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대담] 이을용도, 청주대도, 청춘FC도 모두 '미생'이었다①
입력 : 2015.07.2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태백] 홍의택 기자= 대담(對談) : [대ː담] [명사] 마주 대하고 말함, 또는 그런 말. '속도'보다 '깊이'를 지향합니다. 숨 가삐 달려오느라 놓쳤던, 어디에 쉬이 털어놓을 수도 없었던, 그래서 세상 아래 묻혀 있었던 이야기들 풀어냅니다.

이을용(39) 청주대 코치는 강원도 사람이다. 강릉중학교, 강릉상고(현 강릉제일고)를 거쳤다. 지역 말투가 살아있다. 순전히 강릉 바닷말은 아니다. 북한틱한 억양. 산동네 말씨다. 경상도 억양도 슬며시 끼었다. 바다 낀 강원도 삼척에서부터 산기슭을 타고 올라가며 경상북도와 인접한 곳. 도계읍, 태백시, 정선군 일대 사투리다. 황지중앙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태백 태생 이을용이 딱 그렇다.

태백은 적막하다. 7~80년대 탄광촌 개발로 도계읍 하천에 시커먼 물이 흘렀단 얘기는 다 옛것이다. 돈 캐러 온 인부도, 그 가족도 떠났다. 그나마 '전국추계대학추계연맹전'이 열리는 매해 여름, 짧게나마 젊음으로 시끌시끌하다. 청주대 경기가 열리는 곳이면 동향민들이 운집했다. 한두 마디씩 던졌다. "야, 을용아 고생했다". 이 코치가 묵례한다. 조민국 청주대 감독이 무심하게 거든다. "거, 촌놈이 출세했지. 뭐".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갔지. 그래도 살기엔 최고야. 공기 좋지. 부모님, 친척 다 여기 계시지. 모르지. 나도 뭐 언제든 고향 와서 살 수도 있고. 지금까진 명절 때만 왔어. 정신없어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했는데. 나이 먹고 하니 자꾸 고향 생각 나더라고. 사투리? 난 잘 모르겠던데. 신경도 안 써. 고쳐야겠단 의식조차 안 해봤네. 나오면 나오는 거고 말면 마는 거고(웃음)."



대외적으로 나서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술 한잔 하면 얘기가 다 술술 나오게 돼 있어"라며 이리저리 답을 피했다. 월드컵을 두 번이나 지낸 '축구 선수' 꼬리표 떼고 맘 편히 소주잔 부딪치고 싶은 이 남자. 그간 사람들 눈 피해 다니느라 얼마나 불편했을까 싶다. 시비 걸어오는 이도 한둘이 아니었고. "내가 좀 다혈질이긴 했지"라면서도 "참아야지 무조건"이라며 가만 웃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곱창집 옆 테이블에서는 "을용 선수 아니세요?"라며 물어왔다. 이제는 그런 관심도 감사하단다. 심지어 '을용타'란 별명까지도. 지도자가 됐음에도 알아봐 주시는 게 어디냐고 말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물었다. "청주대는 왜 갔습니까. 조 감독님과 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요?". 이 질문 지금껏 너무 많이 받았다는 양. '또 이 레퍼토리 꺼내게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작년에 울산서 나오시고 나서 갑자기 '같이 일 한 번 안 해볼래?'라고 하시는 거야. 오래 지도자 생활 해오셨고, 나도 어차피 이 길 계속 가려면 경험 많은 분 밑에서 배우자 싶었지. 배려를 상당히 많이 해주셨어. 팀 지휘하는 권한도 많이 주셨고. '네가 감독 될 때 어떤 팀을 꾸릴 건지 지금 해봐라', '팀 컬러도 만들어봐라'라고 하시면서."

"'조민국 감독, 이을용 코치가 와서 많이 바뀌었다' 해야 할 텐데. '예전이나 똑같네'란 말 나오면 감독님 이름에 먹칠하게 되는 거 아냐. 문득 무섭더라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됐고. 팀 맡은 지 7개월 됐는데 많이 성장했어. 100%는 아니어도 주위에서도 달라졌다 하니 기분 좋지. 조 감독님도 내심 좋아하시는 거 같고. 올해는 절반 이상 성공하지 않았나 생각하지."




올 시즌 U리그 2권역(대전, 충북)을 주름잡은 청주대. 그 이야기는 워낙 많이 전해 들었다. 무패 정도가 아닌, 8전 전승. 여범규 감독과 박규선 코치가 맡은 한남대(2위)도, 이상윤 감독이 맡은 건국대(3위)도 적수가 안 됐다. 이기는 법을 알았달까. 승리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50여 회에 이르는 연습 게임에서도 져본 적 없었다.

연승 행진은 이번 추계연맹전에서야 깨졌다. 조별예선 첫 라운드에서 동아대를 3-0으로 박살 낸 청주대는 대구예술대전 2-2 무승부에 발목 잡혔다. 이 코치가 친분 있던 이재천 대구예술대 감독을 타박했다. "어떻게 연승을 끊냐. 하. 씨". 신수진 청주대 코치가 한마디 보탰다. "아, 진짜 사람이 어떻게···. 다른 것도 아니고 연승을".

승수는 꺾였어도, 기세는 계속됐다. 대진운까지 있었다. 부산외국어대, 부경대, 제주국제대를 연파하고 8강까지 올라섰다. 고비도 있었다. 부경대와의 16강전. 매번 선제골 넣고 시작했던 청주대가 먼저 실점을 헌납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뒤집었다. 신명 나게 뛰는 에너지가 피치를 휘감았다. 상황에 대처하고, 해결하는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은 떨어졌으나, 팀으로 이겨냈다. 이건 보통 힘이 아니다 싶었다.

"처음에 팀 맡고선 '야, 이거. 애들 진짜 어떻게 만드냐'. 정말 답이 없었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대학 애들인데 고등학생보다 볼 못 차는 애들이 있었으니 말 다했지. '그래도 이런 팀 한 번 만들어보자'고. 그렇게 마음 바꿔 선수 개개인에게 맞춰 전술 짜고, 훈련 프로그램 진행하고. 하다 보니 실력 느는 게 좀 보이더라고. 내가 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애들도 향상되겠다 싶었고."

'걔 어디 출신이야?'. 아마 축구는 물론, 프로 현장에서도 이런 말은 파다하다. 조선이공대를 나온 한교원이 전북에서 뛰고, 대표팀까지 뽑혔다 해도. 그깟 출신 하나가 모든 잠재력, 가능성을 모두 말할 순 없으나, 수많은 인력풀에서 선수 개인을 어느 정도 가늠하는 잣대임은 틀림없다.

청주대 개개인의 약력을 훑었다. 혹여나 명문고를 졸업했다 해도 빛 보며 축구를 해온 친구들은 아니었을 터다. 동료 그늘에 가려 땀 흘린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1순위, 2순위, 3순위···, 그리고 그다음 아이들을 받았다. 어떻게 이들을 키워내느냐. 어떻게 귀 기울이고 요구 사항 받아주며, 때로는 따끔하게 혼도 낼지. 그렇게 밀고 당기는 것부터가 지도자 역량이다.

"상대 진영에서 볼 간수하고, 뺏기면 바로 프레싱하는 공격적인 팀 컬러를 선호해왔지. 조 감독님도 워낙 그러셨고. 요즘 애들, 공격은 재밌어 하는데 수비는 잘 안 하려 그래. 그래서 거기에 맞춰 지도했고. 요새는 90분이 아니라, 95분에서 97분 뛸 경기 체력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전혀 안 돼 있었어. 게임 뛰면서 체력 만들고, 짧은 거 많이 뛰게 했더니 그제야 좀 올라오더라고. 이제 선수들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정도는 아니까. 큰 틀 잡아주는 선에서 끝내."



경쟁으로 몰아넣었다. 그 결과 청주대에서는 서른 명 넘는 멤버가 전부 주전이다(타팀에서 잡는 1군 규모는 보통 18~20명). U리그만 해도 32명이 모두 다 뛰었다.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열심히 하고 컨디션만 좋다면 무조건 뛰게 했다. 로테이션이 되며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척척 해냈다. 그렇게 축구의 맛을 알아갔다.

"저들이 알아서 개인 운동도 할 만큼 한 놈들이거든. 핵심적인 얘기만 하면 지도자 주문을 알아채고. 재밌게 하다 보니 인상도 안 찌푸려. 웃는 분위기에 하니까 결과도 좋고. 우리는 학년 구분 없이 열심히 하고, 잘만 하면 무조건 뛰켜. 밖에서 안 된다 해도 내가 딱 말 자르지. '일단 한 번 보시라'고."

'밖에서 안 된다 해도'에 걸렸다.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던 이 코치도 "실력은 살짝 떨어져"라며 선을 그었다. 청주대는 상대 팀하고만 싸우는 게 아니다. 이 학교는 볼 게 없다며, 팀 성적도 그저 그렇다며, 이 중 프로는 얼마나 가겠냐며. 대신 타 유명 학교를 찾아다니는 이들의 편견도 극복해야 했다.

묘하게 겹쳤다. 축구 관두고 공장서, 공사판서 굴렀던 이을용. '쟤 운동 다시 할 수 있겠냐', '그걸로 밥은 벌어먹고 살겠냐'란 시선을 받았던 20년 전 그 인물. 처한 환경은 달라도, '안 될 것'이라는 지레짐작을 뛰어넘어야 했다.

"이현창 선생님(당시 철도청 감독)께서 우리 고등학교 감독님께 '을용이는 대학 어디 갔냐' 물으셨다더라고. 그래서 '저 놈 울산대학교 갔다가 그냥 나왔어요. 운동 안 한다고요'라고 답했더니 '걔 어디 있는지 수소문해서라도 데리고 와. 운동은 내가 다시 시킬 테니까'. 우리 부모님께도 연락하셨더라고. 부모님이 내 생각 슬쩍 떠 보셨을 때 '운동 하고 싶어도 어디 갈 팀이 있냐'고 물었지. 그 때 '오라는 데가 있어'라고 하시더라고. 그렇게 됐지."

이 코치는 안정환 청춘FC 감독의 제안을 단번에 승낙했다. "요즘엔 우리 같은 사람 보고 축구판 미생이라던데"라며 수줍게 웃더니 "이것도 시간 지나고 나면 나름 보람은 있겠다 싶어서···."라고 거대 프로젝트에 뛰어든 소박한 이유를 전해왔다. 20년 전 이현창 철도청 감독이 본인에게 계기가 됐듯. 이을용이란 인물 역시 축구 후배들에게 또 다른 의미가 되고 싶었다.

:: 2편(30일 오전 업로드 예정)에서 계속됩니다.

사진=홍의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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