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대담] '조예스부터 명장설까지' 조민국 청주대 감독②
입력 : 2015.08.0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태백] 홍의택 기자= 대담(對談) : [대ː담] [명사] 마주 대하고 말함, 또는 그런 말. '속도'보다 '깊이'를 지향합니다. 숨 가삐 달려오느라 놓쳤던, 어디에 쉬이 털어놓을 수도 없었던, 그래서 세상 아래 묻혀 있었던 이야기들 풀어냅니다.

조민국 청주대 감독은 길게 봤다. 한 경기, 다음 경기가 아니라 1년, 2년 뒤. 나아가 10년, 20년, 50년까지. 당연히 온도 차가 있었다. 당장 무언가 펼쳐보여야 하는 자리였다. 줄기가 자라고, 꽃도 피고, 열매가 맺혀야 했다. 그 와중에 뿌리 내리는 데 몰두했다. 결국 부딪혔다.

울산에서 이루지 못한 것. 청주대에서 펼치려 한다. 당장 성적에 연연하지 않겠단다. 다음 감독으로 누가오든, 흔들림 없이 첫 발 내딛게 도와주고 싶단다. 본인의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가겠단다. 그 욕심은 나름 성공적이다. U리그(대학리그) 2권역(대전, 충북) 8전 8승. 전국 대회 8강 진출. 청주대의 수준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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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와서 이런 얘기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울산 시절, '그때는 이렇게 좀 할 걸' 싶었던 순간은 없는지. 후회했던 순간 말이다. 한두 가지가 아닐 수도 있겠으나.

"내 욕심이 없었던 것. 감독은 무조건 성적 위주인데, 다음 해 준비하자는 생각을 너무 일찍 했다는 것. 월드컵도, 아시안게임도 있으니 당연히 선수 유출이 심했고. 이 전력으로는 어차피 우승 못한다 싶었다. 김신욱이나 김승규는 20경기 이상을 못 뛴 격이 됐으니까. 그래서 빨리 보낼 선수들 내보내고, 구단과 자금 세이브에 대해 논했다. 그러면서 단장에게 '내년에 이건 도와줘야 한다'며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 그런데 위에선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더라. 그걸 감지하지 못했다. 성적에 대한 부담을 주면서도, 팀이 힘드니 예산 삭감을 해야 한다 했고. 한상운, 강민수를 군대 보냈다. 하피냐, 까이끼, 김영광, 마스다도 모두 내줬다. 그렇게 해서라도 구단과 협조해야 한다 싶었다. 그리고 2015년에 한 번에 몰아서 잘해보자 이거였다. 그러면서도 후회하지 않으려 발버둥치기도 했다."

:: 발버둥친 건 무엇을 말하나.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준다면.

"가장 대표적인 건 정규리그 마지막 성남 원정. 그날 상위 스플릿에 못 가면 자진 사퇴 기자회견을 하는 거였다. 당시 3-1로 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교체 카드가 남았다. 큰 신장으로 전방에서 공중볼을 다툴 자원이 필요했다. 코치들은 김근환을 추천했다. 하지만 박동혁 카드가 끌렸다. 다른 때는 코치 얘기 다 들어줬는데, 그때는 아니었다. 강제로 박동혁이 데려와 매니저한테 교체 시키라고 했다. 그 짧은 순간에 후회 없는 감독이라도 돼야겠다 싶었다."

:: 올해 들어 울산의 경기 결과 정도는 챙겨본다고 들었다. 상황이 썩 좋지 못해 뭐라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예견한 상황인가. 반년 전까지 지도해왔기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감은 잡힐 텐데.

"너무 성적이 안 좋으니까···. 적어도 나보다는 성적이 좋아야 한다는 게 윤정환 감독의 부담일 테고. 선수 영입은 영입대로 했으니. 이쯤되면 선수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프로 정신이 부족한 이들도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갑자기 대표 선수가 돼 현 위치에서 해야 할 일, 잘잘못에 대해 제대로 파악 못 하더라. 대표팀은 대표팀대로, 팀에서는 팀대로 열심히 하는 게 맞는데. 그게 떨어지니 윤 감독도 힘들어할 것이다. 정신 상태와 별개로 김신욱, 양동현, 외국인 선수도 제 역할을 못했다. 얘네가 안 터지면 울산은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미드필더들이 모두 합쳐서 한 해 10골 정도 넣어줄 수도 없고. 공격이 안 됐을 때 뒤에서 미들 슈팅할 능력도 떨어지고. 상대가 막아서면 활로가 없다."

:: 기대를 모았던 후임자가 생각만큼 못해주고 있다. 초반에 성적을 내다 4월부터 곧장 곤두박질친 것이 지난해 행보와도 비슷하고. 이를 지켜보는 감정이 복잡미묘할 듯하다.

"내 잘못도 크다. 저번에 누군가 울산에 조언을 해달라 하여 '어차피 돌아가야 한다. 처음부터 주어진 계약 기간이 있으니 여유 가져라. 여기서 서둘다 보면 악수가 된다'고 했다. 조마조마하게 하면 한 게임은 풀어도, 조금만 길게 보면 안 먹힌다. 윤 감독도 안 지는 축구를 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지는 걸 두려워하면 정말 힘들어진다. 이제 20경기 넘게 했으니 다 한 번씩 부딪쳐보지 않았나. 상대도 윤 감독의 패를 읽고 운영한다. 거기에서 막히다 보니 수싸움에서 위기가 온다. 무리한 수를 두게 된다. 결과도, 내용도 못 잡는 결과가 오고 만다. 감독이 게임하는 걸 무서워하면 팀이 완전히 망가진다. 그러다 보면 도전적인 플레이를 못한다."



:: 모두 지났으니까 하는 질문인데. 혹시 '조예스(조민국+모예스)'란 별명 들어본 적 있나. 직전 시즌까지 상위권, 우승권에서 머물던 팀 성적이 급락했다는 내용이다. 알렉스 퍼거슨에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지휘봉을 잡았던 데이비드 모예스에서 따왔다.

"처음엔 댓글이나 이런 걸 안 봤으니까. 조예스라 하기에 무슨 예수인가 했더니 모예스에서 나온 표현이더라. 그 사람 어쨌든 맨유 감독까지 하지 않았냐. 뭐 그냥 웃으면서 넘겼다. 제일 기분 나빴던 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백지훈을 욕하냐는 거였다. 그리고 마스다 보낸 것. 나라고 왜 그런 선수를 보내고 싶었겠나. 그럼에도 구단 사정과 맞물렸었다. 아직도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건 그 선수가 5~6억 원을 받을 자원이 아니란 점이다. 확신한다. 인성적으로도 좋은 선수인데, 그만한 액수는 절대 아니다. 그 정도 금액이라면 지금 다시 돌아와 리그를 완전히 주름잡아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지 않나. 팬들 반응이 참 웃기더라. 어떨 때는 재밌기도 하다."

:: 2014년과 2015년을 비교하며 '조민국 명장설' 운운하는 이도 있었다. 1, 2위 다투던 팀을 맡아 6위를 했던 2014년의 조민국 감독. 6위 팀을 맡아 10위로 떨어진 2015년 윤정환 감독. 적확한 비교는 어렵다. 단, 올해 성적이 기대보다 못하다는 실망감과 자조 섞인 반응이 혼합된 게 아닌가 싶다.

"윤 감독이 성적이 워낙 안 좋다 보니···. 사실 내 잘못이다. 프로는 선수에 맞춰서 기대에 부응해야 했는데. 타이밍이 안 좋을 때 프로로 넘어왔다. 김신욱, 김승규에 대한 비중이 워낙 컸는데, 이 친구들 빠져버리니 이건 뭐. 선수 탓하는 게 아니라, 시기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난 나름대로 최선은 다했다. 그래도 상대방을 괴롭혔다는 것이다. 내가 지지 않으려 했다면 수비 축구를 했어야지. 대표 선수 빠져나간 스쿼드로도 지는 걸 두려워했다면 앞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그런데 당시 날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여러 환경 자체가 그랬고. 홀로 싸웠던 것치고는 분전했다고 평가한다."

:: '홀로'라는 표현에 눈길이 간다. 들은 바로만 추정하기엔 울산 감독 생활이 외로웠을 것도 같다.

"그랬다. 그걸 감수하면서라도 풀어보려 했다. 당시 코치들도 상황을 굉장히 두려워했다. 강민수, 한상운을 군대에 내줄 때, '감독님 왜 보내십니까'라며 만류했다. 난 이미 우승 못할 걸 예측했다. '프로가 우승이지. 2등하면 뭐할 거냐'고. '내년이 될지, 후년이 될지 몰라도 우승할 수 있을 때를 보고 투자하자'고 했다. 인생 살다 보면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있는데. 울산 상황을 더 나쁜 일로 몰아갔다는 점에서 책임을 통감한다. 맨 처음에야 울산이 지고 하니 '그럼 그렇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더라. 내가 더 단단한 팀으로 만들었다면 후임자가 판을 제대로 깔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너무 아쉽다."



:: 청주대가 8강까지 진출했다. 역사에 없던 일이다. 스타 감독이 지도하며 관심을 끈 건국대(이상윤), 성균관대(설기현)와의 비교도 나온다. 아무리 대학 무대가 평준화됐다고는 해도 건대, 성대보다는 스쿼드 질이나 규모에서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팀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데엔 이을용 코치, 신수진 코치 등과 손잡은 것도 크게 작용했을 터다.

"팀 성적도 팀 성적인데, 다른 데서 흥미를 찾고 있다. 예전에는 선수 만드는 게 그렇게 재밌었다. 운도 좋았다. 손만 대면 청소년 대표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으니까. 그러데 마흔 넘어서부터는 지도자를 배출해야겠다 싶었다. 이번에 태백 대회(제46회 전국추계대학축구연맹전) 와서도 굉장히 보람을 느끼는 게 뭐냐면 몇몇 감독들이 '선생님'이라면서 인사를 해오는 거다. 서동원(고려대), 김병수(영남대), 하석주(아주대), 이경수(숭실대), 선문대(김재소), 대구예술대(이재천) 등등. 내가 많은 나이는 아니어도, 축구를 통해 뭐라도 남겼구나 싶었다. 재밌다. 정말 행복한 놈이다. 남들이 못 느끼는 그런 감정이지 않나. 그러면서 더 조심하게 된다. 내 잘못된 것, 안 좋은 것을 따라 할까 봐. 그 친구들이 혹여나 잘못되면 내 뒤까지 돌아보게 된다."

:: 이을용 코치에게 상당히 많은 권한을 주고 있다고 들었다. 큰 틀 잡아주는 데 그치고 세세한 내용은 맡기고 있다고. 그러면서도 한 마디씩 거든다고 하더라. 둘이 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끈끈한 신뢰가 형성된 것도 의아하고.

"사실 을용이란 친구를 잘 몰랐다. 강원 가서 코치하고 있다는 소식을 먼 발치에서나 들었다. 관심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도자로서 쭉쭉 처지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그때 손 한 번 잡아주면 확 달라질 그런 친구였달까. 만약 울산에서 계속 있었어도 올해쯤 한 번 손 내밀어보려 했다. 내가 힘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그건 본인이 느껴야 할 부분이고. 그래도 그간 쌓아온 지도력이 있으니 감독의 느낌도 한 번 전달해주고 싶었다. 코치지만, 팀을 한 번 끌어보라는 식으로 유도했다.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능력 한 번 펼쳐보라고. 이을용은 그렇게 해주고 싶은 느낌이 든 유일한 지도자다."

:: 청주대 돌풍에도 코치 이을용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을 텐데. 선배 지도자로서 평가하는 이을용이란 인물은 어떤가.

"경험만 더 쌓으면 될 것 같다. 잘 안 됐을 때 풀어가는 느낌이 아직은 살짝 아쉽다. 감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판단력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더 독한 감독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적어도 승부의 세계에서만큼은 말이다. 상대를 크게 이기고 있을 때, 여유롭게 모든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게 나랑 비슷하더라. 그게 나쁘다고 볼 순 없다. 다만 더 독한 놈이었다면 더 강하게 밀어붙여 끝장내려 했을 수도 있다. 나도 지도자 하면서 그게 잘 안 됐다. 지금까지는 본인이 갖고 있는 걸 정말 잘 표현해온 것 같다. 선수 교체 포함해서 첫 게임부터 쭉 잘해왔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굉장히 흥미롭다."

사진=홍의택 기자,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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