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슛돌이' 이강인을 기억하시나요?①
입력 : 2016.01.0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발렌시아(스페인)] 왼발이 특별했던 아이로 기억한다. 단순히 공을 발로 찬다는 일차원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공간과 사람을 인지하는 한 단계 높은 플레이를 구사했던 게 아닌가 싶다. 어린 나이에도 세세한 면까지 놓치지 않으려던 볼 터치에는 '타고났다'는 표현이 붙을 법도 했다.

2001년 2월생, 한국 나이로는 중학생 2학년. 한참 큰 줄 알았더니 한창 자라고 있었다. 2007년 <날아라 슛돌이(3기)>로 방송을 탄 게 고작 일곱 살 때였으니 시간이 흘렀어도 어리긴 매한가지였다. 165cm 키에 드문드문 뾰루지까지 난 이강인(14, 발렌시아 인판틸A)은 여전히 잘 먹고 잘 자며 무럭무럭 성장해야 할 유망주였다.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발렌시아 인판틸A 홈 경기가 있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인근 도시에서는 경기 시각에 맞춰 이동하기 어려워 전날 미리 도착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발렌시아 북(Nord)역에서 기차로 30분 달려 도착한 푸졸(Puzol)역. 주로 은퇴한 노년층이 찾는 한적한 동네로 동양인은 그나마 중국인이 보이는 편이었다. 한국인 가정은 이강인네 가족을 포함해 총 세 가구가 전부였다.

역에서 또 차로 15분 남짓 이동했다. 경기가 열린 곳은 발렌시아 트레이닝 센터 내 3구장. 구단 측에서는 본래 리그를 치르던 인조잔디 운동장이 아닌, 볕이 잘 드는 천연잔디 구장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지난주 지역 라이벌 비야레알 인판틸A를 3-0으로 꺾고 무패 행진(15승 1무, 권역 1위)을 달린 데 대한 특별 배려였다. 아이들은 사소한 부문부터 끊임없이 동기를 자극받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발렌시아 인판틸A는 리그 최하위권인 상대(Club La Vall)를 맞아 주전 대부분에게 휴식을 부여했다. 이강인의 출전 여부 역시 보장되지 않았으나, 운 좋게도 선발로 출격해 풀타임을 뛰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여느 유스팀 경기처럼 스탠드에는 가족 단위 관중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부모 형제는 물론 조부모까지도 플레이 하나하나에 열렬한 호응을 보냈다.



이강인이 속한 팀에는 정해진 등번호가 없다. 대신 팀에서 유니폼을 관리하며 경기에 나서는 포지션별 역할에 따라 번호를 부여한다. 가령 스트라이커에게는 9번, 공격형 미드필더에게는 10번, 좌우 날개에는 각각 11번, 7번을 배정하는 식이다. 발렌시아 홈페이지 내 미드필더(Centrocampista)로 소개된 이강인은 주로 10번을 맡아왔고, 때로는 수비형(중앙) 미드필더인 6번과 8번으로 기용되기도 했다.

이날 10번을 단 이강인은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임무를 수행했다. 부지런히 내려와 동료들에게 볼을 달라며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했고, 볼이 상대 진영에서 돌 때에는 성실히 전방 압박에 임했다. 중앙선 너머에서 공격이 진행될 때면 경기를 결정할 '마법'을 몸소 가미했다. 특히 '왼발잡이'가 갖는 희소가치를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오른발잡이들에겐 어색한 각도에서도 적시에 창조적인 패스를 뿜어내며 상대 수비 라인을 부쉈다.

몸으로 부대끼는 장면에서도 딱히 밀리지 않았다. 스페인 진출 초기 괴물 같은 피지컬로 또래를 압도했던 이승우, 키가 크지 않아 늘 고민이었던 백승호의 딱 중간 단계로 성장 속도는 지극히 평범했다. 여기에 부모의 노력도 더해졌다. 지난 여름 방학 때부터 의식적으로 먹는 양을 늘리는 등 영양 섭취에 특별히 신경 쓴 것. 입이 짧아 많이 먹지는 않아도, 삼시 세끼에 간식을 추가한 식단 덕에 서양 아이들과 부딪쳐도 밀리지 않을 몸을 만들었다.


☞ 이강인 득점 영상 보기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하이라이트를 통해 알았던 이강인과는 차이가 있었다는 것. 왼발로 플레이메이킹을 펼치는 기본 스타일은 같았으나, 경기 흐름에 녹아있는 모습은 다소 달랐다. 골 장면을 비롯해 본인이 직접 결정짓는 상황이 많이 담긴 영상 편집본과는 달리, 실제로는 '마무리 슈팅 직전의 과정'을 만드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현지 관계자는 "선수 본인이 이러한(동료의 공격을 돕는) 플레이를 더 즐긴다"라며 설명을 보탰다.

무리한 슈팅보다는 전방 및 측면에 열려 있는 동료를 향했고, 볼 터치 횟수를 지나치게 늘리는 장면은 가급적 피했다. 여기에 필요할 때에는 과감하게 드리블을 치고 나가 본인이 해결할 힘과 스피드도 갖추고 있었다. 약팀을 만나 대체로 루즈했던 내용 속 이강인은 1골 1도움으로 팀 승리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전반 6분 동료에게 일대일 찬스를 만들어주며 첫 골을 도왔고, 전반 34분에는 열려있는 슈팅 각도를 찔러 직접 득점을 뽑아냈다(상단 영상 참고).

2-0 승리를 견인했음에도 썩 만족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별로였어요"라며 운을 뗀 이강인은 "감독님께서 저희 보고 되게 못 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지난주 비야레알전 경기와는 달리 한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혼내셨어요."라며 팀 분위기를 전해왔다. 생각보다 공을 많이 빼앗기고, 실수가 많았다는 것이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였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글, 사진, 영상=홍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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