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리가 와이드] '재정적 안정', 라리가 발전 위한 '필요충분조건'
입력 : 2015.05.2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170만 유로(한화 약 20억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각자 5주 동안 받는 주급(약 202만 유로)보다 적은 이 돈에 한 클럽의 운명이 걸려있었다. 37라운드까지 진행된 지금, 프리메라리가 18위를 달리고 있는 에이바르가 그 주인공이다. 인구 27,000여명의 작은 마을에 연고를 두고 5,200여석의 작은 경기장을 사용하고 있는 에이바르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팀 역사상 처음으로 1부 리그 승격을 이뤄냈고 이는 ‘에이바르의 기적’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이 기쁨도 잠시, 규정에 따라 170만 유로의 금액이 있어야만 라리가 승격이 가능한 상태였고 금액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던 에이바르 구단은 난항을 겪었다. 이에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축구팬들과 구단을 거쳐 간 선수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어렵사리 1부 리그로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어느 구단에게는 소속된 선수 1명의 5주치 주급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에이바르에게는 리그 승격이 걸린 큰 금액이었던 이번 사건은 양극화가 심한 프리메라리가의 재정 구조에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자본’ :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진 양극화의 본질적 문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흐름은 항상 한 곳을 향한다. 이익과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곳 또는 그런 기회가 보이는 곳이 돈의 종착역이다. ‘돈’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마인드 중심의 사회가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돈의 손길이 닿았고 자본주의와는 필연적 인과관계를 형성하지 않았던 축구에도 ‘머니 파워’를 앞세운 자본주의 세력이 등장했다. 항간에는 ‘클래스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본주의가 축구에 깊이 스며드는 것을 아니꼽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비난어린 시선들은 자본이 없는 사람들의 하소연일 뿐, 축구의 흐름은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지난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반짝 우승하기 전까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04/05시즌부터 9시즌 동안 스페인 축구를 양분(養分)해왔다. 이번 시즌도 다시 두 팀 중 한 팀에게 우승컵이 쥐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스페인축구협회(RFEF)는 작금(昨今)의 프리메라리가가 지난 84/85 시즌부터 11시즌 동안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우승을 나눠가졌던 때 못지않게 위기라고 판단했다. 최근 10여 년 간 돋보이는 극단적 양극화 현상은 경제논리가 축구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핵심요소로 자리 잡은 데에서 비롯되었다. 선수단 구성부터 탄탄한 유소년 육성 시스템, 시대를 앞서간 전술, 탁월한 감독의 역량 등 강팀이 갖춰야 할 요건들은 결국 ‘자본’이 뒷받침하고 있다.



프리메라리가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전성기와 맞물려 함께 성장했다. 리그 역사를 통틀어 50회가 넘는 우승을 하는 동안 여러 팀들이 최고의 자리를 넘봤지만, 두 팀은 달랐다. 그들이 만들어 낸 역사와 팀으로서의 가치는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오랫동안 프리메라리가가 최고의 리그로 평가받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상위 클럽들이 프리메라리가의 가치를 높이는 가운데, 극단적 양극화 현상은 눈에 띄게 심해졌고 상대적으로 중하위권 팀들의 열악한 재정상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위에서 언급했던 에이바르뿐만 아니라 과달라하라, 세레스 등 2·3부 리그를 둘러싼 재정상태도 문제가 되면서, 리그 전체를 아우르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리그 하위권에 위치한 소규모 구단들의 재정적 어려움이 큰 문제로 다가오는 이유는, 리그의 근본적 토대가 흔들리면서 전체적인 발전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리그’, ‘신계’로 불리는 두 팀이 달성하는 성과가 곧 프리메라리가의 모든 결실인 마냥 인식되어 가는 와중에, 재정난에 허덕이는 하위권 팀들의 열악한 실정은 스페인 프로축구의 뿌리를 흔들고 있었다. 리그의 근간이 흔들리는 결정적 이유는 구단들의 재정불안정성이 축구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 또는 위협하는 요소이며, 나아가 리그 전체의 규모를 제자리에 머물게 만들고 전반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이 계속된다면 침체(沈滯)되는 것을 넘어 프리메라리가의 온전한 리그 존속(存續)이 위태로울 수 있다. 올 시즌 세리에A에 속한 파르마 FC의 파산이 최근 이탈리아 축구의 재정난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프리메라리가 소규모 구단들의 열악한 재정상태의 지속이 이탈리아 축구의 전철(前轍)을 밟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리그발전의 잣대 : 규모를 통해 본 EPL과 프리메라리가의 차이

사실 리그가 발전했는가를 한 눈에 보고 단정 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는 없지만, 리그의 전체적인 발전은 경제적 규모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리그 내 팀들이 경기력 향상과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면, 이는 곧 시청자의 증가로 이어져 자연스레 수익 창출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익구조는 중계권료의 차이, 즉 ‘규모’로 귀결(歸結)된다.

스페인축구협회(RFEF)의 비야르 회장은 현재 리그 내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중계권료 배분 방식의 변경, 플레이오프제, 2시즌제 등을 언급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최근 화두에 오른 중계권료 배분 방식은 리그에 팽배한 극단적 양극화를 해소할 첫 단추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스페인 정부가 발표한 중계권료 배분 원칙 변경안은 선수협회와 RFEF로부터 강한 반발을 얻으며 리그 파행과 협상 부진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이 중계권료 문제는 리그 전체의 경제 규모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EPL과 프리메라리가의 현 상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13/14시즌 EPL의 중계권료는 18억 7500만 유로인 반면, 프리메라리가는 7억 5500만 유로에 불과하다.(이 격차는 16/17시즌에 38억 2500만 유로와 7억 7500만 유로로 더 크게 벌어진다)

게다가 이 격차는 두 리그의 중계권료 배분 방식의 차이에 따라 각 구단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13/14시즌을 기준으로 EPL에서 가장 많은 중계권료를 받은 구단은 리버풀(1억 1700만 유로)이고, 가장 적게 받은 구단은 20위를 차지한 카디프시티(7450만 유로)다. EPL은 ‘중계권료 통합 협상 원칙’을 택하고 있는데, 이는 프리미어리그 자체에서 중계권을 협상해 각 구단에 일정한 비율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반면, 프리메라리가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각각 1억 4000만 유로를, 16위부터 20위까지의 하위권 팀들은 1800만 유로만을 받았다. 인기가 높은 구단이 방송사와 직접 협상을 통해 많은 중계권료를 받는 ‘중계권료 개별 협상 원칙’ 제도를 고수하면서 상위 구단과 하위 구단 간에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두 리그의 가장 큰 대조적인 모습은, EPL에서 가장 적게 받은 카디프 시티(7450만 유로)가 프리메라리가에서 3번째로 많이 받은 발렌시아(4800만 유로)보다 더 많은 중계권료를 받았다는 점이다. 이는 ‘중계권료 협상 원칙’ 제도의 차이가 불러온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며, 프리메라리가의 전체 구단들과 EPL의 해외 중계권 확보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수치다.

중계권료 배분 문제의 핵심, ‘재정적 안정을 통한 생존력 확보’

EPL은 ‘현대 축구 = 자본’이라는 논리를 명확히 꿰뚫고 있었으며, ‘중계권료는 각 구단이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고 유소년 선수를 길러내는 바탕이 된다.’고 받아들일 만큼 해외 중계권 확보와 균등 배분이라는 제도를 마련했고, 이는 리그 전체가 발전할 수 있는 기본적 토대가 되었다. 효율적 투자와 구름 관중, 내수시장의 폭발력 등 재정기반이 탄탄한 분데스리가도 ‘중계권료 균등배분 정책이 각 구단 재정수준 평준화의 근간이 되었다.’고 말할 만큼 중계권료는 소규모 구단들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어느 면에서나 이미 세계 최고의 팀이다. 그러나 프리메라리가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듯, 프리메라리가의 전체적인 발전에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현재 스페인축구협회에서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중계권료 배분을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재정적 고지(高地)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재정안정을 위해 중계권료의 배분 방식의 변경을 꾀하고 있다. 이는 출발선이 다름으로써 생기는 소규모 구단들의 재정불리가, 곧 이적시장의 불리로 이어져 경기력과 시청률의 동반하락을 야기해 다시 재정불리로 이어지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안정적인 경제상황과 법적인 토대가 다져지지 않는다면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 따라서 중계권료 배분방식의 변경은 리그 내 모든 구단들의 재정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팀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력을 갖추게 해 적어도 자본의 부족으로 인해 팀이 무너지고 리그가 쇠퇴하는 최악의 결과를 방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첫걸음은 나아가 리그 저변을 탄탄히 다져, 리그 전체의 규모를 키우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중계권료를 둘러싼 오해 : 사회주의적 접근 방식과 균등배분 만능론

중계권료 배분 방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리그 전체적인 재정안정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와중에, 현 리그 재정구조에 대한 잘못된 접근 방식과 중계권료에 대한 일방적인 논리를 담은 오해의 시선들을 주의할 필요성도 생겼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구단의 이익과 목표를 위해 노력했고, 자본의 흐름에 따라 개별 협상 원칙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신들의 몫을 가져갔다. 이들이 타 팀들의 몫을 더 가져가거나 착취함으로써 리그를 독점하기에 배분 방식 변경을 통해 규제를 해야 한다는 논리는, 못가진 자의 책임을 가진 자에게 돌리는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이는 부르주아의 착취로 인해 양극화 현상이 일어난다고 보는 사회주의적 접근 방식으로, 현대 사회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 잘못된 생각이다.

또한, 중계권료 배분 방식의 변경이 프리메라리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균등배분 만능론’도 부적절하다. 다시 말해 중계권료 배분 방식의 변경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키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프리메라리가의 ‘규모’가 EPL에 비해 작기 때문에 제도적 변화가 리그 재정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당장 리그가 발전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중계권료 배분 방식 변경의 핵심은 ‘제도적 장치 마련의 첫걸음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적 안정’ : 스페인 축구의 장점을 극대화시킬 당면 과제

스페인 축구는 타 유럽리그와 비교했을 때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세계 축구를 주도하고 있는 스페인의 축구 전술과 문화를 익힌 수많은 지도자를 육성하고 있으며, 언어·문화적 공유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인구 6억 명의 ‘축구대륙’ 라틴아메리카와도 유망주 수급 등 축구 전반에 걸친 교류가 활발하다. 더욱이 영국 축구보다 강점인 부분은 탄탄한 유소년 육성 시스템에 있다. 영국 축구가 외국인 선수의 비중 증가와 성적 위주의 목적으로 선수 영입에 혈안이 되어있을 때, 스페인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재정상황 속에서 FA나 임대를 통한 선수보강과 유소년 시스템을 통해 길러낸 선수를 활용하는 대안을 마련하면서 그들만의 강점으로 굳혀왔다. 오늘 날 스페인 축구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은 리그 전반에 환경이 조성되면서, 자국 축구의 저변(底邊)을 탄탄히 다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축구라는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재정적 안정이라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프리메라리가가 당면한 필연적 과제다. 경제기반의 안정이 프리메라리가에서 확대되어 스페인 축구 전반에 확산될 때, 스페인 축구가 가진 강점은 더 극대화 될 것이며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은 보완되면서 리그 전반을 아우르는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리그의 안정과 발전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없다. 리그가 탄탄히 유지되는 가운데 그 영향력이 발휘될 때, 비로소 팀의 존재 가치가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글=<내 인생의 킥오프> 김기철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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