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컵 포커스] 조진호 감독이 하늘에서 부산을 바라본 날
입력 : 2017.10.2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부산] 박대성 기자= “하늘을 한 번씩 봤다. 유품 정리를 다 정리했다 생각했는데, 속옷 하나가 있더라. 오늘 경기에서 故 조진호 감독님 속옷을 입고 나왔다. 감독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뛰어주시지 않았나 생각한다.”

부산 아이파크 이승엽 감독 대행이 경기가 끝나고 남긴 멘트다. 부산의 클래식 도장깨기는 FA컵 결승으로 이어졌다. 부산은 조진호 감독이 살아생전 그토록 원했던 FA컵 우승에 한 걸음 다가섰다.

부산은 25일 오후 7시 30분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FA컵 4강 수원 삼성과의 한 판 승부에서 승리했다. 염기훈의 PK골로 수원의 결승 진출이 점쳐졌으나, 경기는 승부차기 접전으로 나아갔고 부산이 결승 티켓을 얻었다.

전반전 경기를 살펴보면 수원이 우세였다. 수원은 염기훈과 박기동을 앞세워 부산 골문을 노렸다. 염기훈은 노련한 경기력으로 부산 수비를 위협했다. 산토스도 최전방과 2선을 오가며 부산 수비 밸런스를 무너트렸다.

부산은 조직적인 수비와 전방 압박으로 수원을 상대했다. 이정협이 방향만 돌려놓는 헤딩으로 수원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고경민과 임상협도 위협적인 움직임으로 부산 공격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수원에 악재가 생겼다. 최성근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를 겪었다. 후반 17분 페널티 킥은 가뭄에 단비같은 셈이었다. 기회를 잡은 수원은 염기훈에게 득점 찬스를 맡겼고 굳게 닫힌 부산의 골망을 흔들었다.

조진호 감독이 하늘에서 바라봤을까. 부산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정협이 후반 32분 강력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조 감독이 신임했고, 아드리아노처럼 만들어주겠다던 다짐이 FA컵 4강전에서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경기는 연장 혈투로 이어졌다. 연장 후반 조나탄의 환상적인 슈팅이 터졌다. 조나탄과 수원 서포터즈가 열광했다. 부산의 골망이 흔들렸지만, VAR이 있었다. 비디오판독시스템 결과 수원의 골은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FA컵 결승 진출의 향방은 승부차기에서 결정됐다. 부산의 실축으로 분위기가 기우는 느낌이었지만, 수원도 득점하지 못했다. 김은선도 부산의 골망을 가르지 못했다. 조 감독이 신임했던 고경민이 마지막 키커로 나서 골망을 흔들었다. 경기는 부산의 승리로 끝났다.

놀라운 결말이었다. 이승엽 감독 대행도 억누르는 감정을 애써 눌렀다. 그는 “(FA컵 결승 진출이 확정되자) 조진호 감독님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복 받쳤지만 최대한 자제했다. 감독님이 함께 계신다는 생각으로 선수들과 기쁨을 나눴다”라고 말했다.

정말 조진호 감독과 함께였다. 이승엽 감독 대행은 “위험한 찬스가 생길 때마다 하늘을 봤다. 감독님이 살아 생전에 같은 방을 썼다. 유품을 정리하는데 속옷이 있더라. 오늘 속옷을 입고 나왔다. 나는 한번도 그러지 않는다. 오늘 만큼은 감독님이 함께 뛰어주시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되뇌었다.

조진호 감독이 남긴 유산. 이정협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수원을) 이겼다는 점이 믿기지 않는다. 오늘 경기 같은 모습을 조진호 감독님께서 원하셨다. 승리를 같이 나누지 못해 너무 아쉽다. 감독님께서 생전에 원했던 결과를 반드시 가져오고 싶다”라고 말했다.

돌아보면 부산에 행운이 많이 따랐던 경기다. 염기훈의 골대 강타와 조나탄의 득점 무효 등이 대표적인 예다. 부산 관계자와 취재진도 “이건 정말 조진호 감독이 하늘에서 도왔다”라고 말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작용한 경기다.

부산 축구 성지인 구덕은 경기 전부터 조진호 감독을 추모했다. 추모 공간을 따로 만들어 조진호 감독의 업적과 선수들의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구덕을 방문한 팬들도 조진호 감독 앞에서 조용히 묵념했다.

조진호 감독이 하늘에서 바라본 풍경은 어땠을까. 조 감독은 생전에 “승격과 FA컵 우승해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에 나가면 정말 꿈만 같다”라고 말했다. 조진호 감독의 못이룬 꿈이 현실이 되고 있다. 부산은 곧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울산 현대와 FA컵 사상 최초의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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