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별의 챔스씬] 8만 축구팬은 산시로에서 축구로 밤을 지샜다
입력 : 2016.05.2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밀라노 (이탈리아)] 김한별 기자= 자정이 다한 시간까지 밀라노 산시로 스타디움은 불이 훤했고 8만 관중의 환호성은 연신 밤하늘을 갈랐다. 지난 28일 이탈리아 밀라노 산시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저녁 11시 35분이 되어서야 트로피의 주인이 가려졌다. 2016년의 유럽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가 ‘빅이어’를 들어 올린 시간은 자정이 지나있었고 세리머니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축구로 밤을 지샌 산시로 현장의 소식이다.



S#1. 오프닝 세리머니, 모던과 클래식의 하모니

이번 챔피언스리그 결승 오프닝 세리머니는 매스게임과 플래시몹으로 구성됐던 종전의 무대들과는 달랐다. 마치 미국 NFL 슈퍼볼의 하프타임 공연을 연상시켰다. 첫 무대는 팝 가수 알리샤 키스가 장식했다. 중앙에 설치된 별 모양 특별 무대에 오른 알리샤 키스는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시작했다. ‘Fire’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후렴구가 시작되자 경기장 모서리에 설치된 화염구에서 불기둥이 치솟았고 장내의 열기도 달아올랐다.

이어서 이태리가 낳은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글레디에이터의 OST Nelle Tue Mani(Now we are free)’를 불렀다. 보첼리의 공명은 산시로를 가득 채웠고 그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양팀 선수들이 마치 검투사처럼 등장했다. 이윽고 챔피언스리그의 주제가 ‘Anthem’이 울려 퍼졌고 보첼리의 코러스까지 더해져 선율은 더 웅장해졌다. 전광판에 잡힌 선수들의 비장한 표정까지 완벽하게 조화로운 서막이었다.



S#2. 마드리드를 옮겨놓은 듯 했다

마드리드 더비의 열기는 뜨겁다 못해 타는 듯했다. 마드리드 도시를 통 채 산시로에 옮겨놓은 듯했다. 두 팀은 마치 짜 맞춘 듯 응원 대결을 펼쳤다. 레알 마드리드의 서포터는 흰색과 보라색 깃발을 흔들며 응원을 펼쳤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들은 흰색과 붉은색 깃발을 흔들며 맞섰다.

오프닝 세리머니에서는 아틀레티코 팬들이 경쾌한 알리샤 키스 노래에 맞춰 ‘TUS VALORES NOS HACEN CREER’(우리는 너희의 가치를 믿어)라는 응원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펼쳤고 레알은 보첼리의 노래가 시작되자 ‘HASTA EL FINAL, IVAMOS REAL!’(끝까지 가자 레알!)이라는 현수막을 상단에서 내렸다.

그라운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양 팀 팬들의 응원은 귀청을 찢을 듯했다. 마주한 두 서포터들은 덥고 습해 무겁게 가라앉은 밀라노의 공기를 뚫고 연신 환호와 야유를 주고받았고 한시도 데시벨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S#3. 큰 형 지주, 마에스트로 시메오네

두 팀 감독의 장외대결도 눈길을 끌었다. 감독으로 첫 번째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맞는 지네딘 지단은 선수단의 ‘큰 형’이었다. 상대팀 아틀레티코 시네오메 감독이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원채 격렬하게 지시를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날만큼은 지단의 손도 시네오메 못지않게 바빴다. 지단은 연신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독려했고 긴 팔을 사용해 약속된 사항을 사인으로 보냈다.

특히 선수들이 교체되어 나올 때는 먼저 마중을 나가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었다. 후반 6분 카르바할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교체되자 지단은 카르바할의 손을 잡고 이야기하며 그를 위로했다. 교체되어 들어가는 선수들에게는 투입 전 선수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거의 얼굴을 마주 대고 지시를 내렸다.

아틀레티코의 수장 시네오메는 그라운드뿐 아니라 팬들까지 아울렀다. 후반전은 그의 손짓과 함께 달라졌다. 아틀레티코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맞은 페널티킥 찬스를 실축으로 날려버렸다. 이때 시메오네의 온몸은 오른편의 서포터석을 향했다. 그는 찬물을 껴 맞은 듯 얼어있는 팬들을 향해 손을 연신 휘저어댔다. 응원을 멈추지 말라는 제스처였다.

아틀레티코 팬들은 지휘자 시메오네의 손 동작에 맞춰 모두 자리에서 엉덩이를 뗀 체 소리를 높였다. 일부 팬들은 시메오네 감독과 같은 손동작을 하면서 난간으로 쏟아져 나왔다. 시메오네는 후반전 아틀레티코의 슈팅이 나올 때마다 관중석을 향해 격렬하게 손을 흔들었고 그의 지휘에 맞춰 경기의 흐름도, 경기장의 분위기도 점차 아틀레티코 쪽으로 기울었다.

이날 두 감독의 공통점이 있다면 지단과 시메오네 모두 시종일관 서서 경기를 지켜봤다는 것과 경기 시간의 절반 이상을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점이다.



S#4. 단 한 순간도 느슨하지 않았다

단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120분이 지나자 어깨 통증과 두통이 몰려왔다. 이날 경기는 그만큼 치열하고 팽팽했다. 승부차기까지 포함해 120분이 넘는 긴 시간은 단 한순간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전반전은 레알이 우세했고 후반전은 아틀레티코가 전세를 역전시키며 시종 긴장감을 유지했다. 연장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아틀레티코는 내일이 없는 듯 뛰었다. 특유의 두 줄 압박 수비는 아이러니하게도 연장전에 돌입하자 더 뚜렷해졌다. 그리고 레알은 끝까지 레알이었다. 유럽 최고의 화력을 자랑하는 팀다웠다. 내려앉은 아틀레티코를 상대로 연장 후반전까지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슈팅을 날렸다.

결국 승부의 추는 승부차기에서 레알의 마지막 다섯 번째 키커가 슈팅을 날리고서야 기울었다. 호날두의 슈팅이 골망을 가르는 순간, 레알 선수단과 코칭 스탭은 일제히 호날두를 향해서 뛰어나갔고 시메오네는 자신의 선수들을 향해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레알 선수들은 지단을 안아 들어 올렸고 아틀레티코 선수들은 시메오네의 품에 안겨 울었다.

하룻밤을 꼬박 새며 펼쳐진 토요일 밤 산시로에서의 축구는 단 한 장면도 버릴 것이 없었다. 누가 이겨도 아깝지 않을 경기였다. 그날 밤은 선수도 감독도 팬들도 기자도 모두다 땀에 젖어있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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