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대담] 투비즈 스카우터가 본 '한국 축구, 한국 선수'①
입력 : 2016.01.0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강릉] 홍의택 기자= 대담(對談) : [대ː담] [명사] 마주 대하고 말함, 또는 그런 말. '속도'보다 '깊이'를 지향합니다.

명함을 건넨다. '○○ 축구 유학 전문'. 각 급별 아마추어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현장은 분주하다. 해외에 연고를 둔 스카우터 및 에이전트까지 방문해 들썩인다. 우리 아이도 유럽 무대에서 한몫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꿈이 핀다.

사실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 선수를 직접 데려갈 해외 스카우터가 면밀히 관찰하고, 일일이 코멘트하는 게 아니라면. 그와 함께 일하는 국내 에이전트를 거치든,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지도자를 거치든 전해 듣는 게 대부분이다. 이마저도 입에서 입으로 옮기며 얘기가 와전되기도, 부풀어지기도 한다. 유럽 구단의 취향과 기호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강원도 강릉에서 펼쳐진 2015 제96회 전국체육대회. 벨기에 클럽 AFC 투비즈 스카우터 필립 티스를 만났다. 야야 투레(맨체스터 시티)와 엠마누엘 아데바요르(전 토트넘 홋스퍼)를 발굴했다던 그가 보고 느낀 바를 솔직히 털어놨다. 한 개인의 의견일 뿐, 모든 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다만 평소 우리가 보지 못했거나, 혹은 우리와는 다르게 볼 부분도 있기에 한 번쯤 곱씹어볼 만하다.



▤1. 우리가 부족하다고 여겼던 자질 : '기본기, 사고력'

"한국 선수들은 기본기가 부족해". 칠레에서 열린 2015 FIFA(국제축구연맹) U-17 월드컵에 대한 반응만 봐도 그렇다. 기본기가 안 돼 쩔쩔매는 거라고. 손흥민(23, 토트넘 홋스퍼), 기성용(26, 스완지 시티)의 사례를 보면 부인할 수는 없다. 탄탄한 기술이 안정감을 불러오고, 큰 무대에 올라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모 관계자가 한 마디 보탰다. "걔네는 아버지가 기본기를 가르쳤지, 한국 축구가 키운 건 아니잖아?"(이 선수들 역시 축구 협회 차원에서의 훈련 및 여러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 불가다).

이렇게만 들으면 한국에서는 기본기 교육을 등한시하는 듯하지만. 막상 해외로 나가본 이들의 반응은 또 다르다. 초등학생 재학 중 스페인 축구에 도전했던 한 선수 부모는 처음 정착했을 때 상당히 놀랐단다. "왜 얘네는 볼 컨트롤 등 기본적인 부분을 세심하게 안 가르치나 싶었어요". 오히려 한국에서 체계적으로 배운 드리블, 리프팅 등이 스페인 친구들과 경쟁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실전에 투입해 스스로 기술을 익히게 하고, 그게 안 되면 바로 내동댕이치는 현지 풍토에서 한국식 교육법이 생존 비결이 됐다는 설명이다.

기본기 다음으로 많이 들었던 얘기는 '한국 선수는 생각없이 공 차는 기계'라는 것. 중등, 고등, 대학교 등 아마추어 레벨만 봐도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경우가 많다.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듯한 모습에 황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변칙적으로 번뜩이는 빈도는 무척 낮다. 홍명보 감독과 함께했던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전 대표팀 코치 역시 이 부분을 지적한 바 있다. "한국 선수들의 약점 중 하나는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힘이 약하다"라고. 팀의 시스템 속에서 생각이 매몰된 경우도 많았다.

"기술적으로는 상당히 뛰어나다. 빠르기도 하고, 두 발 모두 잘 쓰다 보니 미드필더나 윙어가 특히 좋다. 왜 계속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쪽에서 접근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는 체계적으로 지켜보지는 못했다. 경기 30분 전에 먼저 와 웜업하는 것 정도로 확인했다. 여기에 경기까지 통틀어 봤을 때, 여러 국가의 해당 또래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체격 및 전략적 부분에서 부족하지 않나 평가한다. 또, 선수 자질보다는 해외 무대나 국제 대회에 나갔을 때의 적응력 문제가 클 수도 있고. 이는 한국뿐 아니라 항상 있는 일이다. 생각 없이 하는 축구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바 있다. 선수가 코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코치가 선수들에게 조금 더 자율성을 주면 좋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유럽에서는 자유롭게 풀어두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이번 대회에서는 주체성을 갖고 뛰는 선수들을 많이 봤다."



▤2. 그래서 누구를 데려가겠소? : 성공의 전제 조건으로 꼽은 '멘탈'

그의 말에 따르면 잘 갖춘 기본기에 주체성 갖고 뛰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유럽에 도전할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니다. 선택받은 몇몇을 향해 필립은 '멘탈'이라는 표현을 꺼냈다. 이는 흔히 지도자 세계에서 말하는 '인성'과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동기 부여'나 '목적의식'에 더 가까웠다.

꽃봉오리가 터질 듯 말 듯한 유망주는 늘 다루기 조심스럽다. 당장 해외의 큰물로 내보내기에는 실패 확률이 높고, 그래서 조금 더 여물기를 기다리자며 다독인다. 그 시기를 버티지 못해 도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물 안 개구리는 배가 부르기 시작하고, 1년 뒤에도 별반 다를 게 없을 만큼 정체된다. 결국, 백지 한 장 차이밖에 안 됐던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오며 왕년의 천재는 조용히 잊혀 간다. 필립의 표현대로라면 '멘탈이 약한 이들'이다.

"멘탈이 좋아야 한다. 남미나 아프리카는 10대들도 성공하려는 욕구가 상당히 강하다. 그것이 그들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평범한 한국 선수들은 이런 부분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유럽에 적응하기 어려운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 선수들의 성격이 어떤지도 알아봐야 하는데, 이 과정이 굉장히 어렵다. 한국 에이전트들과도 같이 보면서 그들의 배경을 최대한 물어보는 편이다. '얘는 성격적으로 어떠냐', '이 선수는 얼마나 어떻게 지켜봤느냐', '이 학교의 분위기는 어떻느냐' 등. 가능하다면 가족, 친구들과도 많이 얘기해보는 편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건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다. 그래야 데려가도 리스크가 적다. 인성도 상당히 중요시하는데, 한국은 예의범절을 교육받아 이런 것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가(웃음). 크게 걱정 안 한다.



▤3. 선수 개인의 기량보다도 아쉬웠던 부분 : 한국 '시스템'

좋은 선수를 눈은 모두 엇비슷하다. 단, 데려갈 수 있는 구단은 한정돼 있다. 이미 프로팀 산하 고등학교 출신들은 말할 것도 없으며, 대학 진학 및 프로 입단의 일정까지 계획해 놓은 이들이 적지 않다. 시쳇말로 '찜'해놓은 환경 속에서 필립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가령 포항 스틸러스 U-18팀 포항 제철고와 수원공고의 남자 고등부 경기. 포철고는 승부차기 끝에 패했지만, 개개인 기량은 물론 경기 운영 역시 상당히 세련되게 해냈다. 하지만 이들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무작정 데려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이 사안에 대해 그는 "인터뷰 그만하자. 너무 아쉬워서 집에 가야겠다"라며 농을 쳤다. 투자에 따른 성과를 내는 것이 유망주를 길러내는 프로팀의 당연한 생리나, 그 내면엔 다소 불분명하고 경직되게 비친 부분도 있을 터. 장점도, 단점도 공존하는 이 환경에 대해 필립은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재능 있는 선수들을 본다? 데려오기가 정말 쉽다. 실제 아프리카의 유소년 아카데미는 유럽 클럽의 오퍼를 경쟁 붙여가며 그 수익을 극대화할 방법을 찾는다. 유럽에서도 19세만 되면 프로로 전환하기에 더 좋은 오퍼에 따라 팀을 옮기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아시아는 아니다. 특히 경제적 기반이 탄탄한 한국은 독자적인 환경을 갖고 있다. 마음에 드는 19세 선수를 봐도 '얘는 프로로 가', '쟤는 어느 대학교 가기로 했어'라고 하더라. 처음에는 시스템이 이해가 안 돼 '왜 나는 포기해야 해?', '우리가 더 좋은 오퍼를 제시하면 되는 것 아니야?'라고 물어도 봤다. 한국은 경쟁 자체가 안 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3년째 한국을 돌아다녀보고서는 이를 인정하게 됐고, 그 결과 점점 더 어린 애들을 지켜보게 된다. 많이 아쉽다. 계속 찾다 보면 가능성 있는 한 명은 찾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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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의택 기자, 대한축구협회, 스포티즌
통역=최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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