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이랜드는 어떤 축구를 했을까' 심층 분석
입력 : 2015.03.3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잠실] '개봉박두'. 외국인 감독 선임에 파격적인 선수 영입, 표범 무늬 유니폼 공개 등 색다른 접근법으로 눈길을 끌었던 서울 이랜드FC의 신고식에는 4,342명이 함께했다. 이랜드는 29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 '레울파크'에서 열린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챌린지 2라운드에서 안양과 1-1로 비겼다.

시선은 이제 피치로 향한다. 경기장 밖 행보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이랜드가 하려는 축구. 스포츠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판매하는 셈법은 본질적으로 '이랜드=축구 팀'이란 등식을 거스를 수 없고, 결국 '공 잘 차느냐, 축구 재미있게 하느냐'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오늘 모인 관중을 다시 오게 하는 법, 더 많은 이들을 끌어당기는 법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이랜드는 지난 18일 파주NFC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U-22 대표팀과 맞붙으며 전력을 선공개했다(0-0 무). 취재진 및 축구계 인사 앞에서 예고편을 상영한 것. 소집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던 올림픽팀이 대체로 단조로웠던 가운데, 이랜드 또한 썩 만족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다.



#1. 사면초가 피할 계책은 뻥뻥 차올린 롱패스

개막전 선발 라인업은 이재안 대신 조원희가 들어온 것 외엔 변화가 없었다. 열흘 간격으로 관찰한 두 경기에 대한 소감은 기본적으로 측면을 넓게 편 형태가 아니란 것. 굳이 분류하자면 공격형-수비형 미드필더를 극명히 구분한 채 좌우 윙어를 늘어놓은 다이아몬드형 4-4-2(4-1-2-1-2)보다는 4-3-1-2 시스템에 가까웠다. 조원희, 김재성 모두 중앙으로 좁혀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이 많았다.

신일수가 위아래를 오가며 변형 스리백처럼 움직일 때(수비형 미드필더를 한 명만 놓는 팀에서 자주 보이는 형태), 측면 수비가 전진하고 투톱이 옆으로 벌리며 측면을 메우기는 했다. 다만 볼의 자취는 대부분 중앙에 쏠려 있었다. 이미 상대는 수비진, 미드필더진으로 수비 전형을 꾸린 뒤. 측면이 닫혀버린 상태로 공격을 시작해야 했던 신일수에게는 선택지가 극히 제한됐다.

이 상태로 미드필더를 거친다는 건 무리였다. 안양은 이미 이우형 감독 체제로 챌린지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맞는 팀이다. 조직 완성도가 높다 보니 볼을 중원으로 보내는 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우려가 컸다. U-22팀과 붙을 때만 해도 김재성이 독자적인 힘으로 볼을 나를 수 있었으나, 프로 세계는 달랐다. 신일수가 직접 전진해 공간을 찾는 식, 즉 앞선에서 볼을 소유하는 방법도 존재했지만, 후방에 중앙 수비를 둘만 남겨두는 건 모험일 수 있었다.

짧은 패스를 낮게 잇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결국 롱패스를 뻥뻥 차올린다. 정상적인 빌드업에 실패한 데다 무게 중심까지 아래로 처졌고, 그 결과 모처럼 진행된 공격에서는 수적인 열세를 보였다. 이에 마틴 레니 감독은 "선수들이 무의식적으로 라인을 많이 내렸다."라는 분석을 내놨다. 골키퍼 김영광의 생각도 비슷했다. "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내려선 것 같다. 원래 앞에서 프레싱(압박)을 강하게 하는 팀인데, 첫 경기라 어린 선수들이 긴장을 많이 했다."



#2. 김영근이 쥐고 있던 이랜드의 키, 선제골의 시발점까지

정답은 공격형 미드필더 김영근에게서 찾았다. 밑으로 내려온 2선 자원이 왼발로 패스를 뿌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볼이 전진하고 분산됐다. 과거 전북에서 패스를 받지 못 한 에닝요가 직접 내려와 볼을 가져가던 것과 유사한 상황. 김영근의 움직임에 따라 조원희와 김재성은 앞으로 들어갈 채비를 한다. 성실함이 자아낸 기동력, 공격적으로 발달한 감각이 이를 가능케 했다.

전반 35분 얻어낸 PK는 이에 가장 부합하는 그림이었다. 후방에 머물던 김영근이 옆줄 가까운 구석으로 패스를 찌르면, 앞으로 나가며 볼을 확보한 동료가 시간을 번다. 이 볼이 다시 살아 중앙으로 흘렀을 때, 상대 페널티 박스 부근에는 투톱 및 미드필더까지 5~6명의 이랜드 자원이 접근했다. 측면으로 쏠린 안양 수비라면 순간적으로 중앙이 헐거워질 수 있었다. 실제 이랜드가 전진한 몇몇 장면은 이러한 패턴에 기인한다.

단, 미드필더 플레이가 지속해서 나오지 못 하며 이랜드의 경기력도 덩달아 떨어진다. 어쩌면 이우형 감독이 지적했던 '베테랑(김영광, 김재성, 조원희) 의존증'이 실재한 순간으로 볼 수도 있는 부분. 또, 공격형 미드필더의 마법을 마무리 슈팅 직전이 아닌, 아랫선에 방치해둔다는 건 팀적으로도 큰 손해다.

"꼭 이겼어야 했는데···."라던 김영근도 아쉬움이 컸다. "시즌을 준비할 때에는 패스를 깔아서 하다가 포워드 움직임에 따라 뒷공간을 파는 것이 우리 팀 장점이었다. 연습할 때만 해도 볼이 (앞쪽으로) 많이 들어와 줬는데, 오늘은 첫 경기다 보니 앞을 잘 못 본 것 같다. 다이아몬드 미드필더가 로테이션하면서 볼을 받아야 했지만, 그게 안 됐다."



#3. 이랜드의 생존 포인트, 측면 살리기? 감각 다지기?

신일수는 전방 압박을 노리는 상대 공격수가 군침 흘릴 지점에 서 있다. 이랜드 경기를 분석하고 나올 상대는 볼 배달부가 될 김영근, 조원희-김재성을 강하게 억누르고, 더 나아가 빌드업의 시작점이 될 신일수를 옥죌 게 뻔하다. 그렇다면 롱볼 외에도 패스를 운반할 루트를 찾아내는 것만이 살길. 이 위치를 미끼처럼 활용했을 때, 김민제와 윤성열이 서 있는 측면으로 우회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쉽게도 공격과 수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측면 수비는 허수가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상단 캡처 참고). 실제 선수단 내에서도 측면을 닫고 하는 경기를 어려워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일단은 레니 감독에 대한 신뢰가 높은 편. 개막전에서 보여주지 못 한 것을 꾸준히 개선해나갈 여지는 있는 있다. 다만 경우의 수를 더 높이기 위해서라면 측면 비중을 늘리는 것도 고려해볼 만은 하다.

체력적인 부분도 꼬집어봐야 한다. 후반 20분 이후부터 이랜드는 사실상 반코트 게임을 당했다. 미드필더를 거치지 못 한 장면이 허다했고, 최전방-최후방 라인이 50m 이상 벌어져 간격이 느슨해졌다. 상대 공격에 대한 늦은 반응은 7~80분대에 접어들어 더욱 심해진다. 이미 지난주 개막전으로 감각을 살려놓은 안양과는 달리, 이제 막 개봉한 이랜드는 아직 실전 스케쥴에 취약한 상태였다.

팀 창단에 선수단 구성이 늦었고, 운동량이 부족했던 선수들도 적지 않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즌 전체를 위한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들에 따라 식단, 보충제 복용량, 수면 시간 등을 따로 정해주고 있다"라고 밝힌 댄 해리스 피지컬 코치의 자신감이 효과를 본다면 당장은 아니라도 몸이 올라올 가능성은 존재한다. 이후에 발휘될 조합의 힘은 또 다른 효과를 낼 수 있을 터. 시간을 갖고 지켜볼 부분이다.


글=홍의택
사진=홍의택,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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