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전북 1강론'에 가린 최강희 감독의 고민
입력 : 2015.02.2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2위 수원 경기력이 안 좋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우리 전북도 할 말 없다. 이재성이 차출되면서 연결할 자원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동국이 아저씨 바로 아래뿐만 아니라 그 밑 자리도 문제다. 상대가 내려섰을 때, 지금 있는 선수들의 투박함으로는 어려움이 많다."

지난해 10월 초, 이재성(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당한 어깨 부상으로 복귀가 늦어졌던 시기)의 공백을 논하던 최강희 감독이 한탄했다. 이동국이란 확실한 골게터는 있어도, 최전방까지 볼을 운반할 '연결고리'가 마땅치 않았던 것. 리그 최강팀 전북을 맞아 상대는 중앙선 아래로 내려앉기 일쑤였고, 이를 뚫어낼 세밀함은 완벽을 탐하던 최 감독의 또 다른 목표가 됐다.

주위에서 들먹인 '전북 1강(强)론'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욕심은 처진 스트라이커를 넘어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인 3선에까지 번졌다. 신형민의 경찰청 입대가 확정되자, 최 감독은 시즌 중반부터 부드럽고도 세련되게 플레이할 스페셜리스트를 찾고 있었다. 후방에서 볼이 제대로 나아가지 못 할 때, 덩달아 득점 확률이 떨어지는 사태를 근원부터 뜯어고치고자 했다.



24일 저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E조 1차전에서 전북 현대가 가시와 레이솔과 0-0으로 비겼다. 지난해 요코하마를 3-0으로 완파했듯 시작부터 승점 3점을 쌓고 갔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으나, 2월 말에 시작하는 일정상 절정의 폼을 내보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잔디는 채 녹지 않았고, 전지훈련을 거친 몸이 완벽하게 돌아왔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예년 라인업과 비교해 세 자리를 바꿨다. 포지션 이동 외 최전방 에두, 왼쪽 윙어 에닝요, 중앙 수비 조성환이 새롭게(혹은 돌아온) 얼굴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에닝요의 오른발이다. 주로 왼쪽 측면을 거친 전북은 상대 페널티박스 안까지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짧게, 짧게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를 옆줄 가까이 유인하고, 단번에 때려 넣는 긴 크로스로 뒷공간을 쳤다. 반대편에서 침투하던 한교원이 줄곧 팔을 들어 앞쪽으로 크로스를 넣어달라고 주문했을 만큼, 스피드를 활용해 노릴 공간이 넓어졌다.

몸으로 에닝요를 기억하고 있을 이동국의 복귀, 그 외 오프사이드 라인을 교묘히 넘나들 공격진의 움직임만 가미된다면 K리그클래식을 히트할 공격 상품이 되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또, 에닝요를 중앙으로 옮기고 레오나르도를 투입해 지친 상대를 물어뜯는다는 구상, 이재성을 3선으로 내려 가용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 에닝요 특유의 낮게 날아가 빠르게 떨어지는 킥 궤적을 세트피스는 물론 인플레이 상황에서도 극대화한다는 기대에 전북은 이미 든든했다.



문제는 3선이다. 안방에서 가시와를 맞은 전북은 경기 시작부터 전방 압박을 강하게 둔다. 때로는 상대 수비가 첫 번째 터치마저 제대로 못 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이재성이 에두의 동일 선상으로 올라섰을 때, 정훈까지 바짝 전진해 패스 줄기를 집어삼킨다. 가시와가 전반 내내 공격 전개에 애를 먹었던 건 앞에서부터 조금 더 많이 뛰며 땀 흘린 대가였다. 여기에서 창출한 공격 전환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볼을 빼앗아낸 뒤, 바로 다음 장면이 말썽이었다. 힘겹게 쟁취한 볼 소유권을 너무도 허무하게 내주곤 했다. 이는 '투지'를 주 무기로 하는 선수들에게서 심심찮게 보이는 현상이기도 하다. '확 끓어오를 때'와 '차분히 식혀야 할 때'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점. 커팅 능력만큼은 완벽해도, 볼을 냅다 걷어차는 행위에는 배달부로서의 능력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빌드업의 완성도가 떨어질수록 주도권 대비 공격의 내실은 급감하고, 조급함은 급증한다(3선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측면 수비에서 나가는 패스 등 팀 전체적으로 정확도가 낮았다).

경기 초반에 접근한 방식, 즉 전방 압박만으로는 90분을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이른 시각에 선제 득점을 뽑지 못 할 경우 체력적 부담에 경기력 저하를 피하기는 어렵다. 탈취한 볼을 전달해 앞선 공격진의 힘을 고르게 활용하는 방법, 후방에서 볼을 간수하고 능동적으로 템포를 조절하는 과정이 부재한다면 팀 허리가 과부하에 놓일 가능성도 높다. 후반 들어 압박 선이 느슨해지고, 가시와의 전진을 허용한 것과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전북의 이적 시장 내막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는 없어도, 분명한 건 이호의 존재가 상당히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정훈도, 최보경도, 후반 막판 전진 배치된 김기희도 파트너로서 역할을 해낼 자원이기는 하나, ACL 토너먼트나 리그 최상위권 팀과 싸울 때는 중원을 장악할 리더가 하나 더 필요하다. 2선 자원을 아래로 내려 돌려 막는 방법보다는 전문 자원을 갖추는 편이 더 확실할 터. 하지만 가득 찬 외국인 쿼터 및 남은 시간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가시와전과 같은 양상이 다소 잦게 반복되리란 염려는 여전하다. 수비벽을 켜켜이 쌓은 상대, 중요한 시점에 목적 없이 뻥뻥 내지르는 전개. 볼을 배급받지 못 한 2선이 아래로 물러나 패스 루트를 늘려야 할 공산이 크고, 이후 공격으로의 전환 과정이 시원찮다면 화끈한 공격 역시 보장할 수 없다.

어쩌면 이마저도 '전북'이기에 짊어지고 갈 짐이다. 이제 막 ACL 첫 경기를 시작했을 뿐. 남은 5경기에서 다음 라운드 진출을 위해 필요한 3승 혹은 4승을 달성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최 감독의 조련이 새로운 멤버를 흡수하는 시간을 단축해 지난 시즌보다도 빨리 안정 궤도에 오를 수 있다.

전북은 주위의 견제도, 기대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만큼 막강하게 성장했다. 아시아 무대에 K리그를 어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란 점에서, 리그 내 타 클럽의 동기를 쉼 없이 자극하리란 점에서 팀을 이끄는 최 감독의 눈높이,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잣대는 더욱더 높아져 간다.

글, 그래픽=홍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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