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이재성 인터뷰② ''이 정도면 밥값 하지 않았나요?''
입력 : 2014.12.2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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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전북), 김승대(포항), 안용우(전남). '2014 현대오일뱅크 K리그 대상' 영플레이어상 부문에는 세 명의 후보가 올랐다. 이재성은 "승대 형이 공격 포인트가 월등히 많아요."라며 겸손해 했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또 그런가. 정규리그 최종전 이후 고향 집에 들러 정장까지 예쁘게 맞춰 입고 상경했다. 하지만 상 받으러 간 자리, 결국 춤만 추고 왔다. 인터뷰 도중 전화를 걸어온 곽해성(성남)에겐 "아, 춤 얘기 좀 하지마."라며 멋쩍게 웃었다.

▲ 생애 첫 K리그 시상식은 사실상 '초대 가수'로 참석했다.

"재롱은 내가 피우고, 상은 승대 형이 받았다(웃음). 난 춤만 추러 왔구나 싶었다. '베스트11'도 마찬가지다. 한 시즌 동안 뛴 자리를 감안하면 공격수로 들어갈 순 없고, 그렇다고 미드필더에도 안 되고. 다른 선수들과 경쟁이 안 됐다. 표 거의 못 받았을 거다. 솔직히 받을 수가 없는 자리였다."

▲ 영플레이어상에 대해 "욕심 없다면 거짓말이죠"라고 말해오지 않았나.

"상이란 게 받으면 남는 거니까. 그런데 승대 형과의 포인트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몇 주 전부터는 포기한 것도 있었다. 아시안게임 동안에도 K리그 결과 얘기만 했지, 상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부모님도 기대는 하셨지만, '(공연) 무대의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라'라고 하셨다."

▲ 귀여움과 오글거림이 공존한 그 무대는 어떻게 하게 된 건가.

"시상식 일주일 전이었나. 걸그룹 '딸기우유(초아, 웨이)' 백댄서 안무를 책임지시는 분이 연락을 해오셨다. 제의가 들어왔을 때, 이거 부끄럽기는 해도 좋은 추억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리허설 때문에 포토타임도 못 했다. 남긴 사진도 제대로 없고. 진짜 재롱만 피우고 왔다(웃음)."



▲ 입대를 2주 앞둔 이승기와 함께 무대에 섰다.

"승기 형은 '나는 나이도 있는데…. 스물일곱이나 먹었는데 이런 걸 해야 하나. (이)주용이도 있는데 왜 날 시켜'라며 살짝 불만이었다. 그런데 시상식 가서 가수분들과 리허설을 한 번 하더니 갑자기 본인이 나서서 '한 번 더 맞춰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막 그러더라."

▲ '칼 군무' 수준은 아니었어도 나름 혼연일체였다. 이후에도 연락은 했나.

"그전에 만나서 연습하진 못했고, 시상식 당일에 처음 뵀다. 음, 솔직히 좀 설렜다(웃음). 언제 걸그룹 한 번 만나보겠나. 그런데 막상 몇 마디 못 나눠 아쉬웠다. (그래놓고 전화번호 받은 건 아닌가) 아니다. 물어볼 자신이 없었다. 부끄러워서."

▲ 그래서 여성팬들 앞에 어떻게 서겠는가.

"여성분들 앞에 서는 데 원체 소질이 없다. 남중, 남고를 나왔으니 이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게 대학교까지 갔다. 친구들이 여자친구랑 지내는 사진을 SNS에 계속 올리다 보니 부러운 것도 있다."

▲ 곧 스물넷이다. 운동선수 특성상 연애도, 결혼도 한 번쯤 생각해볼 나이다.

"지금은 운동에 몰두할 때다. 그에 따라 모든 게 따라오니까. 언젠가는 더 좋은 여자 만나겠지. 시즌이 끝난 요즘 결혼식도 많아져 점점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빨리 하는 것도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26살쯤 하는 건 어떨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영플레이어상의 기회는 내년에도 있다. 이재성은 그보다 더 값진,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순간을 잡았다. 꿈은 꾸되 쟁취하리라 확신하지는 못했던 그 달콤함을 끝내 누렸다. 아시안게임 내내 준수한 경기력으로 팀을 이끌었던 이재성은 2선 공격 작업을 도맡았고, 28년 만에 대회 금메달을 따낸 기세는 생애 첫 성인 대표팀 승선이란 결실로 이어졌다.

▲ 아시안게임 결승전 북한전에서 당한 부상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잠시 타박인가 했다. 참았다가 일어나서 팔을 움직여보니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라운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데 팔이 안 흔들리더라.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해서 다시 나왔다."

▲ 아파서 꿈쩍도 못 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라커룸 들어가고 조금 있으니 또 괜찮은 거 같았다. '이거 괜히 나왔나. 괜찮잖아?'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역시 아니구나 싶었다. 라커룸에 혼자 앉아있는데 동료들이 전반전을 막 끝내고 들어왔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고, 나는 또 '이겨달라'고 하고. 그때 조금 울컥했다(웃음)."

▲ 연장 막판까지 0-0으로 갔다. 직접 뛰는 거보다 더 속이 타지는 않았을까.

"당시 벤치에서는 (윤)일록이랑 (노)동건이 형이랑 같이 재미로 승부차기 순서까지 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결승골이 딱 들어간 거다. 좋아 죽겠는데 아파서 뛰어 나가지도 못하고 참."

▲ 승부차기까지 갔다면 또 모를 일 아닌가.

"그래도 승부차기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다. (김)승규 형이 있지 않았나. 연습 때 우리가 형 상대로 직접 차보기도 했고. 승규 형 스스로 자신이 넘쳤다. '나 괜찮으니까 믿어라'라고 했다."

▲ 금메달에 따라오는 혜택도 무시할 수는 없다. 특히 운동선수에게는 각별하다.

"친형이 안산 경찰청에서 뛰고 있어도 군대가 실감 나지는 않았다.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박)주호 형이 그렇게 날뛰는 걸 보면서 의아해하기도 했다. 다른 형틀한테도 그렇게 말했더니 '1년, 1년 지나면서 훨씬 더 크게 느껴질 걸'이라고 하더라."

▲ 슈틸리케 감독이 아시안게임 현장을 찾곤 했는데, 새로 뽑힌 건 김승대뿐이었다.

"경기장을 찾으신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다. 발표된 명단을 보면서 어깨 부상이 아니었으면 나도 한 번 뽑아줬을까 기대한 건 있었다."

▲ 아시안컵 대비 명단에서 다시 기회가 왔다.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가 쏟아졌을 텐데.

"참, (손)흥민이한테 연락이 왔었다. 중학교 때 알던 친구였는데, 대뜸 오랜만에 '축하한다'고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사칭 아닌가 싶어 진짜 맞냐고 되묻기도 했다(웃음). '얘가 이런 애였나' 싶기도 했고. '열심히 해'라며 서로 격려했다."



이재성은 가는 곳마다 복덩이가 됐다. 새파란 신인이 팀의 한 축을 지탱한 덕에 전북은 시즌을 조금 더 수월하게 보냈고, 2009, 2011 시즌에 이어 세 번째 별을 달았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그토록 치명적이었던 이 남자도 순수함 가득한 스물셋 청년일 뿐이었다. 먼저 프로로 진출한 동갑내기들에 대해 "언제쯤 그렇게 될까 싶었어요. 이제는 포탈 사이트에 저도 나오더라고요"라며 으쓱해 하더니 이내 "제 기사도 보고요. 댓글도 다 봐요. 이래 봬도 1년 차잖아요."라며 쑥스러워했다.

▲ 올 한 해 밥값은 했다고 생각하나.

"신인 치고 이 정도면 밥값은 하지 않았을까(웃음)."

▲ 첫해에 정말 많은 걸 이뤘다. 위상도 완전히 바뀌었고.

"프로 선수로 산다는 게 아직도 어색하다. 학교로 돌아와 수업받고 과제 내니 다시 대학생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친구들 시선을 보면서 갑자기 바뀐 내 위치가 조심스럽기도 하다. 말 한마디 해도 신경을 써야 하고. 1년 전 (프로행) 선택 한 번에 인생이 이렇게 바뀌었다."

▲ 이제는 친구들 대신 팬들에게 둘러싸였다.

"친구들에게 연락이 와도 바로 답장을 못 하고, 밤늦게 연락을 줘야 한다. (고교 졸업 후 프로로 직행한 이동국은 대학 생활도 없지 않았나) 나도 이런데, 동국이 형은 정말 어떻게 해왔나 싶다. 월드컵까지 다녀오신 최강희 감독님도 그렇고."

▲ 스스로 돌아볼 여유도 없지 않았을까.

"일단 시즌 중에는 경기, 구단 행사 등에 전념해야 한다. 이번에 제주도 전지훈련이라도 없다면 몰랐을까. 이제 조금 있으면 내년 시즌이다. 형들이 '시간이 정말 빨리간다'라는 게 이런 것임을 느끼고 있다."

▲ 휴가를 받아도 휴가가 아니다. 쉴 시간도 없었을 텐데.

"지금껏 축구를 하면서 처음으로 한 달짜리 휴가를 받아봤다. 마냥 좋아서 계획도 다 짜놨는데, 생각과는 너무 다르더라. 시상식 가야지, 행사 가야지, 내 시간이 없더라. 예약해놓은 펜션도 대표팀 가면서 다 취소했다."



▲ 배부른 소리 잘 들었다(웃음). 프로 생활 십여 년간 우승 한 번 못해본 이도 수두룩하지 않나.

"솔직히 너무 빨리 이루다 보니 좀 그런 게 있다. 고생한 만큼 얻어야 하는데, 1년 안에 생각했던 것 이상을 누렸다. 대학교 시절에도 거의 해마다 우승을 했고. 그러다 보니 조금은 당연하게 느낀 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다른 형들만큼 크게 다가오는 건 없었다."

▲ 그래도 프로에서의 우승은 다르지 않았나. 가령 우승 보너스라든가.

"그보다는 구단에서 우승 기념 회식을 했는데 씨스타, 에일리 등 가수분들을 초청했다. 그때 '아, 이게 우승의 맛이구나'를 느꼈다(웃음). (김)민식이 형은 또 한바탕했다. 행사만 하면 노래하면서 분위기를 이끈다. 최고였다."

▲ 벌써 다음 시즌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특별한 목표가 있을까.

"바람이나 목표보다는 걱정이 있다. 내년에는 '올해만큼 얻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시작해야 한다. 어쩌면 공허하지는 않을까. 특별하게 뭔가를 이루기보다는 부상 안 당하고 묵묵히 하고 싶다. 2014년, 모든 것에 감사한 시즌이었다."


글=홍의택
사진=윤경식, 전북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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