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전주대 축구는 강하다' 그 비결을 아시나요?
입력 : 2017.11.2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홍의택 기자= "전력 분석이란 게 전반 마치면 바로 나와 후반에 반영할 정도는 돼야 하는데...". 박경훈 현 성남FC 감독이 전주대 축구학과 교수 재직 시절 했던 말이다. 아쉬운 실정을 꼬집으며 이상을 논했다.

지난해 청강차 전주대에 들렀을 때다. 박경훈 감독이 <축구 전술과 분석> 수업을 맡는다는 얘길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 개인적으로 갈증이 컸다.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체계적 교육은 사실상 전무하다. 그간 여러 지도자, 관계자 등을 통해 알음알음 흡수했으나 정형화된 무언가가 절실했다. 축구학과라는 일련의 틀을 갖춘 곳에서는 어떻게 지도할까 싶었다.

박경훈 감독은 한계를 털어놨다. "축구학과라고 해서 무작정 깊게 들어갈 수가 없다. 다들 분석관을 희망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고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학과 내 뜻 맞는 학생들을 모아 전담 분석팀을 꾸렸다. K리그는 물론 유로 2016도 이들 손을 탔다. 포털사이트를 통해 분석 결과물이 나왔다.

동아리 수준이 아니었다. 전주대가 2017 U리그(대학리그) 왕중왕전 결승에 올라간 것도 그랬다. 감독의 지도력과 선수단의 땀, 이 토대를 분석팀이 받쳤다. 깊이 관여해 서포트했다. 26년째 전주대를 맡고 있는 정진혁 감독도 그 존재를 인정했을 정도다.




K리그나 유럽 축구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인터넷만 접속해도 풀영상 및 하이라이트가 한 보따리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아마 축구는 직접 찍지 않는다면 영상 확인조차 어렵다(최근에는 제한적으로나마 중계 실시). 이마저도 시공간적 한계가 따르는 일. 분석팀은 왕중왕전 들어 이 대목부터 해결했다. 토너먼트 대진에 따라 영상을 전부 확보했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촬영에 그치지 않았다. 다음 만날 상대를 분석하고, 전주대의 전 경기를 복기했다. 그렇게 기세를 탔다. 한양대, 경희대를 누르더니 상지대, 단국대까지 제압했다. 사실상 대진 운 없이 전통 명문에 신흥 강호를 연파했다. 결승전까지는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 준결승 이후 주어진 시간은 5일. 고려대와 관련한 영상은 물론 각종 정보를 끌어모았다.

더 절박하게 매달렸다. 현역 학생들이 모인 분석팀이 자발적으로 밤을 새가며 준비했다. 여기엔 여러 인물의 도움이 스며 있었다. 분석의 기본과 개념을 잡아둔 박경훈 감독의 유산에 맞춰 단계를 밟았다. 실제 K리그 클럽에서 분석관 임무를 맡았던 팀원 역시 힘을 보탰다. 더욱이 소속원 대부분이 현장 경험을 쌓아뒀으니 이만하면 '아마추어' 꼬리표 다는 것도 실례다.

문제는 실제 축구부에서 이를 얼마나 반영하느냐는 것. 아직도 축구계 문은 많이 닫힌 편이다. '비선수 출신이 무슨 축구냐'는 시선이 팽배한 가운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짚기도 한다'는 목소리가 간간이 나오는 추세다. 전주대 코칭스태프는 후자였다. 직접 손 쓸 수 없는 부분은 분석팀에 기댔다. 정진혁 감독도, 한종원 코치도 적극 수용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얼마나 세밀하게, 얼마나 유용하게 분석했을까.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팀'과 '선수 개개인'. 분석팀은 고려대의 직선 움직임에 주목했다. 사이드를 통한 공격 빈도가 그리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순간 중원이 헐거워지는 현상도 끄집어냈다. 박상혁-공민혁, 박상혁-안은산 등이 앞에 서고 김종철이 홀로 지탱하는 게 고려대 중원. 빠른 반대 전환 시 비집고 들어갈 틈이 드러난다는 걸 발견했다.

개인도 파헤쳤다. 실제 축구를 하다 그만둔 팀원의 도움이 컸다. "A는 압박에 처하면 왼발 컨트롤 능력이 떨어진다"는 식이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루이스 피구는 조급할수록 왼쪽 드리블을 고집한다는 걸 간파한 송종국의 사례가 겹쳐 보였다. 과거 박경훈 감독이 사석에서 했던 말도 떠올랐다. 제자 임종은(전북 현대)의 사례를 들며 "전방 압박에 취약한 수비수였기에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시절 이를 수시로 노렸다"는 것. 그가 강조한 디테일을 분석팀도 그대로 따랐다.

전주대는 고려대 선수 특성을 이미 다 알고 운동장에 들어섰다. 분석팀은 조영욱이 볼을 잡으면 이를 내준 뒤 가속을 붙인다는 특유의 스타일을 정리해 전달했다. 안은산, 박상혁, 김종철, 신재원 등도 마찬가지다. 측면 수비 진영도 빼놓지 않았다. 이번 대회 들어 해당 포지션을 맡았던 모 선수를 공략 포인트로 잡았다. "발빠른 김경민으로 그 지점을 많이 파고들자"는 메시지를 건넸다.

작전은 성공했다. "경기 시작 15분 안에 골 넣으면 승산이 있다"던 게 그대로 맞았다. 상대를 정신없이 옥죈 전주대가 전반 11분 박성우의 골로 웃었다. 미처 제어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골대를 총 세 차례 때렸다. 수비수 볼 처리가 자책골이 된 아픈 변수도 닥쳤다. 상대가 큰 경기 경험이 많았다는 점 또한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전주대는 준우승에 그쳤다. 8년 전 결승에서 좌절했던 때와 다르지 않았다. 선제골을 뽑고 두 골을 얻어맞았다. 다시 동점을 만들었으나 마지막 순간 불운하게 넘어졌다. 학교 측은 공식 SNS를 통해 "고생했다, 고맙다, 사랑한다"며 위로했다. 일반 학생들도 격려 댓글을 남겼다. 전주대 선수단과 분석팀이 학교를 하나로 묶었다.

김동현 분석팀장(축구학과 3학년)도 "정말 잘했는데 결과가 안 따라왔네요"라며 허탈해했다. "평소 같이 수업도 듣던 친구들이 결승까지 가줬다는 게 고마웠어요. 전주대 축구에 대한 자부심은 있어도 아직 더 알려야 하니까요"라던 그는"실없는 농담도 하던 친구들이 저희 분석 토대로 잘해주니 얼마나 뿌듯해요. 변수가 많았지만 이래서 축구가 또 재밌는 거 아닌가 싶고요"라며 소감을 전했다.

분석팀은 총 14명으로 구성됐다. 모두가 분석 관련 직종을 꿈꾸는 건 아니다. 기자, 지도자 등을 희망하면서 축구 내공을 쌓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선수단도 올 한해 괜찮은 성과를 냈다. 왕중왕전 준우승, 춘계연맹전 8강 등에 올랐다. K리그 클래식 최강팀 포함 여러 프로 선수를 배출하며 더 큰 발전을 그렸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전주대학교 축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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