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미완성으로 끝난 '포체티노의 노림수'.
입력 : 2014.09.2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후반 11분 터진 샤들리의 선제골에 반색했다. 토트넘이 아스널 원정에서 승리한 건 2010년 11월이 마지막(2-3승). 이후 상대 전적 2승 1무 5패로 밀려버린 북런던더비의 흐름을 뒤집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후반 29분 체임벌린의 슈팅이 골망을 뒤흔들고야 말았다. 토트넘은 28일 새벽(한국시각) 영국 런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4/2015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6라운드에서 1-1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토트넘이 최근 몇 년 간 4위권에 안착하지 못한 데엔 경쟁팀에 당한 완패가 크게 작용했다(마지막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2010/2011시즌). 단순히 1패가 아닌, 팀 분위기가 폭삭 주저앉을 만큼 두들겨 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시즌엔 맨시티(6-0패, 1-5패), 첼시(4-0패), 리버풀(4-0패)이 토트넘에 망신살을 안겼다. 그중엔 경기가 끝나기도 전 팀 셔우드에게 악수를 건네고 퇴장한 무리뉴의 '조기 퇴근'도 있었다. 숱하게 골을 헌납하며 '보약' 역할을 자처했던 결과는 골득실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맨시티(+65)에 이어 리버풀(+51), 첼시(+44), 아스널(+27), 에버턴(+22)이 넉넉한 득실차를 보인 동안, 토트넘은 +4에 그쳤다.

상위권 팀을 상대로 윗선에서 승부를 내려던 경기 운영. 이러한 선택은 대부분 과욕으로 귀결됐다. 중심이 앞으로 쏠린 팀 조직은 파멸로 치달았다. 도슨, 베르통헌, 키리케스, 카불 등 중앙 수비에 기용된 자원들은 라인 컨트롤, 수비 리딩, 볼처리 등 전반적인 부분에 걸쳐 '실수 종합 선물 세트'가 되었고, 때로는 요리스까지도 동참해 애를 태웠다. 언제부턴가 선제 실점이 당연해졌다. 추격을 위해 라인을 끌어올려야 했고, 이 과정에서 노출한 뒷공간이 상대 공격수의 먹잇감이 됐을 때, 토트넘의 챔스는 더는 현실이 아니었다. 신기루일 뿐이었다(하단 캡쳐는 2013-14 EPL 6R 맨시티전 6-0 패배 중 마지막 실점 장면).


'선제 실점은 죄악이다'. 포체티노의 아스널전 구상은 이 명제로부터 시작했을 터다. 실점 시기를 최대한 늦추면서 역으로 한 방을 노리겠다는 심산. 최전방의 아데바요르-샤들리가 아르테타(플라미니)를 묶는 등 최소한의 압박은 가하되, 기본적인 컨셉은 한 발 뒤로 물러난 형태였다. 윗선에서 어설프게 맞받아치는 대신 중앙선 아랫 지역을 지키며 신중히 임했다. 볼 점유율이 31%에 그쳤을 만큼 상대의 패스 및 드리블에 맞서야 하는 피곤함도 늘어났지만, 이 모든 것이 역습을 위한 '전략적인 웅크리기'였다. 상대에게서 빼앗은 볼이 빠르고 정확한 첫 번째 패스로 연결만 된다면 승산이 있었다.

효과는 이른 시점부터 나타났다. 토트넘은 특히 세트피스(코너킥) 수비 이후의 공격 전환에 재능을 보였다. 역습 과정 중 에릭센이나 라멜라가 뽑아낸 패스는 질이 괜찮은 편이었고, 상대 진영에서 '아스널 수비 3~4명 vs 토트넘 공격 3~4명' 정도의 구도를 만들어냈다. 상대의 플레이메이킹을 억누르는 과정에서도 재미를 봤다. 상대 볼을 끊어낸 곳은 보통 중앙선으로부터 1~20m 아래 지점. 상대의 압박이 시작되기 전 공격의 심지에 불을 붙이기에는 적격이었다. 아스널의 미드필더가 제대로 복귀하지 못한 시점에 토트넘은 이미 득점에 근접한 공수 숫자 싸움을 만들어냈다.

아쉽게도 슈팅 직전의 한 방까지는 없었다. 뒷걸음질 치는 코시엘니-메르테사커 라인을 곤욕스럽게 할 만한 '움직임+패스'의 부재는 번번이 토트넘의 발목을 잡았다. 볼을 소유한 선수 외 나머지 동료가 이뤄낸 움직임이 썩 긍정적이지 못했던 탓. 오프사이드 트랩을 의식해 상대 최후방 라인에 맞춰 뛸 자원이 없었다. 즉, 횡으로 뛰면서도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꿔 앞 공간을 창출할 자원이 부족했다. 종종 짧은 패스로 페널티티박스 안을 잘라 들어가기도 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윌셔-램지는 아르테타(플라미니)를 지지대로 삼아 폭넓게 움직였다. 왼쪽 측면 공격은 깁스가 전진해 맡았고, 해당 위치에 놓인 외질은 특정 진영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뛰며 웰백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 상황에서의 문제는 투입하는 전진 패스 중 상당수가 재차 튕겨져 나온다는 것이었다. 후방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해야 했던 아르테타는 상대의 전방 압박 탓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고, 뚜렷한 공격 루트를 찾지 못한 차에 외질과 램지까지 아래로 내려오는 빈도가 늘었다. 중앙을 정면으로 비집고 들어가기엔 공간도, 선수도 모자랐다.​

해답은 오른쪽 측면에서 찾았다(상단 캡쳐 참고). 아르테타를 미끼로 내놓은 아스널은 메르테사커가 직접 빌드업에 가담한다. 땅볼로 깔아준 롱패스는 높은 성공률을 보였고, 또 다른 연계를 거쳐 유효한 크로스로 진화한다. 챔버스는 챔벌레인이 머문 높이까지 올라가 주고받는 패스의 정확도를 높였으며, 램지와 윌셔는 꾸준히 삼각 대형을 형성해 도움을 주었다. 이 지점에서 살아 들어간 볼이 페널티박스 앞 골대 정면까지 운반돼 슈팅으로 이어졌다. 다만 수비벽이 완전히 허물어지지 않은 상대의 골문을 뚫기란 쉽지 않았다. 요리스는 거리가 있는 슈팅을 곧잘 막아냈다.

토트넘은 이 시기를 다소 어려워했다. 슈팅까지 마무리하고, 수비로 전환한 아스널은 공략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속공과 지공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상대가 전형을 오므리고 수비에 전념했을 때에는 좀처럼 패스를 이어가질 못했다. 선수 개개인의 탈압박 능력도, 패스를 받아줄 동료의 활발함도 떨어졌다. 패스 타미밍을 놓쳐 볼 소유 시간이 길어지고, 여기에 실수까지 덮치자 부랴부랴 수비로 돌아서기에 바빴다. 공격을 풀어나가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상대가 공격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선제 실점을 내주지 않은 위력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컸다. 후반 들어서도 측면에 기반을 둔 아스널의 공격은 매서웠지만(90분 동안 총 39개의 크로스를 시도), 토트넘의 골문 앞엔 '벽'이 서 있었다. 그간 상위권 팀을 상대로 뒷공간 속도 경합을 해야 했던 카불은 늘 힘겨워했다. 급하게 반응하는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팀이 아래로 내려서 공간을 죽이는 경기를 하자, 본인의 수비 범위 내에서 한결 높은 임무 완성도를 보였다. 볼 처리가 깔끔했던 덕에 요리스가 할 일도 조금은 줄었다.

수비 전형의 위치는 낮았어도, 전방에 대한 영향력은 항시 갖고 있었다. 상대의 패스에 빈틈이 보일 때(횡패스의 강도가 약해 압박의 타이밍을 노출하는 경우. 종패스를 받고 돌아서는 과정에서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등)를 노려 언제든 공격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후반 11분 터진 샤들리의 골도 이 노림수가 그대로 먹혔다. 슈체츠니가 볼을 짧게 연결했을 당시 토트넘은 윗선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고, 메르테사커의 전진 패스가 나온 그 순간 플라미니의 턴 동작을 놓치지 않았다. 에릭센의 가로채기와 라멜라의 패스에 이은 샤들리의 슈팅까지, 이 경기에서 토트넘이 보인 공격 완성도를 감안하면 최상의 결과였다.​

하지만 승점 3점은 허망하게 날아간다. 후반 29분 라멜라의 왼발 클리어링이 빗맞으면서 볼은 아스널의 득점권 안에 계속 머물렀고, 끝내 챔벌레인의 동점골로 이어졌다. 이후 노골적으로 치고받는 상황에서 토트넘은 경고 및 체력의 부담까지 안았다. 경고를 받은 이가 6명에 달했던 터라 속도전을 저지하는 과정에서의 수비 동작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에릭센 대신 레넌을 넣기도 했으나, 대니로즈가 부상을 호소하며 타운젠트 카드는 끝내 꺼내 들지 못했다. 수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더 공격적으로 나서야 했던 시간대를 속절없이 흘려보낸 포체티노. 노림수는 미완성으로 막을 내렸다.

글=홍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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