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 ''방패막이 아냐'' 개혁 기대한 홍명보의 한 마디
입력 : 2017.11.1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축구회관] 김진엽 기자= "누구의 방패막이 되는 건 사양하겠다. 모두가 피하려는 자리를 용기 내서 왔다.”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가 첫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한 말이다. 지난 2014년 영웅에서 역적으로 전락한 그가 위기의 한국 축구를 이끌 구원자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 행보에 눈길이 간다.

홍명보 전무는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최영일 부회장, 이임생 기술발전위원장과 함께 선임 소감을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많은 취재진이 찾았다. A매치 기간이 아니면 쉽게 보기 힘든 방송사 카메라들도 홍 전무이사 등을 찍기 위해 모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협회는 얼마 전 개혁의 칼을 꺼내 든 뒤 진행한 사실상 첫 공식 자리였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는 2017년 내내 국가대표팀의 성적 부진과 협회의 불투명한 행정 처리로 인한 각종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달 대표팀의 거듭된 부진과 협회 운영 문제에 고개를 숙이며 인적 쇄신을 약속했다.

홍명보 전무에게 협회 행정을 총괄하도록 한 것은 쇄신의 상징이었다.


새 직책으로 첫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부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그렇게 무난한 질의응답이 끝날 무렵, 홍명보 전무의 한 마디가 이목을 끌었다.

그는 “지도자 생각은 접었다. 제안이 와도 가지 않을 것”이라며 목소리에 힘을 주더니 “감독을 맡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 자리에 온 것은, 한국 축구가 팬들의 많은 질타를 받고 있고 개선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서다. 스스로를 레전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의 방패막이 되는 건 사양하겠다. 모두가 피하려는 자리를 용기 내서 왔다”라고 차근차근 자기 생각을 내뱉었다.

‘방패막이’라는 단어가 귀에 강하게 박혔다. 실제 이번 인사 과정에서 협회가 홍명보 전무나 유스정책을 총괄하는 박지성 유스전략본부장같은 축구 레전드들을 내세워 방패막이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따랐다.

그러나 홍 전무이사의 생각은 확고했다. 다른 이가 아닌 오로지 자신만의 신념으로 이 직책을 맡은 거라고 밝혔다. 당차면서도 미묘하게 긴장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4년 전 갑작스레 A대표팀 지휘봉을 건네 받은 뒤 영웅에서 역적으로 추락했던 홍명보 전무는 지금의 한국 축구 실정과 닮았다. 명성은 과거에만 남았을 뿐, 팬들의 불신만 남았다. 그게 무서워 숨을 수도 있었지만 다른 이들이 회피하는 직책을 맡으며 개혁의 신호탄을 자처했다.

“협회가 밖에서도 긍정적으로 비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며 수뇌부가 지녀야 할 책임감도 잊지 않았다.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쓴맛 단맛을 다 봤던 홍 전무이사의 다짐은 그간 말뿐이던 변화와는 다른 진짜 개혁을 기대하게 한다.

지난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환한 미소로 축구 팬들을 설레게 했던 그가 이번엔 행정가로서 그때의 감동을 재현할 수 있을까.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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