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슈퍼매치 역사 바꾼 '다섯 골' 심층 분석
입력 : 2015.04.2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수원] 몰리나 골은 아름다웠다. 골문으로부터 20m가 조금 안 되는 위치. 거리가 워낙 가까워 오히려 까다롭기도 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가볍게 찍어 차는 대신 수비벽 옆(김현성이 숙인 위치)으로 강하게 밀어 넣은 킥은 골키퍼 노동건을 앞질러 골망을 흔든다. 1-0으로 끌려가던 중 나온 동점골, 서울은 흥에 겨웠다.

그게 끝이었다. 수원은 무려 다섯 방으로 맞서며 최용수 서울 감독으로 하여금 '악몽'이란 표현을 꺼내게 한다. 1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클래식 7라운드 서울전. 전광판에 찍힌 5-1 스코어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흔한 광경이 아니었다. 2004년 시작한 서울 역사를 돌아보면 슈퍼매치에서 나온 5득점도 승리도, 넉 점 차 승리도 이번이 처음이다.

:: 수원=노동건(GK) / 홍철-양상민-조성진(연제민,71')-오범석(신세계,42') / 김은선 / 염기훈-권창훈(카이오,78')-이상호-서정진 / 정대세
* 득점 : 이상호(22, 52’), 염기훈(48’), 정대세(67, 89’)

:: 서울=김용대(GK) / 고광민-이웅희-김진규-차두리(에벨톤,45') / 오스마르 / 몰리나(윤주태,71')-고명진-고요한-윤일록 / 김현성(박주영,H.T)
* 득점 : 몰리나(43')



[전반 22분] '김은선→조성진→오범석'을 따라 좌측에서 우측으로 선회하던 수원은 앞으로 나갈 좋은 타이밍을 잡는다. 비록 측면을 뚫는 연계에는 실패했으나, 볼은 뒤로 처져 있던 서정진에게 연결된다. 곧장 시작된 크로스. 체공 시간이 길게 날아온 볼은 이웅희가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며 왼쪽에 있던 염기훈에게로 흐른다. 이후 정대세 머리에 안착한 볼은 이상호에게 이어져 선제골이 된다.

짚어볼 건 정대세의 시야 속에 머물며 골문 쪽으로 움직인 이상호다. 원톱 아래 미드필더를 둘 놓는 4-1-4-1 전형, 누군가 앞으로 나와 최전방 공격수를 서포트할 그림. 서정원 수원 감독은 이 선수를 적임자로 꼽았다. 이상호는 풍부한 활동량으로 전방 일대를 누비면서 정대세와의 호흡을 책임졌다. 첫 골도 그렇게 나왔다. 점프 상황에서 몸 중심이 뒤로 빠진 정대세는 헤더에 힘을 싣기 어려웠고, 마침 부지런히 접근하던 동료를 본다.

공중볼을 경합할 때, 상대를 따돌리고 원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곧 뛰어오른 선수와의 간격을 좁히며 세컨볼을 줍기에 열 올리는 이유다.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세컨볼!", "준비!"라고 반복해서 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정확한 공중전 뒤 육로에서 두 번째 싸움을 준비하며 확률을 높이는 것. 여기에서 수원은 승리했다. 이웅희는 본래 위치로 복귀할 겨를이 없었고, 김진규는 헤더 패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후반 3분] 정대세는 놀라운 모습을 보인다. 경기 후 남긴 말, "(그동안) 슈팅을 때릴 때 너무 힘을 주다 보니 상대도 그 타이밍을 알았다"는 본인의 진단은 정확했다. 상대 수비에게 걸리는 슈팅이 많았다는 건 그만큼 몸이 늦게 나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슈팅을 날린다는 생각에 갇혀 시야는 좁아졌고, 힘이 들어가면서 슈팅 모션 역시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수비수를 앞에 둔 채 슈팅을 쏘려는 과정에서 염기훈을 봤다.

현 염기훈의 왼발이라면 적어도 K리그 내에는 적수가 없다. 그 범위를 아시아 무대로 확장해봐도 지나침이 없을 터다. 워낙 자신이 있다 보니 수비수 고요한의 추격에도 침착하게 슈팅 임펙트를 주면서 빈 곳을 정확하고도 강하게 찔렀다. 비슷한 위치에서 득점에 실패한 서울의 김현성, 윤일록과는 분명 대조적이었다. 넣어야 할 때 넣어줄 이가 있다는 것, 팀에는 큰 축복이다.



[후반 7분] 세 번째 골은 훌륭한 데드볼 처리 능력과 완벽한 움직임의 합작품이었다. 세트피스 상황, 볼을 정확히 배달할 자원을 갖췄다는 전제하에 공격수는 뒤따라오는 수비수보다 유리하다. 염기훈을 보유한 수원도 마찬가지다. 실점을 헌납한 골키퍼 김용대가 마킹을 놓친 몰리나에게 항의 조 제스쳐를 취했으나, 수비수로서도 예측하고 반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염기훈의 킥 궤적이라면 알면서도 당할 공산이 크다.

볼에 다가선 이상호의 움직임도 음미할 만하다. 본래 수원이 준비한 코너킥 공격 상황에는 오범석이 있었다. 김은선이 상대 골키퍼를 성가시게 하다 뒤로 빠지면, 조성진과 오범석이 니어 포스트로 뛰어드는 작업을 병행한다. 하지만 오범석이 교체 아웃된 뒤 맞은 코너킥에서는 이상호가 그 지점을 노려 뛰어든다. 이웅희, 오스마르가 각각 정대세와 조성진에게 맨투맨으로 붙어있는 동안, 이상호는 세트피스를 '높이'로만 하는 게 아님을 직접 증명했다.



[후반 22분] 이제부터는 정대세 천하다. 세 골을 내준 서울은 중앙선 아래 공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전진해야 했고, 수원은 정확한 전개로 상대 뒷공간을 치는 상황을 늘려간다. 이미 2도움을 올린 정대세가 이번에는 동료 없어 홀로 나아갈 순간에 놓인다. 속도에 자신 있었다면 더 빠르게 내달려 왼발 슈팅 타이밍을 잡았겠으나, 평소 성향 및 익숙한 슈팅 동작을 고려하면 그런 모습이 나오긴 어려웠다.

남은 건 주춤하면서 오른발 슈팅 타이밍을 재는 일이다. 김진규의 계산은 오른발 슈팅 각을 먼저 죽인 뒤 측면으로 몰아내는 것. 그동안 뒤따라오던 동료가 오른발 각도를 커버해주길 원했을 터다. 하지만 정대세는 왼쪽 대신 오른쪽을 고집했고, 지원을 받지 못한 김진규가 몸을 돌려 막아서려는 그 찰나에 슈팅을 시도한다. 그리 강하지는 않았어도,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은 슈팅에 서울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후반 44분] 정대세는 역사적인 승리에 마침표를 찍는다. 염기훈이 볼을 받아 돌아선 때부터 침투를 준비. 수비 등 뒤로 돌아 뛰는 척을 하다, 스텝을 바꿔 앞쪽으로 잘라 들어간 정대세는 오스마르의 수비 영향력을 뿌리친다. 이윽고 잡은 일대일 찬스까지 마무리하며 한 경기에서 무려 2골 2도움을 올린다.

수원이 5득점하며 승리한 데엔 비단 공격적인 폭발력만 있었던 건 아니다. 실제 세 번째 골이 터진 뒤에는 짧게나마 상대에게 분위기를 내준다. 하지만 수비 몰입력과 동료를 커버하는 헌신으로 이 시간대를 무사히 넘긴다. 고비 때마다 등장한 골키퍼 노동건의 선방도 빼놓을 수 없다.

이유 없는 완승은 없다. 순간순간의 집중력에서 상대를 압도한 이들은 단지 운이 좋아서 슈퍼매치 역사를 바꾼 게 아니었다. 수원이란 팀이 얼마나 좋은 컨디션에 놓여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경기. 상대팀 서울의 흐름이 좋지 못한 때라 그 차이는 더욱 도드라졌다.

글=홍의택
사진=홍의택, KBS 중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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