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대담] '조예스부터 명장설까지' 조민국 청주대 감독①
입력 : 2015.08.0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태백] 홍의택 기자= 대담(對談) : [대ː담] [명사] 마주 대하고 말함, 또는 그런 말. '속도'보다 '깊이'를 지향합니다. 숨 가삐 달려오느라 놓쳤던, 어디에 쉬이 털어놓을 수도 없었던, 그래서 세상 아래 묻혀 있었던 이야기들 풀어냅니다.

2014년. 울산은 상위 스플릿 막차를 탔다. 더는 반등이 없었다.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명가를 흔들어놓았다며 '조예스(조민국+모예스)'로 불렸다.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5년. 청주대는 U리그 8전 전승을 달렸다. 전국 대회 최고 성적을 기존 32강에서 8강까지 끌어 올렸다. 울산은 더 나빠졌다. 상대성에 따라 '명장설' 운운하는 이도 있었다.

허심탄회했다. 숨기는 게 없었다. 이리저리 재기보다 속 시원히 모두 털어놨다. 다시 돌아온 대학 무대를 논하던 중, 울산 얘기도 튀어나왔다. 억지로 막아 될 일도 아니었다. 연결고리를 잇던 차에 벌어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청주대 돌풍'에 맞춘 초점을 '울산 시절'로 슬쩍 돌려보려는 욕심도 났다. '제46회 전국축계대학축구연맹전'이 열린 강원도 태백에서 조민국 청주대 감독을 만났다.

:: 잘 지냈는지 궁금하다. 울산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통 소식을 못 들었다. 서운함 토로하는 인터뷰가 나온 적은 있어도, 이후로는 청주대 감독이 됐다는 얘기뿐이었다. 스포트라이트 받는 곳이 아니다 보니 사소한 소문도 전달이 늦다.

"난 절대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다. 언제든 그만둘 각오를 한다. 울산 감독직에 연연했다면 어떤 방법을 취해서라도 다른 길을 찾았겠지만. 그걸 피하지 않았다. 다소 아쉽다면 안 좋은 주변 분위기를 빨리 감지하지 못했다는 점. 그래서 마음을 더 강하게 갖지 못했다는 점. 내가 생긴 것과는 달리 성격 자체가 워낙 여유롭다. 서두르지 않다 보니 이렇게 됐다. 작년에 월드컵, 아시안게임이란 큰 행사 두 개를 갖고 감독을 한 게 마이너스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내 계획대로 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할면 어떻게 했겠나. 그래서 대회 혜택이라도 받지 못했다면 말이다. 프로 감독을 그만둔 것보다 더 마음 아팠을 것이다. 그건(아시안게임 등 의무 조항 없는 대회에도 차출에 응한 일) 후회가 안 된다. 다만 나 자신에게 더 투자하고 욕심내야 했는데, 성격상 그게 잘 안 됐다."

:: 대학리그, 내셔널리그, K리그 클래식을 거쳐 정착한 곳이 또 한 번 대학 무대였다. 의아했다. 굵직한 기업 구단 팀 감독이 다시 대학이라. 그것도 축구로 이름 날린 명문 사립이 아니었고. 30대 후반, 혈기왕성한 나이에 이미 고려대 감독을 맡아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적도 있지 않나.

"난 사실 쉬려 했다. 청주대에 오게 된 것도 굉장히 힘들었다. 지난 연말에 지방서 쉬다 오려 했는데, 집사람이 대뜸 말하더라. '당신이 청주대 가면 좋아할 사람이 분명히 있다'고. 고민했다. 청주대 레벨을 따진 게 아니다. 고려대 감독만 10년 한 이력이 있어도 상관없었다. 단, 마음을 추스르고 여유를 갖고 싶었다. 그때 주위 사람들이 계속 감독직을 말하길래 차 한 잔 마시다 그렇게 결정했다. 솔직히 창피한 것도 있었다. 올해 봄 통영 대회(제51회 춘계대학축구연맹)에 갔더니 '프로 감독 된 지도, 관둔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대학으로 왔느냐' 하더라. 그런데 아이들이 변하는 것을 보고 생각도 바뀌었다. 지방대라 해도 괜찮다. 아이들이 표현력이 늘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뿌듯하더라. 내가 있는 동안 팀을 잘 만들어놔 후임으로 누가 오든 흔들림 없게 하고 싶다."

:: 선수들 지도는 괜찮은지 모르겠다. 지난해만 해도 대표팀에 드나들 만큼 완성된 선수들과 함께했다. 그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아이들과 성장해가는 감이 크다. 평소 본인 스타일에 맞춰 팀은 잘 개편했는지. 성적 면에서 봤을 때 나름 성공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즐겁게 잘 지낸다. 하고자 하는 생각, 의욕이 운동장에서 보인다. 덕분에 지루함 없이 보내고 있다. 처음에는 청주대 애들이 공격 성향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난 지는 걸 두려워하는 성향이 아니다. 이기려 하다 보니 질 순 있어도, 지지 않는 경기는 하기 싫었다. 내가 다음에 어디서 감독 생활을 하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도자도 할 만큼 했고. 선수들 위해서라면 이기려 덤비는 경기가 더 필요한 걸 알았다. 싸움을 붙여야 지더라도 얻는 게 있지 않나. 우리는 연습 게임이든, 본 시합이든 1진부터 2~3진까지 다 뛰면서 한 번도 안 졌다. 고대 있을 때도 간혹 고등학교에 지곤 했는데. 자꾸 이겨 버릇하다 보니 보이지 않게 강해지는 것 같다. <손자병법>에 보면 승적이익강(勝敵而益强)이라고 있지 않나. 청주대 아이들에게 딱 맞는 표현 같다. 이기면서 강해지는 느낌이다."



:: 대학 축구 얘기를 좀 해보자. 오랜만에 맛본 대학 무대는 어땠나. 2008년 여름 이후로 대학팀 지도를 손에서 놨으니 시간이 꽤 지났다.

"지나치게 수비적으로만 하더라. 싸움을 좀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볼거리도 생기지 않나. 지도자들이 어린 선수들에게서 전투적인 것들을 좀 끌어내 줬으면 좋겠는데. 안 지는 축구를 하려다 보니 골 수도 많이 안 나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도 안 된다. 앞으로 나오나, 뒤로 빠지나 큰 차이가 없는데 말이다. (대학 리그 내 승강제를 도입 주장이 반대에 부딪혀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까) 맞다. 안 지려 하다 보니, 잃지 않으려 하다 보니 결국 얻는 것도 없다. 승강제 얘기도 오래전부터 나왔다. 그래야 실력이 향상될 텐데, 아직도 안 되고 있다."

:: 공감한다. 진짜 경기 재밌게 한다는 팀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어쩌면 더 심각한 건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아닌가 한다. 특징 있는 친구가 없다. 김호 용인축구센터 총감독도 태백에 와서 같은 얘길 하고 갔고. 유니폼만 바꿔 입으면 그 선수가 그 선수다.

"한 명을 제치는 선수는 보인다. 그런데 두 명까지 넘을 만한 애가 없다. 그래서 골이 안 나온다. 찬스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마지막 하나를 못 제치니까 블로킹 당한다. 특징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사람들이 멋있는, 화려한 것을 보지 못하니까 축구가 재미없는 줄 안다. (직접 이천수, 박주영을 지도한 입장에서 어떤가) 어휴, 걔들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단발성 플레이는 요즘 애들도 간혹 하지만, 천수나 주영이는 눈에 딱 띄는 골을 만들던 친구들이다."

:: 왜 그런 선수들이 안 나올까. 어렸을 때 실력을 인정받아 해외로 나가는 선수들이 늘었다고는 해도. 그 빈도나 비중을 봤을 때, 국내에도 걸출한 친구들이 등장해야 정상이다. 타 감독들을 만나 봐도 다 같이 한 소리다. '눈에 띄는 친구가 없다'고.

"내 생각에는 기본적인 훈련량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가 선택할 때가 온 거다. 월드컵에 나가긴 나가더라도 기대하지 말든지. 2002년처럼 성적을 계속 내고 싶다면 다른 길을 걷든지. 볼에 대한 터치감, 판단력을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연령대별 특별한 선수들에게는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축구 선수도 좋지만, 정말 잘하는 엘리트는 따로 모아 집중적으로 육성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5천만 넘는 국민이 4년에 한 번씩 손뼉 칠 수 있을 텐데. 지금으로선 점점 멀어진다."



:: 반년 새 다시 대학 감독 다 된 것 같다. 6년 반이란 공백을 가졌어도 대학 무대에 적을 둔 10년이란 시간이 더 길었으니. 아무래도 치열하게 경쟁하던 프로팀보다는 여유가 생기지 않았나. 지난날을 되돌아볼 시간도 있을 테고. 부족한 공부를 채울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다. 오히려 프로에 있을 때가 낫다. 울산에서는 첫 해에 포기했다기보다는 마음을 비운 것도 있었다. 구단이 여러 가지로 어려워 다시 다잡으려 했다. 그래서 오히려 심적으로 괜찮았다. 주위 사람들이 내게 '너무 여유 있다'고 걱정할 정도였다. 내 성격이 원래 그런 걸 어쩌나. 그런 면에서 청주대는 여유가 없다. 우리가 오늘이든, 내일이든 언제든 지는 날이 온다. 선수들이 그걸 어떻게 한 번 더 넘고 거듭날 것인가. 고민이 깊다. 여기서 멈출까 봐 걱정도 된다. 지금도 11명이 모이면 괜찮은 플레이를 하는데, 이 팀에서 떠나 혼자가 됐을 때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절대 쉽지 않다. 실망감이 올 텐데. 그게 눈에 보이는데. 홀로서기를 해도 좌절하면 안 되는데···. 선수 실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더 성장하게끔 만들 것이다."

:: 울산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조금 불편한 대화로 넘어가도 될까. 원망스럽다면 원망스러울 수도 있고. 다 지난 일로 잊었다면 잊었을 수도 있고. 원치 않는다면 대학 축구만 계속 얘기해도 된다. 이와 관련해서도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불편하긴. 나도 사람이니까 처음에는 좀 그랬는데. 이젠 그런 거 하나도 없다. 괜찮다. 울산 내부 소식까지는 모른다. 그냥 성적이 어떻다 정도? 사실 구단 관계자들에게 미안하다. 감독을 2년 만에 두 번이나 바꿨으니까. 밖에서는 그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하는 줄 몰랐다. 그런데 안에 와 보니 게임 준비하느라, 결과 신경 쓰느라 힘들겠더라. 감독과 선수들이 잘못해서 진 것을 본인들이 죄인처럼 여기니까. 내가 더 잘했다면 선수단과 프런트를 이을 수 있었을 텐데···. 서포터즈들과의 관계도 아쉽다. 내가 분명 약속했다. '난 기간 안에 표현한다. 그걸 못하면 자진으로 그만두겠다'. 그래서 2년 안에 '이 사람이 뭔가는 남겨놓고 간 사람이다'란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지난번 사적인 단체 자리에서 윤정환 감독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서먹서먹해 하더라."

:: 2편에서 계속됩니다(2일 업로드 예정)

사진=홍의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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