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가시와-수원 분석 '절박함으로도 극복 못한 1차전 3실점'
입력 : 2015.05.2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볼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는 등을 지는 일. 발아래 볼을 둔 채 상대와의 거리만 확보한다면 일단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하지만 한숨 돌리려던 그 순간, 누군가 등 뒤에서 덤벼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수원이 그랬다. 가시와보다 2~3m씩 뒤처져 출발했다. 볼을 훔칠 확률이 극히 낮았음에도 꾸준히 도전하며 발버둥 쳤다. 이게 바로 그 어떤 전술, 전략보다 무섭다는 '절박함'이었다.

매 순간 집념이 흘렀으나, 기적은 없었다. 26일 열린 일본 히타치 가시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16강 2차전에서 가시와를 2-1로 꺾은 수원이 누적 스코어 4-4(원정 다득점에서 열세)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서정원 감독 체제 3년 차. 한층 견고해진 '단단함'을 곱씹어본다면 '2015년판 수원'은 ACL 16강 너머도 욕심내볼 팀이었다.

:: 가시와
라인업=스게노(GK) / 와코-두두-스즈키-김창수 / 오타니-바라다 / 쿠도(오타,80')-고바야시(나카타니,93')-크리스티아노 / 레안드로(오츠,92')
득점=고바야시(65')

:: 수원
라인업=정성룡(GK) / 양상민-구자룡-조성진-오범석 / 권창훈-백지훈 / 염기훈(서정진,13')-이상호-고차원(레오,73') / 정대세(카이오,81')
득점=정대세(26'), 구자룡(53')



:: 볼 소유권 탈환-재탈환의 속도가 빨라지다

1차전 홈 경기(2-3 패)를 내주고 추격하는 경기가 쉬울 리 없었다. K리그 팀을 상대로 높은 승률을 자랑해온 가시와의 수비적인 특기가 발휘된다면 확률은 더 낮아질 터였다. 지난 2월, ACL E조 1라운드 '전주성'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도 승점 1점(0-0 무)을 챙기며 실속을 차린 것이 가시와 아니었던가.

흔히 말하는 '수비 축구'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다. 10명 모두 페널티박스까지 물러서 층을 두껍게 쌓거나, 아니면 최전방 라인을 중앙선 언저리에 두고 최후방 라인은 박스로부터 1~20m 전진 배치하거나. 전자의 경우 주도권을 내주며 슈팅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지만, 후자는 비교적 '능동적인 수비'가 가능하다. 전진하면서 볼을 낚아챌 수 있고, 이후 역습까지 노린다. 전북전에서 무실점한 가시와는 후자에 가까웠다. 최전방-최후방 간격을 바짝 좁힌 '늪'은 보다 높은 지점에서 상대를 집어삼키려 했다.

경기 양상은 예상보다 박진감 넘쳤다. 탁구공이 네트를 두고 오가듯, 볼 소유권의 탈환과 재탈환이 쉼 없이 이어졌다. 볼 바운드 및 굴러가는 속도, 피치 위에서 넘어지는 빈도나 볼 받기 직전 밟는 스텝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봤을 때, 잔디는 꽤 촉촉해 보였다. 경기 직전 뿌린 물, 일몰 후 맺힌 저녁 이슬, 짧게 깎아 놓은 잔디 등의 여러 변수에 공격을 지향한 두 팀 성향이 복합적으로 얽혔을 것이다. 볼이 빨리 도는 경기는 득점이 절실한 '추격자' 수원에 조금 더 유리할 수 있었다.

:: 염기훈은 떠났으나, '염기훈 정신'은 피치에 그대로

'올 시즌 수원을 키운 건 8할이 염기훈이었다'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 왼발로 뿜어낸 공격 포인트 11경기 6골 6도움(리그 기준)은 물론, 주장 완장을 차고 불사르는 헌신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랬던 염기훈이 전반 7분 만에 가시와 소속 김창수와 충돌하며 쓰러졌다. 의욕 넘친 공중볼 경합 중, 몸이 먼저 뜨면서 후속 동작을 가져가기 어려웠던 탓. 갈비뼈 근처 통증은 불편한 호흡까지 몰고 올 수 있었다.

이후 경기에 임하는 수원의 태도는 염기훈 부재를 무색하게 했다. 조금이라도 앞에서 볼을 빼앗고자 라인 전체를 끌어올렸고, 튼실한 조직을 꾸려 압박 타이밍을 잡았다. 빌드업 시 수비형 미드필더를 적극 활용하려는 'J리그식 강박'이 가시와에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측면으로 전환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냈으나, 길게 킥하는 등의 전진 시도는 드물었다. 백패스 및 횡패스로 전전한 볼의 종착지는 고맙게도 압박 그물 속이었다(하단 일러스트 참고).

우세했던 수원은 전반 26분 정대세의 선제골을 맞는다. 양상민의 왼발 크로스는 '왜 왼쪽 측면에 왼발잡이를 배치하는가'에 대한 정답을 말했다. 오른발 바깥 부분으로는 연출하기 어려운 크로스 곡선이 오차 없이 연결됐다. 득점 이전에도 준수한 턴 속도를 보였던 정대세는 본디 지닌 약간의 뻣뻣함을 상쇄할 만한 몸 상태였다. 팔을 적절히 쓰며 상대 수비에 앞서 볼을 선점하고, 이후 돌아서면서 완벽한 슈팅 임펙트를 줬다.



:: 쏠쏠했던 '서정진발 코너킥', 구자룡이 완성하며 뒤집기 성공

염기훈이 빠지면서 아쉬웠던 건 한둘이 아니다. 일례로 왼발 각도 세트피스. 또 다른 왼발잡이 권창훈이 왼발 코너킥을 도맡았지만, 염기훈만큼 차기는 어려웠다. 힘이 실리지 않은 볼은 궤적 자체가 뭉툭해지고, 속도까지 떨어지면서 상대 수비가 대응할 시간도 늘어났다. 게다가 조금씩 들쑥날쑥했던 킥은 염기훈표 코너킥에 익숙해진 동료들에게 정확히 배달되지 못했다.

다행히 오른발 코너킥은 서정진이 곧잘 해냈다. 가까운 포스트, 먼 포스트를 번갈아 공략했던 킥은 기본적으로 골문에 바짝 붙여 행해졌다. 박스 안 높이 경합에 자신이 있었을뿐더러, 상대 골키퍼 스게노의 신체 조건도 한몫했다. 프로필상 179cm인 스게노는 탄력, 판단력 및 반사 신경을 떠나, 일단 신장과 팔 길이에 기인한 공중볼 장악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코너킥 시 골키퍼의 수비 범위가 넓지 않자, 수원은 폐부를 맘껏 찔렀다. 후반 8분 나온 구자룡의 팀 두 번째 득점도 마찬가지. 앞서 가까운 포스트를 두드렸던 킥은 조금 더 멀리 날아왔고, 경합 후 떨어진 볼을 구자룡이 재차 차 넣어 골로 완성했다. 알면서도 번번이 당한 가시와는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이대로라면 8강행은 수원 몫이었다.



:: '흥분, 실점, 조급함, 부정확', 고개 숙인 캡틴

한 가지 우려는 이 시기 즈음하여 팀 전체가 붕 떴다는 것. 더 편하게 가기 위해, 살아난 흐름을 잇기 위해 한 골 더 넣어두는 것도 바람직했다. 하지만 어설프게 라인을 올리다 뒷공간을 얻어맞으면 두 골이 더 필요했다. 침착하게 1~20분 더 흘려보내 후반 중반에 다다랐다면 가시와도 무리한 운영을 해야 했을 터. 의미 없는 결과론이지만, 마음 급한 상대를 역이용할 수도 있었다.

조금 더 꾀 있게, 노련하게 경기를 이끌 시간대에 '집단 흥분' 상태가 드리웠다. 후반 20분, 마지막까지 양상민이 몸을 구르며(볼 앞에서 미리 취하는 수비 동작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었으나, 이 상황에서의 몸부림은 수원을 구제할 최후 카드였다) 상대 슈팅을 방어했으나, 고바야시의 오른발에 정확히 걸린 볼까지 제어하지는 못했다.

교체 카드 효과도 미미했다. 레오의 스피드가 죽은 가운데, 카이오도 존재감이 없었다. 여기에 기존 멤버들의 체력 저하까지 덮쳤다. 쌩쌩했던 전반전과 비교해 느려진 것은 당연지사. 패스의 강약 조절 및 정확성이 흔들렸고,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사전 판단도 흐려졌다. 이 시기 벤치에 앉아 고개 숙인 염기훈의 모습은 더없이 짠했다.

K리그 최강팀 전북은 더 치고 올라갈 힘이 있었다. 강력한 더블 스쿼드에서 나오는 뚝심은 쉬이 흔들릴 게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의 저력은 예년만 못했으며, 성남의 돌풍은 전력 열세 및 선수층 한계에 부딪힐 공산이 컸다. 이런 현실 속, 최소 한 라운드 정도 더 올라가주길 바랐던 수원의 ACL 도전은 16강에서 막을 내렸다.

글, 그래픽=홍의택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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