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중동 2연전 총정리① 기성용 없는 4-1-4-1 가능할까
입력 : 2014.11.2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시스템이 전부는 아니다. 4-4-2든 4-3-3이든 감독의 성향,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의 능력 및 궁합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동일한 시스템도 사용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내기도 한다. 단순히 '숫자 놀음'쯤으로 치부하는 시선도 여기에서 기인했을 터. 하지만 시스템은 운동장에 들어선 이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약속이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하며, 동료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가늠하는 일련의 과정을 가벼이 여길 수만도 없다.

슈틸리케호는 이번 중동 2연전에서 4-1-4-1과 4-2-3-1을 실험했다. 브라질월드컵 최종 예선, 월드컵 본선까지 쭉 사용해 온 4-2-3-1 외 다른 시스템을 꺼내 들려는 노력은 줄기차게 이어졌다. 지난 9월 신태용 코치 대행 체제 때부터 고심의 흔적(4-3-3, 3-4-3 활용)을 남기더니 이번에도 45분을 기꺼이 할애했다. 경기 내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종목 특성상 한 명의 미드필더가 앞에서 뛰느냐(4-1-4-1), 뒤에서 뛰느냐(4-2-3-1)를 엄격히 구별 짓기는 어려워도 기본 컨셉 자체가 다른 옷을 입혀보려는 시도는 존재했다.

전술적 다양성이란 차원에서 기존 시스템을 넘어선 유연함을 가미할 수 있었다. 중원의 터줏대감으로 성장한 기성용이 지금껏 임무를 잘 수행해왔지만, 내년 1월까지는 어떤 변수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단기 대회 특성상 2~3일 걸러 펼쳐지는 경기 일정도 고려해야 하며, 상대 수준과 색깔에 따라 다양하게 대응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실험은 분명 가치가 있었다.



▲ 한국영은 노른자보다 흰자에 가까운 타입

요르단전 전반 45분의 모토는 '기성용 없이도 역삼각형 중원을 내놓을 수 있느냐'는 것. 답은 명확했다. 한국영이 독립적인 존재로서 그 넓은 공간을 떠안기엔 부족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후방에서 나오는 볼을 안전하게 소유하거나, 정확하게 배달해주는 작업에서 아쉬움을 짙게 남겼다. 기성용과 비교해 터치가 투박하다 보니 볼을 키핑한 뒤 다음 플레이를 가져갈 만한 여유가 현저히 떨어졌다. 하물며 경기 전체의 템포와 운영을 조율할 만큼 흐름을 읽는 눈이 탁월하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하단 캡처는 한국영 포함 총 8명의 선수가 올라가 있는 장면이다. 다소 극단적인 상황을 제시했을지 몰라도 해당 위치에 배치한 선수가 지녀야 할 능력치를 낱낱이 고하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조금 더 안정을 기해야 했던 한국영은 이로부터 14초 뒤에 볼을 빼앗긴다. 역습을 내주지는 않았어도 후방엔 중앙 수비 둘밖에 없을 만큼 위태로웠다. 볼을 지킬 능력이 떨어진다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포지션. 기성용 역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데뷔 시즌 위험한 장면을 여러 번 노출했음을 되짚어보면 절대 쉬운 자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여러 역할을 도맡으면서 본래 장점까지 퇴색했다는 것이다. 기성용만큼 볼을 운반할 능력은 없어도, 더 많이 뛰고 끈덕지게 들러붙는 것이 곧 한국영을 월드컵 무대에까지 올린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볼 뿌리는 데 치중하느라 중앙선을 넘어오는 상대 공격를 잡는 일도 버거워졌다. 루트를 제때 파악하지 못한 것은 물론, 일대일 대결 중 턴동작에 쉽게 벗겨져 나가는 장면까지 나왔다. 흡사 브라질월드컵 알제리전 네 번째 실점을 떠올렸을 정도. 본인에게 맞지 않는 위치에서 생소한 역할까지 겸했을 때의 위험 부담은 컸다. 한국영이 갈팡질팡하는 동안 중앙 수비도 휘청했다.

역할론의 관점에서 접근할 부분이다. 한국영은 달걀의 노른자를 둘러싼 흰자는 될 수 있어도, 스스로 노른자-흰자 모두가 되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전력에서 처지는 팀이 뒤로 물러나 있을 때라면 크게 티가 안 날지 모르지만, 당장 요르단 만한 팀이 줄기차게 달려들어도 힘겨워했다. 노른자를 빛낼 수 있는 흰자가 정답이었다. 이에 대한 답을 확실히 안고 아시안컵에 임할 수 있다는 점에서 45분간의 실험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 원톱 아래 세웠던 두 명의 미드필더는?

한국영은 기성용보다 조금 더 높은 선에서 볼을 받으려 했다. 상대 압박을 피해 종종 아래로 내려오던 기성용과는 달리 중앙선 언저리에서 상대와 부딪친 것. 공격적인 포지셔닝을 통해 적극적으로 볼을 운반하겠다는 의지도 있었으나, 2~3m 내에 접근한 요르단의 압박을 이겨내리란 확신이 없었다.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기 전, 볼을 받고 돌아서서 전방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탓에 중앙 수비는 발밑으로 공격을 전개할 엄두를 못 냈다. 확률 떨어지는 롱패스가 난무한 것, 남태희-조영철이 공격 과정에 많이 참여하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상대는 한국영을 노리고 옥죄었다. 뒤집어보면 이를 '미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아군 하나에 적군 둘이 붙었다면 또 다른 진영(구체적으로 요르단의 1선과 2선 사이)에서는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남태희-조영철 라인이 조금 더 폭넓게 움직이며 패스 루트를 만들고, 원톱 박주영이 상대 최후방 라인과 동일선상에서 머물며 돌아뛰는 그림. 여기에 양 윙어 김민우, 한교원이 측면 뒷공간으로 직선적인 침투를 병행했다면 더 좋은 기회가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의 후방에 부담을 안길 조직적인 장면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애꿎은 '한국영 미끼'만 족족 잡아먹혔다.

원톱과 수비형 미드필더 사이에 세운 두 명의 중앙(인사이드) 미드필더 자원이 딱 들어맞지도 않았다. 2012년 11월에 있었던 호주전에서 최강희 감독은 4-1-4-1을 꺼내 황진성, 하대성, 고명진 등을 해당 위치에 세웠었다. 구자철, 김보경이 드나들었던 공격형 미드필더 한 자리를 꿰차기엔 부족하고,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던 이들이 만개할 수 있는 시스템과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현재로선 대표팀에서 만나기 어려운 얼굴들이 됐다.

조영철은 그간 여러 위치(조광래호 오른쪽 측면 수비, 슈틸리케호 최전방 원톱 등)를 오가면서 애매해진 느낌이 강하다. 남태희는 무난했으나,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받치면서 더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이 좋았을 법하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한국영을 내리고 '기성용-@'의 조합을 올리기에는 후방 플레이메이킹이 급락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합이 잘 맞는지 체크해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팀 밸런스 문제

오른쪽 측면은 나름의 성과를 냈다. 한교원이 부지런히 볼을 잡았고, 차두리는 깊숙이 올라와 도움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왼쪽 측면은 전반 26분, 36분에 나온 김민우의 크로스가 전부였다(코너킥 상황 제외). 주로 중앙으로 좁혀 들어간 김민우와 오버래핑을 시도한 박주호의 타이밍이 어긋나며 둘 사이의 간격엔 쫄깃함이 부족했다. 단순히 연계 플레이를 망친 것 이상의 역효과였다. 좁혔다 벌리는 윙어의 움직임을 통해 상대를 흔들기엔 한계가 있었고, 중앙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던 탓에 상대 시야에 스스로 갇히며 수비를 수월하게 만들어준 부분도 있다.

4-2-3-1이 몸에 배어 있었다. 박주영 아래 세 명을 배치한 후반전부터 공간을 구획하고 압박을 조직하는 움직임이 한결 자연스러워진 것도 같은 맥락. 네 명이 일렬로 늘어선 형태에서 측면으로 넓게 벌리지 못해 루트가 절반쯤은 닫혔고, 박주영이 내려와 함께 싸울 지점에서 김민우, 조영철, 남태희의 동선이 겹치곤 했다. 원톱 아래 두 명을 놓아 플레이메이킹을 분담한다는 메리트도 사라진 채 잉여 자원만 양산했다. 이는 수비 밸런스까지 흔들 우려가 있었다. 측면 수비의 어설픈 전진은 뒷공간 헌납으로 이어지고, 실제 상대의 볼이 투입돼 부랴부랴 전환한 적도 있다.

아시안컵은 '화끈하게 이기는 경기'보다는 '지지 않는 끈적한 경기'가 우선이다. 2007 아시안컵 당시 최강의 전력이 아니었음에도 3위까지 올라간 건 이운재의 승부차기 선방 쇼와 더불어 6경기에서 3골만 내준 짠물 수비의 덕이 컸다. 중동 국가와 맞붙어야 하는 특성상, '선제골'의 중요성이 극에 달하는 대회. 공격 이상으로 중요한 건 팀 밸런스를 바탕으로 한 수비력이었고, 모험보다는 안정을 꾀하는 것이 정답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글=홍의택
사진=SBS 중계화면 캡처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