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분석만리] 우즈벡전① '새 옷' 입은 김보경, 생각보다 어울리는데?
입력 : 2015.03.2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박지성이 직접 꼽은 '박지성 후계자'. 런던 올림픽에서 사상 첫 메달 획득. 2010 남아공 월드컵, 2014 브라질 월드컵 연속 출전. 20대 중반 김보경(25, 위건)이 쌓은 커리어는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경기력에 나타난 존재감은 '글쎄'. 선봉장이 돼 팀을 이끌길 바랐으나, 막차를 타고 가까스로 대회에 나선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저게 무슨 제2의 박지성이냐'는 비아냥과도 마주했다.

주요 활동 지대는 원톱 아래 2선(중앙, 측면 번갈아 배치)이었다. 김보경 활용법은 홍명보 감독도, 최강희 감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27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1-1)에서 '새 옷'을 입혀 런웨이에 올려보낸다. 기성용 대신 선발로 나선 김보경은 본래 위치보다 아래에 머물렀고, 색다르고도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해나갔다.



#1 '급하게 킥하지 않기', 대표팀의 운영 방식

김보경의 3선 배치를 곱씹기 위해선 경기 운영부터 찬찬히 뜯어봐야 한다. 포백 라인이 좌우로 넓게 늘어선 대표팀은 볼을 빠르게 돌리며 상대 공격수의 접근을 유도한다. 상대가 전방 압박에 나설 빌미를 흘리되, 볼 전환 속도를 높여 위험한 상황은 피하면서도 공간을 찾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렇게 볼을 회전한 다음이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전방으로 냅다 '뻥' 차 버리는 모습은 대표팀에서도, K리그에서도 심심찮게 보여왔다. 롱볼에 기댄 축구 그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요, 상대 압박을 단번에 벗긴다는 관점에서는 경제성까지 충만하다. 다만 뚜렷한 목적 없이 폭탄 돌리기 하듯 처리한 볼이 문제였다. 경기는 루즈해지고, 득점 확률은 곤두박질쳤다. 양질의 미드필더를 보유했음에도 상대를 곤란하게 하지 못 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이번 우즈벡전은 기존과는 달랐다. 타겟 역을 해낼 정통 공격수 이정협의 존재에도 롱볼 빈도는 낮았다. 골키퍼 김승규가 안전하게 걷어내는 게 아니라면, 혹은 상대 압박에 쫓긴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철저히 육로를 활용한다(하단 캡처 참고). 앞, 뒤, 왼쪽,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패스에 이리저리 움직이던 상대는 한쪽으로 쏠리기 마련이고, 이때 생긴 공간으로 패스를 보내는 차분하고도 정확한 축구가 나왔다.



#2. '2선-3선의 연결고리', 컨트롤타워 된 김보경

간격을 좁혀, 수적으로 우세한 상황을 찾으려 했다. 연계에 유리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자철 외 좌우 측면에 놓인 손흥민과 이재성 역시 삼각 대형을 얼마나 잘 형성하느냐가 관건. 공중볼 경합 후 세컨볼을 줍거나, 혹은 상대 수비 최후방 라인을 깨는 데 치중하기보다는, 아래로 내려와 충실히 볼을 배달해 나갔다. 공간이 드러난 상대 진영에서는 패스와 드리블을 적절히 혼용하며 전진했다.

이러한 방식에는 '컨트롤 타워'가 하나쯤 필요하다. 볼을 소유한 포백과 중원으로 접근하던 2선 미드필더, 그 사이에 패싱력과 수비력을 겸한 연결고리를 둬야 경기가 한결 쉬워진다. 이곳에 놓인 김보경은 예전보다 나은 모습이었다. 상대를 등진 채 볼 받는 상황이 많았던 2선에서보다 조금 더 여유를 보인 것. 앞을 보고 플레이한 시간이 늘었던 만큼 미리 관찰한 뒤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인상적인 수비도 나왔다.

공격에서의 공헌도 높았다. 4-2-3-1 시스템도 상대 전력 및 경기 상황에 따라 4-1-4-1을 혼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삼각형으로 잡은 중원 형태 역시 수시로 역삼각형으로 변한다. 측면 수비가 윙어 수준으로 전진해있는 게 아닐 때, 수비 숫자가 충분하다는 가정하에 수비형 미드필더 또한 무언가를 해내야 할 때가 많다. 한국영이 남아 있는 동안, 곧잘 공격적으로 나서던 김보경의 위치는 사실상 2선과 3선의 중간인 '2.5선' 정도였다.

2선에서 뛰던 특유의 모양새가 남아있었다. 신장이 지나치게 크지 않아 재빨리 돌아서 볼을 처리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고, 왼발잡이가 지닌 메리트를 통해 창조적이고도 도전적인 패스를 뿌렸다. 그 외 준수한 활동량으로 공격에 나설 기회를 꾸준히 잡아냈다. 기성용만큼 볼을 안정적으로 소유하고 롱패스를 정확히 뽑아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나, 김보경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존재함을 스스로 증명했다.



#3. '기성용 의존증' 탈피할 또 하나의 카드

전반 30분, 출혈이 발생한 이정협 대신 기성용이 들어왔다. 이후 중원은 한국영을 홀로 두고, 기성용-김보경을 얹는 역삼각형 형태에 가까웠다. 여기서부터 김보경의 자리가 조금씩 애매해진다. 측면 자원이 중앙으로 좁혀왔을 때, 동선 중복에 활동 범위 역시 제한됐다.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지 못 한 데에는 팀 전체 밸런스가 흔들린 이유도 컸다(다음 편을 통해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그럼에도 평가전에서 강행한 이번 실험은 의미가 컸다. 기성용이라는 '에이스'의 존재는 '의존증'이란 치명적인 약점을 낳았다. 단기 부상에는 한두 경기 정도 불참하면 그만이나 장기 부상, 기량 저하, 은퇴 등의 변수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시도한 '김보경 시프트'는 우즈벡이라는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팀을 상대로 적절히 이뤄졌다.

김보경 역시 생존 전략을 찾아야 할 기로에서 좋은 경험을 했을 터다. 위건에서의 출장 기회를 늘려왔으나, 손흥민이 건재한 상황에 구자철까지 물이 오른 모습이었고, 여기에 이재성까지 들어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슈틸리케 감독이 쥐여준 '3선'이 김보경에겐 어떠한 수로 작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글, 그래픽=홍의택
사진=윤경식 기자, KBS2 중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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