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축구팬에게 응원하는 팀이 사라진다는 것
입력 : 2017.09.1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엄준호 기자= 축구팬에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여자실업축구 WK리그 이천대교가 전격 해체를 선언했다. 대교그룹은 올해를 끝으로 축구에서 손을 뗀다. 더 이상 축구단을 운영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여자축구연맹에 전달했다.

이천대교는 WK리그에서 전통이 있는 팀이다. 지난 2002년 창단해 경남, 고양을 거쳐 2015년부터 연고지를 이천으로 했다. 통산 2회 우승에 빛나는 강팀이다. 비록 최근에는 인천현대제철의 강세에 고전하고 있지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WK리그의 인기를 책임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비보가 날아들었다. 대교그룹이 축구단을 해체하겠다고 결정한 것. 구단 관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내부회의를 통해 심사숙고한 끝에 더 이상 여자축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최근 대교그룹은 여자축구단과 배드민턴팀을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왔다. 대교그룹은 “떳떳하다”는 입장이지만, 결국 축구단 해체를 선언했다.

이천대교를 열렬히 응원한 팬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지난 3년 간 30회 가량 이천대교 경기를 관전하며 애정을 쏟은 한 팬을 만났다. 서울시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성수 씨의 표정과 말에는 많이 착잡하고 안타까운 심경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많이 안타깝죠. 소식을 들었을 때 당황스러웠어요. 특히나 이번 시즌은 대교가 마케팅 측면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고 생각해요. 차별화 전략을 많이 했어요. ‘후원의 집’도 모집했고, 홈 경기장에서 경품도 많이 내걸었어요. 지난 시즌에는 페이스북도 활성화가 됐고요. 그런데 갑자기 해체를 선언해 아쉽습니다”



아끼는 선수들이 ‘실직’ 당하는 아픔도 함께했다. 임성수 씨는 실업자로 전락할 몇몇 신인선수들을 크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꿈과 목표를 가지고 축구를 직업 삼았지만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 그들의 미래를 우려했다.

“뜬금없이 많은 선수들이 직장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베테랑 선수들이야 다른 팀에서 러브콜이 올 수도 있겠지만, 드래프트로 선발된 신인 같은 경우는 안타깝죠. 절반 정도는 실업자가 될 확률이 높다고 봐요.”

한편으로는 대교그룹이 지금껏 WK리그를 위해 투자한 일에 감사한 마음을 갖기도 했다. 실제 대교그룹은 2009~2010년 WK리그 최초로 메인 스폰서로 두 팔을 걷어붙였다. 공식 대회명칭이 ‘대교눈높이 WK리그’였다. 2011년부터는 IBK기업은행으로 바뀌었다. 대교그룹은 사회 환원을 위해 창단한 여자축구단을 넘어 리그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발전을 도모했다.

그렇기에 더 아쉬운 대목이다. 이천대교가 역사 속으로 묻힌다면 WK리그 발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안천현대제철과 더불어 가장 큰 인기를 자랑하기도 한다. 특히나 ‘원더매치’ 별칭까지 붙은 인천현대제철과의 라이벌전이 없어져 흥행요소가 떨어지게 된다.

“인천현대제철과의 경쟁구도가 사라져서 아쉬워요. 더욱 더 인천현대제철 독주체제가 되겠죠.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WK리그는 인기가 점점 떨어질 겁니다. 인천현대제철이 무패 우승 공약을 다시 내걸 수 있다고 봐요. 저도 당장 내년에 어떤 팀을 응원해야 하나 고민이에요. 경기장을 찾는 횟수도 확실히 적어질 것 같아요.”



일부 선수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 임성수 씨는 뒷얘기도 짤막하게 공개했다. 선수단과 코치진이 언론을 통해 해체 소식을 접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보도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비통하고 슬픈 감정을 숨길 수 없었던 선수들의 상황을 들려줬다.

“해체 소식을 접했을 때 선수들이 가장 먼저 걱정됐어요. 신상우 감독님과 선수들이 기사로 보도를 접한 당일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대요. 이천대교에 오래 몸담은 전민경 선수나 이장미 선수 같은 경우는 급기야 눈물을 터뜨리기까지 했다고 해요. (한숨) 이제는 다음 해체 팀이 나오지 않길 바라야죠. 만약에 제가 다음 응원하게 되는 팀마저 해체한다면, 저는 더 이상 WK리그를 안 보게 될 것 같아요. 전국 곳곳에 있는 다른 대교 팬 분들은 과연 다른 팀을 찾아 응원을 이어갈지, 아니면 WK리그 팬을 그만두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임성수 씨는 착잡한 심경이지만, 앞으로 여자축구단들이 꼭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들도 전했다. 그는 WK리그만의 특수 장점인 ‘선수-팬’ 교감이 더욱 늘어나길 기대했다. 그래서 경기장에 찾아온 팬들이 잊지 못할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길 바랐다.

“선수들이 구단 버스에 올라타기 전에 팬들과 더 교감하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빠르게 정리하고, 버스에 탑승하고 떠나버리거든요. 아쉽다고 생각했어요. 이 점이 개선된다면 팬을 불러오기 더욱 수월할 것 같아요. 또, 구단들이 마케팅 측면에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단을 더욱 홍보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팬들과 교감할 수 있도록요.”

사진=엄준호 기자,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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