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공격, 또 공격' 서울 이랜드가 관중을 매혹하는 법
입력 : 2015.06.0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잠실] '우리 경기 재밌어요'? '다음에 또 보러 와 주세요'? 장담컨대, 이런 식의 홍보 글귀로는 소비자의 가슴을 때리지 못한다. "무조건 공격하겠다" 해서 가봤더니 이리저리 볼만 돌리다 끝나더라? 단언컨대, 금쪽같은 돈, 시간 쏟아부어 가며 또 다시 경기장을 찾을 팬은 많지 않다.

위험을 감수하기란 늘 어렵다. 그러나 '고객 모시기' 마인드에 때로는 눈 질끈 감고 강행해야 할 순간도 닥친다. '한 점 차 리드'라는 다소 아슬한 상황에 직면한 서울 이랜드 FC가 그랬다. 엉덩이를 뒤로 빼는 대신 앞으로 뛰쳐나가는 호전적인 모습을 보이더니, 끝내 추가 골까지 뽑아냈다. 이렇게 직접 보여주고, 몸소 경험케 하는 수밖에 없다.

30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 내 레울파크에서 열린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챌린지 11라운드. 4위 서울 이랜드가 2위 수원FC를 2-0으로 잡으면서 판도는 훨씬 더 재밌어졌다. 조덕제 수원 감독의 말도 그랬다. "어느 정도 승점이 돼야 우승, 준우승이 되리라 확신하지 못하겠다. 우리가 이랜드한테 지고, 이랜드가 강원에 잡히고, 우리가 강원을 잡았다. 실력 차이가 나 승점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 수원 화력에 맞선 서울 이랜드, 믿을 건 상대 중앙 수비 앞 공간

경기 전 레니 감독이 언급했듯, 서울 이랜드는 '과정' 중에 있는 팀이다. 팀 조직 및 공격적인 완성도를 비교했을 때, 롱볼과 짧은 패스를 맛깔스럽게 버무린 수원FC보다 조금 처진 구석도 있었다. 줄곧 활용한 롱볼은 딱히 효과를 보지 못했다. 수원FC 중앙 수비 블라단의 타점이 워낙 높았고, 낙하지점을 짚은 뒤 점프하는 타이밍까지 장악하면서 이랜드 공격진이 도전할 여지조차 남기지 않았다.

서울 이랜드가 기댈 건 최전방 주민규의 영역, 그 바로 아랫 공간이었다. 지난 2일 수원FC 원정에서 1-5 완승을 거뒀을 때처럼 상대 중앙 수비 앞 공간에서 볼 잡는 빈도를 높인다면 개인 능력으로 싸움을 걸어볼 만했다. 실제 서울 이랜드 공격이 매끄럽게 진행된 것도 이 지점에서 상대 미드필더의 수비 복귀를 앞질러 볼을 소유했을 때다(하단 캡처 참고). 이어 타라바이나 보비가 일련의 과정을 밟아갈 때,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공중전에서 열세를 보인 주민규지만, 자신감이 완전히 올라섰다는 점은 각별했다. 아크로바틱한 골을 원체 많이 터뜨렸을 만큼, 상대 골문을 향해 돌아선 채 볼을 잡아두면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마틴 레니 이랜드 감독의 평가가 후했음은 물론이다. "최근 13경기에 10골(FA컵 포함)을 넣었다. 어떤 한국 선수도 두 자리 골 수를 기록하기 어려운데, 그걸 해냈다. 골 넣은 부분은 정말 조그만 요소다. 볼을 지키는 것, 타겟 플레이어로서의 역할, 동료를 살리는 등 정말 많은 일을 해주고 있다. 환상적인 선수라 할 수 있다."



:: 선제골은 터뜨렸으나, 만만찮았던 상대 추격

균형은 후반 2분 서울 이랜드의 선제골로 깨진다. 볼을 앞으로 끊어나오는 단계에서 김영근이 측면을 치고 달린 것이 주효했다. 주민규가 충실히 쇄도하며 수비 둘을 유인해냈고, 그 뒤에 있던 타라바이가 볼을 잡았다. 불안정한 첫 번째 터치 이후 오른쪽으로 접던 중 블라단의 태클이 호재로 작용했다. 걸려 넘어진 타라바이는 직접 PK를 차 넣었다.

추는 서울 이랜드 쪽으로 기운다. 포지션 곳곳에 배치된 '관록' 덕에 축구가 쉬워졌다. 한때 투지와 활동량으로 승부했던 조원희는 완전히 트인 시야로 경기를 주물렀다. 볼을 센스 있게 다루고 허를 찌르는 능력은 평범했을지라도, 쉼 없이 움직이고 볼 받을 공간을 만들며 상대 압박을 벗어났다. 느릿느릿하면서도 상대를 압도하는 구력(球歷)은 쉬이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볼을 빼앗은 직후에는 순간적으로 공격에도 가담했다.

상대 팀 조 감독도 서울 이랜드의 터줏대감들이 조금은 부러운 눈치였다. "김영광이 컨트롤하고 템포를 끊는 것. 조원희도 그렇고. 요소요소에 경험 있는 선수들이 있다 보니 심리적으로도 템포 조절을 한다. 우리 선수들은 흥분한 상황도 있었고. 원정이다 보니 무승부 승점 1점보다는 3점을 꼭 챙겨가자고 지시했는데. 경기력에서도 그런 차이가 있으니까···."

수원FC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후방 플레이메이커 노릇을 확실히 한 김서준은 측면으로 전환하는 패스에 일가견을 보였고, 이 볼이 다시 중앙으로 들어오면서 성공적인 팀 공격 패턴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미드필더 및 측면 플레이에도 능했던 최전방 공격수 자파는 이랜드 진영을 부지런히 헤집어놨다. 후반 중반 이후에는 정기운과 김부관을 파트너로 삼고, 조인형과 권용현을 좌우로 둔 방식도 나타났다.

추격하는 수원FC 입장에선 아쉬울 장면도 있었다. 골키퍼 김영광의 캐칭 실수 이후 뒤로 흐른 볼이 골 라인을 통과했느냐, 안 했느냐는 것. 경기 후 취재진과 마주한 김영광은 "안 넘었어요. 진짜로. 들어간 거처럼 보이는데 라인에 걸려 있었어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중계화면 리플레이상으로도 확실치 않았던 이 장면은 골 라인 판독 기술 없이는 정확히 가려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 서울 이랜드가 물러섰다면 이만한 경기 퀄리티가 안 나왔을 것

후반 중반을 넘어섰다. 볼을 투입하며 도전해오던 수원FC, 그 집념을 곱씹어보면 '한 골 차 리드'는 확실히 불안했다. 단, 80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안전하게 갈 방법을 강구할 법도 했다. 능동적으로 템포를 결정하고, 운영법을 선택하는 건 선제골을 거머쥔 서울 이랜드만의 특권이었다. 이는 대부분 감독이 고수해온 '승리 굳히기 방식'과도 다를 게 없었다.

보통 승리를 지키려는 팀은 '세트피스 수비' 때와 유사한 공격 형태를 보인다. 발이 빠르거나, 상대 수비를 등지며 볼을 지킬 수 있는 자원 하나를 중앙선 인근에 배치해 놓는다. 수비 장면이 끝난 뒤엔 이 선수를 포인트로 해 볼을 차내고 경합을 붙인다. 하지만 서울 이랜드는 스리톱을 그대로 위에 놨다. 압박을 시작하는 최초 선은 여전히 높았으며, 이들 모두를 역습의 포인트로 활용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라이언-주민규-바비가 서 있던 지점은 기본적으로 중앙선 너머. 주민규가 태클을 가하면서까지 블라단을 방해했던 시점은 후반 39분이었다(하단 캡처 참고). 그 외 앞으로 나간 패스 방향 및 빈도에 묻어난 팀 성향은 분명 공격적이었다. 후방에서 볼 주고받는 횟수를 늘리며 상대 흐름을 죽일 수도 있었으나, 바로 볼을 전진시켰다. 끝없이 상대 수비진에 부담을 주려했던 레니 감독은 덧붙였다.

"상대 수비수도 조금 앞선 상태로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많은 공간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라이언, 바비 등 측면에서 뛴 선수들이 스피드가 뛰어나 역습도 가능했다. 골을 넣게 되면 상대가 완벽히 주저앉을 거라 봤다. 수비를 안 하겠다기보다는 세 선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게 있었다."



두 번째 골이 상대를 파괴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앞선에서 수비할수록 상대를 더 급하게 할 수 있었으며, 뒤로 밀려나 주도권을 내주는 일도 애초에 방지할 수 있었다. 다만 추가 골 챙기려다 동점 골 얻어맞을 우려도 컸다. 무리한 진행으로 홈에서 승점 3점을 놓치는 것만큼 치명적인 일도 없었다. 수원 후방에서 시작된 볼이 포백 라인 뒷공간, 혹은 옆공간으로 떨어져 또다른 공격의 시발점이 된다면 위험에 빠질 공산이 컸다.

역습 숫자를 줄이는 대신, 공격진을 1~20m 정도 후퇴시켜 간격을 좁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중앙선 아래 공간을 죽이면서 세컨볼 싸움, 향후 볼 처리 등에 몰두하며 상대를 옥죄는 게 가능했다. 그럼에도 줄곧 공격을 외친 서울 이랜드는 후반 48분, 김영근의 패스를 받은 주민규가 끝내 쐐기를 박았다. 서울 이랜드가 완전하게 내려서 볼 걷어내기에 급급했다면 이런 퀄리티가 나오지 않았을 터. 이에 대한 레니 감독의 철학은 확고했다.

"수비 숫자가 완전히 충분하다고 볼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있었다. 축구란 것이 궁극적으로 골을 넣어 이기는 스포츠 아닌가. 결국 마지막 순간에 골을 넣었다. 'Attack(공격), Entertainment(즐거움), Win(승리)로 봐달라."

글, 그래픽=홍의택
사진=홍의택, SPOTV 중계화면 캡처,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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