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르포] '황소' 황희찬은 레드'불'과 무르익고 있더라
입력 : 2018.04.2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김진엽 객원기자= 가수의 운명은 노래 제목을 따라간다는 속설이 있다. 축구 선수도 팀명을 따라간다는 주장은 어떨까.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의 간판 공격수로 발돋움한 황희찬(22)이 오스트리아에서 몸소 증명하고 있다.

지난 22일(한국시간) 2017/2018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31라운드가 열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레드불 아레나. 황소라는 별명에 걸맞게 저돌적으로 무르익고 있던 황희찬을 만났다.

오스트리아 서부에 위치한 잘츠부르크는 천재 음악가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고향이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 제대로 보존된 바로크 건축의 다수 작품 덕에 세계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도시다. 그리고 또 하나,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3연패를 앞둔 자국 강호 레드불 잘츠부르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자국 리그 1위 팀이 있는 곳이란 걸 크게 느끼진 못하지만 경기 당일은 다르다. 경기장행 버스는 잘츠부르크 응원 아이템으로 몸을 두른 사람으로 가득찬다. 중앙역에서 약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잘츠부르크의 안방 레드불 아레나는 약 3만 2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웅장함을 뽐내진 않지만, 알짜 구단 공식 스토어부터 팬 파크, VIP 전용 식당 등 갖출 건 다 갖춘 경기장이다.



여기저기서 황희찬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구단 사무국을 방문했을 때부터 한국 선수가 뛰고 있는 구단이란 걸 체감할 수 있다. 취재증 발급 전까지 총 3명을 만났는데, 이들 모두 “(황)희찬을 보러온 것이냐”라며 먼저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이른바 '국뽕'은 기자석에 앉았을 땐 정점을 찍었다. 경기 당일 관중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제작되는 SC 라인도르프 알데타흐전 데일리 매거진 표지 모델로 황희찬이 등장해서였다.

안타깝게도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앞서 인사를 나누었던 구단 직원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다가와 “오늘 체력 안배를 이유로 마르코 로즈 감독이 황희찬을 선발에서 제외했다.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할 것이고, 아마 후반전에나 나올 것”이라고 귀띔했기 때문.

황희찬의 맹활약에 힘입어 대승하는 잘츠부르크를 바랐던 축구팬으로서 아쉬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잘츠부르크는 전반 막바지 잠시 집중력을 흩트린 것 외엔 경기 시작 50분 동안 상대를 압도하며 두 골 차로 달아났다. 출전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했다.

다행히 로즈 감독은 확실한 승기를 잡기 위해 수비 강화가 아닌 공격 변화를 택했다. 후반 11분 미나미노 타쿠미를 빼고 황희찬을 투입했다. 황희찬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그를 환호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황희찬이 결정적인 장면으로 응원에 보답했다. 후반 13분 골키퍼와 단독 찬스를 만들며 원정 서포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비록 골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순간적인 움직임이 돋보였다. 잔여 시간 내내 특유의 돌파력과 활동량, 스피드 등을 뽐냈고, 경기 종료 직전에는 팀의 세 번째 득점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부상을 막 턴 터라 100% 몸 상태는 아니었지만, 끝까지 제 몫을 다하려는 우직한 경기력에서 구단 이름인 레드’불(Bull)'과 ‘황소’라는 별명을 가진 황희찬의 합이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스레 경기 시작 전 구단 직원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홍보팀 토비아스 뮐버르는 “황희찬은 좋은 공격수라고 생각한다. 오스트리아 리그 내에서 훌륭한 선수로 평가받는다”라며 “오는 여름에 독일이나 잉글랜드로 이적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리그, 팀을 위해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꾸준히 발전하는 선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론 떠나길 바란다는 건 아니다. 잘츠부르크에 잔류한다면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재치 있는 농담으로 소속팀 선수를 극찬했다.

칭찬세례는 내부에서만 나온 게 아니었다. 한 아저씨 팬은 믹스트존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뒤, 황희찬에게 자신이 데려온 세 명의 소년 팬들과의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부끄럽다며 자기소개를 거부한 그에게 황희찬을 아느냐고 질문하자 “굿 플레이어(Good Player)”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낯선 타지에서 성공이라는 단어를 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걸 이제 막 소년의 티를 벗은 황희찬이 해내고 있었다. 가파르게 크고 있는 빨간 황소들 속에서 한국 출신 황소 역시 함께 성장 중이다.

사진=김진엽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