 후 집에서 출퇴근하고 싶어 하는 선수들의 명단을 받았다. 기혼자는 물론이고 미혼자 중에서도 부모를 모시고 있거나 집이 근처에 있는 등 타당한 명분이 있으면 합숙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 파격적인 결정에 박 감독을 오랜 기간 봐 온 코치나 트레이너들도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그런 박 감독이 이례적으로 딱 한 번 심하게 잔소리를 한 적이 있다. 12일(한국시간) 아틀란티스(리투아니아)와 연습경기를 치른 다음 날이었다. 오전훈련 직전 박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 놓고 20분 가까이 한참을 이야기했다.

사연은 이렇다. 성남은 10일 샤흐타르 도네츠크(우크라이나)와 연습경기를 했다. 샤흐타르는 동유럽 최고 강팀으로 현재 유로파리그에도 출전하고 있는 명문구단이다. 성남은 0-2로 패했지만 대등한 경기를 펼쳐 샤흐타르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결정력만 있었으면 샤흐타르를 잡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틀 후 아틀란티스와 연습경기는 실망스러웠다. 1-0으로 이기긴 했지만 일방적인 경기를 하고도 1골 밖에 못 넣었다. 마지막에는 수비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어이없이 동점골을 허용할 뻔 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의 정신자세를 지적했다. “샤흐타르 때와 아틀란티스 전의 마음가짐이 왜 다르냐. 강팀을 상대로는 최선을 다해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생각보다 약한 팀에는 왜 제 실력을 발휘 못하느냐”고 강하게 질책했다.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박 감독의 호통 덕분인지 성남은 13일 FK제타(몬테네그로)와 연습경기에서는 흠잡을 데 없는 경기력으로 3-0 완승을 거뒀다. 특히 박진포-김태환-이창훈으로 이어진 두 번째 득점은 박 감독이 훈련 때 늘 강조했던 패턴으로 이뤄진 작품이었다. 박 감독도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안탈리아(터키)=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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