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리가 와이드] ‘라 데시마’의 안첼로티도 ‘무관’엔 별 수 없었다
입력 : 2015.05.2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신명기 기자= 지난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10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라 데시마)을 이끌었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결국 레알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올 시즌 ‘무관’의 성적을 거뒀던 것이 그의 경질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레알의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26일 새벽(한국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대화를 통해 안첼로티 감독과 계약해지하기로 결정했다. 분명 쉬운 경정은 아니었다"며 "이것은 팀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을 공식 발표했다.

▲ ‘26년간 26명의 감독’ 레알, ‘독이 든 성배’의 결정판



사실 이와 같은 발표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워낙 레알 수뇌부와 팬들의 기대가 높은 클럽에서 단 한 개의 트로피도 따내지 못한 감독이 살아남기엔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레알은 지난 2003년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물러난 이후 안첼로티 감독을 포함해 12년간 11명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즉 1명의 감독이 한 시즌 만을 소화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

지난 1989년 레알에 부임했던 존 토샥 감독부터 생각한다면 26년 동안 26명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중복된 감독도 포함). 그 중엔 파비오 카펠로, 마누엘 페예그리니, 주제 무리뉴, 거스 히딩크, 유프 하인케스 감독 등 명장들이 다수 포함됐다. 잠시라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지휘봉을 내려놔야만 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레알의 감독직을 두고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곤 했다. 특히 FC 포르투, 첼시, 인터 밀란을 거치며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승승장구했던 무리뉴 감독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레알의 지휘봉을 잡아 성적을 개선시켰음에도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했다.

물론 무리뉴 감독은 레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라 데시마(챔피언스리그 10회 우승)’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지만 6시즌 연속으로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에 그친 레알을 3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끌면서 자존심을 세웠다. 또한 2010/2011시즌 코파 델 레이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우승했고, 2011/2012시즌에는 프리메라리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스페셜원’ 무리뉴 감독도 2012/2013시즌 무관에 그치면서 상호 계약해지에 의해 팀을 떠나게 됐다.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레알과 결별한 안첼로티 감독의 이별 장면과 매우 흡사했다. 결국 다른 감독들과 다를 바 없이 ‘희생양’이 됐던 것. 무리뉴 감독은 언론, 선수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등 말년을 시끄럽게 보낸 뒤 레알 감독에서 물러나야 했다.

레알은 지난 1960년부터 1974년까지 감독직을 맡은 미구엘 무뇨스 감독을 제외하고는 장기간 지휘봉을 잡았던 경우가 없었다. 즉,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경이나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과 같이 장기간 집권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던 것. 페레스 회장 등 인내심이 부족한 레알 수뇌부의 통치 하에서는 오랫동안 머무는 감독을 보긴 힘들 것 같다.

▲ 안첼로티의 경질을 이끈 결정적 장면들



지난 시즌 레알 감독으로 부임한 안첼로티 감독의 시작은 좋았다. 프리메라리가 우승컵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내주긴 했지만 레알이 간절히 원했던 라 데시마를 달성했고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면서 더블로 시즌을 마쳤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지난 2001/2002시즌 이후 무려 12년 만에 나와 안첼로티 감독의 입지는 어느 때보다 단단해보였다.

올 시즌 초반 레알 소시에다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연패를 당하며 어렵게 시작했지만 FC 바젤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시작으로 무려 22연승 가도를 달리며 극찬 세례를 받았다. 당시 레알은 ‘핵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필두로 ‘BBC(베일-벤제마-호날두)라인’과 올 시즌 합류한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막강한 공격력으로 유럽 무대를 평정하는 듯 했다. 약 3달 동안 레알의 무패는 계속됐다.

하지만 레알은 겨울 휴식기 후 2015년 첫 경기였던 발렌시아전 패배에 이어 ‘지역 라이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밀려 코파 델 레이에서 탈락하는 등 새해의 시작을 순탄치 않게 맞았다. 이후 레알은 호날두가 갑작스런 부진과 폭행 사건에 휘말리는 등 문제를 일으키면서 기복있는 모습을 보였다.

호날두와 다른 선수들의 부진도 문제였지만 레알의 올 시즌 무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루카 모드리치의 부상과 백업 선수들의 부진이 컸다. 스피드, 판단력,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정상급으로 평가되며 레알 중원의 핵심이었던 모드리치는 올 시즌을 앞두고 합류한 토니 크로스와 함께 최강 중원을 이끌었다.

문제는 지난 11월 A매치 기간에 당한 부상이었다. 모드리치는 당시 입은 부상으로 4개월 가까이 출전하지 못했다. 레알은 다재다능한 이스코를 대체 기용하면서 위기를 넘기는 듯 했지만 많은 경기를 치러야하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바로 중원에 위치한 교체 자원들이 충분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

레알엔 크로스-모드리치 외에도 사미 케디라, 아시에르 이야라멘디, 루카스 시우바 등 수준급 선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독일 대표팀서 단단한 입지를 자랑하며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의 수훈갑이었던 케디라와 3,460만 유로(약 415억 원)의 이적료를 자랑하는 이야라멘디 모두 안첼로티 감독의 눈에 들지 못했다. 지난 겨울 이적시장서 영입된 ‘브라질 신성’ 시우바도 총 8경기 출전에 그치며 즉시 전력감으로선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이 문제는 결정적인 순간 레알의 발목을 잡았다. 마지막까지 프리메라리가, 챔피언스리그 우승권에 속했던 레알은 모드리치의 부상 이후 센터백인 세르히오 라모스를 중요한 순간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등 변칙 기용을 시도했지만 챔피언스리그 탈락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결국 더블의 기회가 남아있었던 레알은 유벤투스와의 2차례 경기를 포함해 발렌시아전 무승부로 한 순간에 ‘무관’이라는 성적을 받아들게 됐다.

▲ 안첼로티 경질, 과연 이성적인 판단인가?



레알이 안첼로티 감독과 결별하면서 라파엘 베니테스, 지네딘 지단, 위르겐 클롭 등 유럽에서 지명도 있는 인물들이 차기 감독으로 거론되고 있다. 경쟁에서 가장 앞선 것은 베니테스 감독으로 보인다. 클롭 감독은 올 시즌 종료 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에서 물러난 뒤 6개월간 휴식을 취할 것으로 보이고 지단 감독은 경험이 일천한 점과 올 시즌 레알 2군(카스티야) 성적이 신통치 않아 경쟁에서 밀릴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가장 유력한 차기 감독 후보인 베니테스 감독이 리그 우승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점이다. 베니테스 감독은 여러 차례 컵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토너먼트의 강자로 불리긴 했지만 리버풀, 인터 밀란, 첼시, 나폴리를 거치면서 단 한 차례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물론 지난 2001/2002시즌, 2003/2004시즌 발렌시아서 두 차례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지만 안첼로티 감독의 경력에 비하면 일천한 수준인 것이 사실이다. 안첼로티 감독은 올 시즌 무관에 그치긴 했지만 무리뉴 감독처럼 선수들, 팬,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지도 않았고 성적도 나쁜 편이 아니었다.

안첼로티 감독은 2시즌 동안 74.8%의 승률을 기록하며 역대 레알 감독 중 2위에 올랐다. 1위는 75%의 승률을 기록하고도 단 한 시즌 만에 레알 감독직에서 물러났던 맨체스터 시티의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이었다. 2시즌 이상 레알을 맡은 감독 가운데 가장 높은 승률을 이끌었던 안첼로티 감독이다.

또한 AC 밀란, 첼시, 파리 생제르맹(PSG)을 이끌면서 리그 우승 경험을 갖고 있던 안첼로티 감독을 해임한 것이 과연 이성적인 판단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페레스 회장 등 구단 수뇌부가 올 시즌 무관의 책임을 감독에게 모두 전가해 자신들의 입지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유럽 무대를 호령했던 안첼로티 감독마저 레알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차기 감독으로 어떤 감독이 나설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확실한 것은 26년간 26명의 감독을 내세웠던 레알에서 한 개의 트로피도 들어 올리지 못할 경우 무리뉴, 안첼로티 감독의 뒤를 따를 것이라는 씁쓸한 예상 뿐이다.

사진= 게티이미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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