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중동 2연전 총정리② '박주영, 호주 데려가시겠습니까?'
입력 : 2014.11.2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김신욱이 쓰러졌다. 이동국도 쓰러졌다. 그리고 박주영이 돌아왔다. 사우디리그 알샤밥으로 적을 옮겨 골을 뽑아내더니 때마침 비어 있는 대표팀 최전방 자리에까지 입성했다. 이근호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요르단전에 선발 출장해 풀타임 소화했다. 이어 펼쳐진 이란전에서는 후반 27분 교체 투입돼 피치를 누볐다.

뜨겁고도 뜨겁다. '박주영'이란 소재는 불꽃 튀는 수준을 넘어 대형 화재로 번질 만큼 진화한 지 오래. 옹호와 반박을 두고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고는 있지만, 어쨌든 선택의 몫은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 있다. 평가전을 통한 치밀한 분석, 훈련을 거친 내부 평가, 대회 직전의 몸 상태 등을 고려한 최종 간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또 존중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 요르단전-이란전, 총 108분 출전 일지

요르단과의 전반전. 박주영은 자주 보이지 않았다. 해외에서 열린 경기 특성상 TV중계 화면에 의존해 특정 선수를 판단해야 했다. 대표팀 스탭이 현장에서 직접 촬영하는 비디오 분석용과는 달리 경기장 전체를 조망할 수 없었다. 앵글은 볼이 머무는 곳에 한정됐고, 중원에서 쉽사리 풀어 나오지 못한 내용상 최전방 박주영이 많은 조명을 받기는 어려웠다. 지난 9월, 베네수엘라전에서 2골을 작렬하며 센추리클럽 자축포를 쐈던 이동국이 사흘 뒤 우루과이전에서 홀연히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후반전에는 상황이 나아졌다. 원톱 박주영 아래 미드필더의 형태를 바꾼 것. 4-1-4-1에서 기존 4-2-3-1로 돌아선 대표팀은 동료와의 간격 조절, 패스 거리 등 공격 작업 전반에 걸쳐 조금 더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손흥민, 이청용, 구자철까지 차례로 투입되면서 상대 진영을 넘나드는 일도 늘어났다. 박주영은 왼쪽 측면에서 오른발 인사이드로 감아 때린 슈팅, 상대 수비를 향해 달려든 전방 압박 장면에서 단독샷을 받기도 했다.

이란전에서는 후반 27분 교체 투입됐다. 흐름상 정상적인 공격을 전개하기 어려웠고, 후반 37분에는 결승골까지 내줬다.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졌으며 팀 전체가 심리적으로 말리는 모습도 여러 차례 나왔다. 공격 시도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박주영 역시 볼 잡는 횟수가 극히 줄었다.



▲기존 공격수들과의 비교, 달랐던 점

이동국부터 김신욱, 박주영, 이근호까지 원톱 자원으로 꼽히는 이들은 각기 다른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호불호의 색안경을 쓰고 가타부타 논할 사안이 아닌 셈. 어떤 상황에서는 이 선수가 적합할 수 있으며, 또 다른 상황에서는 다른 선수가 어울릴 수도 있다. 일단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에 초점부터 맞춘 뒤 가장 확률 높은 이를 데려가는 것이 맞다. 일각에서는 기적 같은 한방으로 팀을 구해낼 '초능력'을 기준으로 삼기도 하는데, 이에 부합하는 공격수는 없다.

박주영은 분류상 정통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그보다는 2선에서 움직이며 뭔가를 만드는 데 익숙한 타입이다. 상대 중앙 수비를 끌어내고, 그 빈공간으로 들어가는 동료를 살리는 과정이 더 맞을 수 있다. 미드필더 진영이 시원찮았을 때 본인이 직접 내려오는 플레이, 골이 나오기 직전의 결정적인 패스를 이을 수 있다는 것은 경쟁 상대보다 우위를 점할 부분(상단 캡처 참고). 세밀함을 필요로 하는 한정된 공간에서 무난하며, 평균 주력 및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스피드도 괜찮기에 가능한 장면들이다. 또, 등지는 동작나 공중볼 경합도 준수한 편이다.

다만 존재감이 희미해질 각오는 해야 한다. 페널티박스 언저리에서의 움직임은 좋아도 박스 내로 재진입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원톱을 놓는 의미가 없다. 박주영 대신 들어가 득점할 만큼 감각 좋은, 몸 상태가 싱싱한 미드필더도 현재로선 마땅치 않다. 또, 고립을 피해 아래로 내려오는 적극성이나 활동 범위 면에서도 조금 더 꾸준히 경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위와 같은 장면을 자주 만들지 못하면 팀 전체적으로도 큰 손해다. 이는 이번 2연전에서 골을 넣었다고 해서 순식간에 찬양으로 돌변할 근시안적 판단이 아니다.

"직접 눈으로 경기력을 확인하고 싶었다"라며 박주영을 불러들인 슈틸리케 감독. 중동 2연전을 치른 뒤에는 "소속팀에서 경기 감각을 끌어올려야 대표팀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평가를 남겼다. 아무래도 박주영을 옹호하는 이들이 기억하는 한창때의 모습이 아직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 슈틸리케호의 공격수 보유 현황

아시안게임 후유증은 컸다. 정강이가 골절된 상태로 북한과의 결승전에 나선 김신욱은 지금 경기도 소재 모 재활 센터에 머물고 있다. 부지런히 몸을 만들어도 평상시 리그 경기를 준비하던 것과 비교해 운동량과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동국도 마찬가지다. 통증이 많이 가라앉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스스로 "몸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고 할 만큼 상황이 긍정적이지는 않다. 무엇보다 두 선수 모두 두세 달가량 실전을 뛰어보지 못하고 호주로 날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이근호를 정통 스코어러(Scorer)처럼 활용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폭넓게 많이 뛰는 것을 무기로 해 부족한 정교함, 세밀함을 메워 왔다. 하지만 메인 공격수로 대회를 통째로 소화하기엔 위험 요소가 적지 않다. 박스에서 벗어나 있는 시간대가 많은 만큼 본인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장면이 많지는 않을 전망이다. 더욱이 본인의 몸부터 확실히 올려야 장점으로 통하는 땀 흘리는 축구도 비로소 가능하다.

지난 10월 파라과이전에서 조영철을 올렸듯, 손흥민을 최전방에 놓는 방안도 있다. 팀 내부적으로도 판단이 선다면 예선 일정에서 한 번쯤 실험해볼 법은 하다. 다만 개최국 호주 외 같은 조에 포함된 쿠웨이트와 오만이 공간을 열어주는 게임을 할지는 미지수다. 브라질월드컵 러시아전과 같이 상대와 비등한 경기를 한다면 후방에서 넘어온 볼을 따라 공간을 부수는 게 가능하겠지만(속도를 붙인 상황에서 치고 달릴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경기 양상이 나올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합류가 불투명한 이동국, 김신욱을 두고 "우리 팀의 가장 큰 고민이다. 공격 자원에서 다른 대안이 없는 게 문제다"라며 현 상황을 설명했다. 박스 내에서 존재감을 발휘할 만한 공격수를 2배수(그것도 서로 다른 유형으로)는 챙겨야 하는데, 확실한 카드 한 장마저도 없는 형국. 과연 누가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릴 아시안컵에서 슈틸리케호의 최전방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글=홍의택
사진=대한축구협회, SBS 중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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