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파 분석실] 꿈을 이룬 칠레, 새로운 역사를 쓰다
입력 : 2015.07.0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승부였다. 치열한 승부가 계속됐고, 좀처럼 우열이 판가름나지 않는 경기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자는 칠레였다. 칠레 선수들과 팬들은 그토록 염원하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이 확정되자 환호의 도가니에 빠졌다. 한편 아르헨티나와 A대표팀에서 생애 첫 국제대회 우승을 노렸던 메시의 아쉬움이 교차한 순간이었다.

5일(일) 오전 5시(한국시간) 칠레 산티아고의 에스타디오 나시오날에서 열린 2015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경기는 양팀 치열한 공방 속에서도 전ㆍ후반과 연장전을 득점 없이 마쳤다. 그러나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곤살로 이과인(나폴리)의 실축과 골키퍼 클라우디오 브라보(바르셀로나)의 선방에 힘입어 칠레가 아르헨티나를 4대1로 꺾고 짜릿한 첫 우승을 만끽했다. 28년 만에 진출한 결승 무대이자, 자국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일궈낸 칠레의 첫 우승이기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 칠레였다.

칠레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세계를 주목시킨 이후 남미의 축구 강호로 거듭났다. 화끈한 공격력, 끊임없는 압박, 경기장을 장악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전세계 축구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작 대회 성적은 조금 부족한 모습이었다. 특히 지난 2011년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더욱 아쉬웠던 칠레였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히던 칠레였으나 8강에서 베네수엘라에게 패하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며 대회를 조기에 마쳤던 칠레였다. 국제무대의 상승세를 이어가고자 했던 칠레에게 8강전 패배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코파 아메리카 무대에 돌아온 칠레는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팀의 조직력은 짜임새가 좋아졌으며, 개개인의 기량은 전성기에 이르렀다. 공격진의 알렉시스 산체스(아스날), 미드필드에는 아르투로 비달(유벤투스), 수비를 지휘하는 브라보가 각 라인의 중심으로 자리잡았고, 주도권을 잡고 상대를 끊임없이 흔들었던 칠레다. 이번 대회 도중 불미스러운 일들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르며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이내 분위기를 다잡으며 대회에 임한 칠레는 메시가 분전한 아르헨티나를 꺾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우승에 도달했다. 부정적인 여론 속에서 대회를 치렀던 만큼 우승의 의미가 더욱 값졌을 칠레다.

아르헨티나의 어두운 그림자, 디 마리아의 부상



양팀은 이른 시간부터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앞으로의 경기를 예고했다. 전반 6분 만에 파스토레의 패스를 받은 메시가 돌파하는 아구에로를 향해 패스를 넣어줬으나 수비의 방해와 골키퍼에게 차단되며 기회를 놓쳤던 아르헨티나였다. 칠레는 곧바로 되갚아줬다. 곧이어 패스를 받은 발디비아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으나 발디비아가 내준 패스가 수비에게 끊기며 기회가 무산되고 말았다. 직접 슛 대신 패스를 택한 발디비아의 선택이 아쉬웠을 칠레였다. 양팀은 팽팽하게 맞섰으나 결정적인 장면은 칠레에게서 나왔다. 전반 11분 비달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볼을 곧바로 발리슛으로 가져갔으나 골키퍼 로메로의 선방에 힘입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아르헨티나였다. 칠레에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가 찾아왔다. 사발레타가 얻어낸 프리킥을 메시가 날카롭게 올려줬고, 이를 아구에로가 머리로 연결하며 칠레의 골망을 위협했다. 그러나 볼이 브라보의 정면으로 날아가면서 아구에로의 슛은 막히고 말았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아 좀처럼 어려운 승부였다.

그러던 상황에서 아르헨티나에게 큰 악재가 찾아왔다. 상대 수비를 뚫고 돌파하던 디 마리아가 드리블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호소하며 그라운드에 주저 앉았다. 의료진은 곧바로 교체 사인을 보냈고, 마르티노 감독은 급하게 라베치를 디 마리아 자리에 투입했다.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아르헨티나였다. 디 마리아의 공백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측면 공격을 포함, 팀의 패스 플레이에도 관여하며 경기를 이끌어가던 디 마리아의 부재는 아르헨티나 중원에 부담을 줬다. 볼 배급을 도와주던 디 마리아가 빠지자 파스토레는 조금씩 과부하가 걸리는 모습이었다. 부정확한 패스로 칠레에게 공격권을 내주는 장면도 여러 차례 나왔다. 경기가 점차 칠레에게 넘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위기 속에서도 날카로웠다. 전반 추가시간, 라베치의 예리한 패스를 받은 파스토레가 뛰어들어오는 라베치에게 다시 내주며 나온 슛은 골키퍼 브라보에게 막히며 득점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한 아르헨티나였다. 반면 칠레로서는 브라보의 선방 덕분에 다행히 전반의 마지막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반에만 3장의 경고, 그 중 중앙 수비수들이 모두 경고를 받은 칠레는 부담스러운 후반전을 앞두고 있었다.

치열한 120분의 혈투, 득점 없어도 명승부였던 대결



양팀은 후반이 되면서 더 격렬한 경기를 이어갔다. 상대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거친 태클이 자주 나타났고, 자칫 부상의 위험이 생길 수 있는 장면도 수차례 연출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팀은 서로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위험한 기회를 헌납하며 가슴을 졸였던 양팀이기도 하다. 후반전의 첫 시작은 칠레가 먼저 끊었다. 후반 6분 비달의 감각적인 패스를 받은 발디비아가 크로스를 올렸으나 수비 커버를 들어온 마스체라노에게 막히며 코너킥을 얻는데 그쳐야 했다. 기회는 놓쳤지만, 비달의 순간적인 판단력과 센스가 빛났던 장면이었다.

좀처럼 앞서나가지 못하자 양팀 감독들은 선수 교체를 통해 분위기 전환을 꾀했다. 칠레 삼파올리 감독은 후반 28분 발디비아를 대신해 마티아스 페르난데스를 투입하며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아르헨티나 마르티노 감독은 아구에로 대신 이과인을,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던 파스토레 대신 바네가를 투입하며 최전방과 중원에 변화를 줬다. 한편 바르가스와 투톱을 구성했던 산체스는 원하는 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자 활동 반경을 넓게 잡으며 팀플레이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산체스에 대한 수비가 점차 흔들렸고, 이내 천금같은 득점 기회가 찾아왔다. 상대 수비의 방심을 틈타 오프사이드를 뚫어낸 후반 37분 산체스가 발리슛으로 아르헨티나의 골문 구석을 노렸다. 하지만 슛은 아쉽게도 골포스트를 살짝 벗어나며 그대로 골라인을 넘어가고 말았다. 칠레가 이 날 경기에서 보여준 가장 아쉬웠을 기회였다. 산체스 개인으로서도 칠레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장식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위기에서 탈출한 아르헨티나는 후반 막판 경기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날리며 코앞에 다가온 우승을 놓쳤다. 아르헨티나에게 찾아온 최고의 득점 기회 중심에는 메시가 있었다. 후반 추가시간 2분, 자신을 막는 수비를 가볍게 제쳐낸 메시는 왼쪽으로 뛰어들어가는 라베치에게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줬다. 충분히 득점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에서 라베치는 반대편에 들어오는 이과인을 봤고, 이과인에게 내준 크로스가 애매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과인이 급하게 몸을 날리며 슛을 시도했지만, 옆그물만 흔들었을 뿐이었다. 라베치의 선택, 이과인의 움직임이 모두 아쉬웠던 장면이었다. 결국 양팀은 자신들에게 찾아온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연장전으로 승부를 이어가야 했다.

연장전에 접어든 칠레는 막혀있던 바르가스 대신 앙헬로 엔리케스를 투입하며 연장전에서 반드시 경기를 끝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경기는 칠레가 의도한 것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연장전 내내 중원 싸움이 쉴 새 없이 펼쳐졌고, 기회를 쉽게 가져갈 수 없었던 양팀이었다. 그 속에서 산체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연장 전반 종료 직전, 브라보가 던진 볼을 걷어내려던 아르헨티나 수비가 걷어내지 못하는 실책을 범했다. 볼은 그대로 뒤로 흘렀고, 다시 산체스에게 골 기회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산체스의 슛은 크로스바를 크게 넘어가고 말았다. 연이은 기회를 놓친 산체스의 골 결정력이 아쉬웠던 칠레였다.

흐름을 가져온 칠레는 연장 후반에 들어 아르헨티나를 몰아넣고 공격을 전개했다. 아르헨티나 역시 칠레의 흐름 속에서 간간히 역습을 시도했으나 득점을 뽑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연장전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한 양팀에게 남은 것은 승부차기, 단 하나였다.

사상 첫 우승 이룬 칠레, 우승 꿈 실패한 메시의 엇갈림



승부차기에서도 접전을 펼칠 것 같던 분위기와는 달리, 아르헨티나는 한 순간의 실수로 무너졌다. 양팀의 첫 번째 키커인 페르난데스와 메시가 가볍게 득점에 성공했으나 승패는 두 번째 키커의 차례에서 갈렸다. 칠레의 두 번째 키커로 나선 비달은 맡은 임무를 수행했으나, 아르헨티나의 두 번째 키커 이과인은 슛이 크로스바를 넘어가며 실축을 하고 말았다. 120분 내내 유지되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믿었던 이과인이 실축하자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이어진 세 번째 키커의 차례에서도 양팀의 희비는 엇갈렸다. 아랑기스는 깔끔하게 성공한 반면, 바네가는 브라보의 선방에 막히며 팀에게 2연속 실축을 안겨줘야 했다. 브라보와 바네가의 표정이 명확하게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결국 칠레는 마지막 키커인 산체스가 득점에 성공하며 여태 기다려온 코파 아메리카 첫 우승을 맛볼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칠레의 역사상 첫 우승이었다.



한편 아르헨티나의 주장으로 나선 메시는 또 다시 국제대회에서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한 때 아르헨티나 대표팀 부진의 원흉이라고 지목받고 있던 메시는 이번 대회를 통해 달라진 모습을 선사했다. 국가대표팀에선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국내ㆍ외 언론들의 비판을 이겨내고 좋은 경기력을 보였던 메시였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우승에 근접해있었던 메시였다. 하지만 혼자서 팀을 이끌기엔 힘이 부쳤다. 파라과이와의 4강전에서 6득점을 제외하고, 4경기 4골에 그쳤던 부진한 공격력은 끝내 메시와 아르헨티나의 발목을 잡았다.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던 아르헨티나였기에, 대회 기간 내내 나타난 공격진의 부진이 뼈아팠을 아르헨티나다. 메시 개인에게도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후 오랜 시간 동안 국제대회 우승을 맛보지 못하고 있다. A대표팀에서 우승 기록은 전무한 메시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질 월드컵 준우승에 이어 절치부심하며 참가한 이번 코파 아메리카까지 우승을 놓친 허탈함이 더 클 메시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 기회를 놓친 메시는 내년 열릴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를 통해 자신의 생애 첫 국가대표팀 우승에 도전하게 되었다.

글=<내 인생의 킥오프> 정현준
사진=남미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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