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대담] 김호남 인터뷰②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이유요?''
입력 : 2015.09.0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목포] 홍의택 기자= 누구나 국가대표 선수를 꿈꾼다. 축구화 끈 조여 매고 축구공과 씨름하며 대표팀 꿈 한 번 안 꿔봤다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아무나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달려가 '잘 봐달라'는 골 세레머니를 펼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순간의 재치, 배짱이 충만하다 해도 쉽지 않다.

김호남(26, 광주)은 몸소 해냈다(?). 지난 7월 열린 ‘2015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전'에서 오른발로 멋스럽게 감아낸 김호남은 반대편 골망 하단을 찔렀다. 훈훈하게 벤치로 달려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찮다. 알고 보니 상대 팀 벤치다. 적장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게로 다가가 악수를 건넸다. 김호남은 이로써 '아디다스 올스타전 골렉션' 1위를 거머쥐었다.

:: 얼마 전 슈틸리케 감독님이 월드컵 2차 예선 명단 발표했잖아요. 지난 올스타전 악수 효과 기대는 안 해봤어요?

"진짜 기대 안 했어요(웃음). 제가 실력에 비해 과하게 욕심내는 스타일은 아니라서요. 잘하고 있을 때나 '혹시나?'하고 기대하지. 지금은 팀 성적도 안 좋고, 저 자신도 만족할 수 있는 플레이는 아니에요. 다만 대표팀 선수가 되고 싶다는 확실한 목표는 있어요. 언젠가는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거든요. 작년 승격 경험이 컸어요. 축구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 당시 기자석에서 그 세리머니를 봤어요. 이벤트성 경기다 보니 어느 선수가 어떤 팀인지 헷갈렸죠. 그런데 재차 확인해 봐도 '김호남' 이름 석 자는 '팀 최강희'에 포함돼 있더라고요.

"저는 정말 재밌게만 보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욕하시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이건 아직 해명할 기회가 제대로 없었어요. 진짜 재미로 그런 거거든요. 저도 프로 선수니까 국가대표 되는 것은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아요. 악수 퍼포먼스가 소용없는 것도 잘 알고요. 이 자리 빌어 불편함 느꼈던 팬분들께 사과 드리고 싶어요."

:: 그렇게 그 세리머니는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보통은 팀에서 다들 같이 준비하잖아요.

"사실 동국이 형이 (김)승대와 (손)준호랑 저한테 '너희끼리 하나 준비해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아이디어도 딱히 안 떠오르고. 갑자기 '야, 준비했냐' 하셔서 꾸물댔죠. 그때 준호가 두 개를 내더라고요. 사진 하나 찍고, (차)두리 형 헹가래를 올려주자고요. 상대 팀이 워낙 진지하게 하니까 저흰 두 골 이상 안 날 줄 알았어요. 마침 (주)민규가 골 넣고 헹가래 쳤는데. 나중에 두리 형이 '이제 누가 골 넣으면 큰일 난다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 사진이나 헹가래나 살짝씩 식상한 게 사실인데. 본인이 따로 생각해본 건 없었고요?

"말은 안 해봤는데, 사실 처음에 생각한 건요. 제 이름이 호남이잖아요. 또, 형 이름이 영남이니까. 이름을 안에 셔츠에 써서, '우린 영호남 형제입니다'라고 하면서 화합 이런 걸 말할까 했어요. 그런데 자칫하면 지역적인 발언이 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접었죠, 그냥."



::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그런 돌발(?) 행동까지 하게 됐어요?

"원래 최강희 감독님께 갔다가 부심 보셨던 저희 남기일 감독님께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건 별로 재미없을 것 같더라고요. 카메라에도 잡혔을 걸요? 제가 골 넣고 나서 오만상을 쓰면서 엄청나게 고민하던 게요. 그 짧은 순간에(웃음). 그냥 즉흥적으로, 순순히 재미를 위해서 갔죠. 나중에 동국이 형께는 한소리 들었어요. '세리머니 없다더니 혼자 하려고 아껴놨냐'고요."

:: 슈틸리케 감독님 표정은 어떻던가요? 관중은 물론이고, TV 방송 카메라에도 그 찰나가 잘 안 잡혔거든요.

"처음에 딱 가니까 말도 안 통하고. 감독님은 '뭐,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이런 표정 지으시고. 제가 손을 건네니 눈치채신 거 같더라고요. 그랬더니 악수해주시고, 어깨도 두드려주셨어요. 그날 (김)영권(26·광저우 에버그란데)이한테 연락이 왔는데 '넌 진짜 미친놈이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날 이후 영권이가 슈틸리케 감독님 통역 형이랑 대화하다가 제 얘기를 했나 봐요. 걔도 열심히 한다는 식으로 포장을 해줬나 본데. 감독님도 다 보고 계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잘하면 쓰신다고도 했고요. 그런 게 다 기폭제죠."

:: 최강희 감독님과의 관계는 잘 회복됐나요? 기자 회견장서 바로 "전북 데려가 벤치에 앉힐까 싶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날 경기 끝나고 라커룸 들어가니 저녁밥으로 피자가 있더라고요. 최 감독이 장난으로 '야, 호남이 너 전북 데려가서 벤치 앉힐 거야'라고 하셨어요(웃음). 그때 서정원 감독님이 최 감독님께 피자 드렸더니 '난 호남이가 주는 거 아니면 안 먹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다음엔 '(세리머니)잘했다'고 해주셨어요. 올스타전 경기 전 축구 교실에서 최 감독님과 같이 아이들을 가르쳤는데요. 굉장히 잘 놀아주시더라고요. 일부러 넘어지시기도 하고. 정말 위트 있으시고."

:: 여담이긴 한데, 그날 골 하나는 기가 막혔어요. 실전에서도 잘 나오지 않을 정교한 감아 차기가 눈길을 사로잡았거든요.

"하루 전날 부상으로 빠진 (임)선영이 형한테 전화했었어요. 재밌게만 하려 하지 말고, 진지하게 하라고요. 그래서 냅다 열심히 했죠. 그랬더니 동료들이 뭐라 하더라고요. 경기 때보다 더 열심히 한 거 아니냐면서요.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저는 이제 막 클래식에 올라와 처음 뛰어보는 것이거든요. 이런 기회도 처음이고요. 올 시즌이 끝나면 '김호남이란 선수가 클래식에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이 있구나' 이런 걸 판단 받아 보고 싶기도 해요."



:: 경쟁력이라. 왼쪽 측면 윙어로 꼽자면 에닝요(전북), 염기훈(수원) 등일 텐데. 클래식에 올라와 보니 본인 위치는 어느 정도인 것 같던가요?

"작년에 국내 측면 자원의 통계를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잘했던 선수가 임상협, 황일수(이상 현 상주), 한교원(전북), 윤일록(서울) 네 명 정도로 좁혀지더라고요. 이분들보다 잘하면 인정받을 수 있겠구나, 이들을 목표로 잡고 열심히 해야겠다 싶었죠. 그런데 앞선 두 분은 군대 가셨고, 나머지 선수들은 올해 부침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목표를 설정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어요."

:: 김호남이 찍으면 다 주춤한다 뭐 그런 건가요? 이제 또 다른 선수를 본보기로 삼아야죠.

"김승대 선수 정말 좋아해요. 움직임이 굉장히 뛰어나거든요. 컨트롤도 훌륭하고요. 제가 필요로 하는 걸 갖고 있어요. 친분 전혀 없는데, 이번 올스타전에 가서도 괜히 '나 너 정말 좋아'라고 먼저 말했어요. 축구하는 게 맘에 드니 일방적으로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승대가 동아시안컵 가서도 카카오톡으로 연락하고 그랬어요. 지금까지 포항 경기는 하이라이트로라도 꼭 챙겨봤어요. 하나하나 보면서 배우려고요."

:: 김승대 선수 후반기 폼 떨어지면 김호남 선수 탓으로 하고. 얘기하다 보니 참 애절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도 있겠으나, 후천적인 노력이 많이 배 있는 듯해요.

"명문대를 못 간 선수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제가 프로로 올 수 있다는 데 의구심이 들었거든요. 오라는 대학도 없었고요. 광주대도 창단 팀에 들어간 거였어요. 좋은 대학교 가면 등록금 면제도 받고 그랬겠지만. 저는 열악한 상황에서 학자금 대출받아가면서 했거든요. 20대 성인이 되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자기가 포기만 하지 않고 간절하게 하면 이뤄진다고요. 사실 진심으로 노력했는지 안 했는지는 본인만 아는 거잖아요. 누구도 판단 못 하는 거니, 남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 노력을 더 하자 싶었죠. 그렇게 프로 선수가 됐고요. 대표팀 선수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광주대가 2013년에 춘계대학축구연맹전 우승도 하는 등 최근에 성적을 냈는데. 전통적인 명문대와는 거리가 있어요. 대표팀까지 꿈꾼다는 건 일종의 오기 같은 것일까요? 나도 할 수 있다 그런 것?

"제가 프로까지 와서 경기를 뛰었잖아요? 그랬더니 국가대표까지 하고 싶었어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된다는 걸 보여주길 원하거든요. 한교원 선수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조선이공대가 축구계에서 유명 학교는 아닐 수 있거든요. 그런데도 정말 열심히 해서 그 자리에까지 올랐잖아요. 고려대, 연세대 나온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도, 대우도 받는 게 맞지만. 정말 그 주위에 있는 선수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어요. 내가 더 잘해서 노출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테고. 그런데 '알고 보니 좋은 대학교를 나온 건 아니더라. 그러니까 나도 하면 된다' 그런 거요. 지금요? 4~50%는 했으려나요. 아직 멀었어요."

김호남은 축구만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책을 꺼내 들었다. 아침 식사 뒤 꼭 몇 페이지씩 넘긴단다. "공부하는 버릇이 안 돼서 2~30분만 보면 잠 온다"라면서도 자기계발서는 마스터했단다. 최근에는 영역을 넓혀보라는 주위 권유에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잡았다. '절친' 김영권에게도 추천했다. "우리가 운동만 해서 많이 부족하니까 빨리 이 책 읽자. 이 정도만 해도 어디 가서 대화는 되겠더라"면서. 그렇게 매사 열심히 덤빈다. 축구를 더 오래, 더 멀리하기 위한 밑거름을 다지며. 더 나아가 축구 다음의 생까지도 착실히 준비하며.

사진=윤경식 기자,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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