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축구계 대부 김호가 그리는 큰 그림
입력 : 2017.06.2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김천] 홍의택 기자= 한 노(老)감독이 손자뻘보다 어린 선수들을 바라봤다. 비등비등했던 경기가 한순간 기울었다. 노감독은 "앞으로 2년만 기다려 보소"라며 담담해 했다.

24일 경북 김천 일원에서 열린 대교눈높이 전반기 전국 고등 축구리그 왕중왕전 16강. 김호 용인축구센터 총감독이 현장에 나타났다. 폭염 속 야트막한 언덕에 낚시 의자 하나 펴놓고 전 경기를 관찰했다. 흰 캡모자를 쓴 그에게 현직 지도자가 줄줄이 인사해왔다.

이어 용인축구센터 소속 신갈고가 운동장에 들어섰다. 해당 연령대에서 손에 꼽히는 포항제철고(포항 스틸러스 U-18)와 붙었다. 흐름은 엇비슷했으나 순식간에 두 골 헌납하며 0-2 패. 신갈고의 왕중왕 도전은 그렇게 끝났다. 그럼에도 김호 감독은 개의치 않았다.

"내가 여기 온 지 한 2년 됐어요. 5년 정도 침체하다가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니 할 수 없어요. 그동안 영양학, 생리학, 심리학 등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사춘기에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선수로 만들려고. 원래 유럽은 이렇게 하고 있잖아요. 안 그러면 문제가 생기니까 절대적으로 해야 한다고요"




프로 산하팀 전성시대다. 공격적인 투자, 체계적인 관리로 양질의 재능을 끌어모았다.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전통', '명문' 등으로 불리던 기존 팀들의 약세가 시작됐다. 대회 성적, 대학 진학, 프로팀 진출 등이 상대적으로 저조해지자 선수 수급도 어려워졌다.

이러한 흐름에도 근근이 버틴 강호가 있다. 연령별 대표팀 선수 배출, 전국 대회 호성적 등이 그 기준이다. 서울권으로 잡았을 땐 보인고, 언남고, 영등포공고 등. 전반기 왕중왕전 상위팀 기준으로는 강릉중앙고, 천안제일고, 장훈고, 신갈고, 수원공고 등이 자리를 지켰다.

가장 크게 어필할 대목은 '성적'이다. 현 실정상 고졸 선수가 프로로 직행할 수 없다면(이런 경우가 절대적이다) 대학을 거쳐야 한다(프로팀에서 수급할 인원이 한정된 탓). 대회 성패가 입시와 직결됐으니 안타깝게도 일단은 이기고 봐야 한다. 하지만 김호 총감독은 시각을 살짝 틀었다. 전후 관계를 바꿔 승리가 따라오도록 하겠다는 것.

"(용인)시장님은 당장 성적보다는 인재를 육성해달라고 해요. 그러니 내가 참 감사하지. 내 취지와도 맞고. 경기에 진다고 해서 화낼 것도 없어요. 질 높은 경기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해요. 개개인 능력이 계속 올라가는지 지켜보는 거지"

"아직 마음에 드는 수준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여기에서 멈추고 싶지는 않아요. 많이 좋아지는 것도 보여요. 최근에는 야간 훈련을 위해 라이트 시설도 설치했고. 2년 후 안정이 되면 틀이 잡힐 겁니다. 그러면 10~20년도 갈 수 있다는 거예요"





1944년생 김호 총감독은 어느덧 70대 중반이다. 20여 년 전 대표팀을 이끌고 미국 월드컵에 다녀왔다. 이후 수원 삼성을 정상 반열에 올려놓고, 대전 시티즌에서 또 다른 묘미를 자아내니 벌써 이렇게 됐다. 일선에서 물러나 조금은 편하게 축구를 즐길 수도 있을 시기. 하지만 육성을 논하던 노감독의 눈은 여전히 빛났다.

"저는 그리 안 봅니다. 책에 없는 것을 경험했으니까 후배들에게 전수도 하고 싶고. 유럽같이 노련한 사람들이 책임도 져야 하고. 그런 대화를 서로 많이 나누는 게 좋다고 봐요. 우리가 나이를 먹었지만 평생 운동장에 있었는데 뭔가는 남기고 가야 하지 않냐는 거지. 난 뒷전에 앉아 욕이나 하고 싶진 않아요"

선수 성장을 끌어내기란 정말 어렵다. '멀리 보라', '참고 기다려라'. 눈앞의 한 경기를 이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 어려운 길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다. 용인축구센터에만 연간 수십 억 원을 들이는 용인시와 더불어 김호 총감독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실로 큰 그림을.

"축구는 단기 개혁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봐요. 원래 시간이 걸려요. 그래도 우리 센터에서 좋은 애들이 좀 나올 겁니다. 프로 산하팀 못지않은 팀 될 겁니다. 그때는 우리나라 축구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사진=대한축구협회, 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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