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남 바보 김영욱, “갈 수 없었고, 이대로 못 간다”
입력 : 2018.09.0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이현민 기자= 풋풋했던 시절은 지나고, 어느덧 20대 후반이 다됐다. 프로 9년 차, 줄곧 전남 드래곤즈에서만 뛰었다. 김영욱(27)은 그 어렵다는 ‘원클럽맨’이다. 9월 1일 상주 상무전에서 통산 2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더욱 값졌다. 시즌 첫 연승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고작 2연승이지만, 최근 팀이 처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4일 수화기 너머 들리는 김영욱의 목소리는 밝았다. 이제야 조금 제자리를 찾아간 듯한, 그래도 “에이, 아직 멀었어요. 주장으로 책임감도 크고, 더 올라가야죠,”

전남은 지난해보다 더욱 힘든 사투를 벌이고 있다. 누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했는가 싶을 정도로 처참했다. 유상철 감독 체제에서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나섰지만, 용이 꿈틀대다 말았다. 김인완 전력강화실장을 감독으로 올리는 강수를 뒀다. 이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됐다.

김영욱은 최근 달라진 분위기는 전했다. “포항 스틸러스, 상주에 연달아 승리하면서 자신감이 붙었어요. 지는 버릇을 떨쳤다고 할까요. 이기는 습관을 기르는 단계죠. 우리 선수들은 분명 능력이 있어요. 그런데 이겨야 하는 경기를 놓치고, 지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부담이 늘었던 것 같아요. 정말 위기였죠. 물론 지금도 안심할 수 없지만. 감독님이 바뀌고 나서 첫 경기였던 수원 삼성(8월 19일)전을 잡고 나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 4경기에서 3승 1패.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을 제외하고 다 이겼다. 주장 김영욱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똘똘 뭉쳐 난관을 극복해가고 있다. 마음가짐, 훈련 태도, 각자 포지션 이해, 철저한 분석, 이를 통한 훈련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김영욱은 원래 포지션인 중앙을 찾아갔다. 이제야 그라운드 안팎에서 주장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상대가 누구든 늘 같은 마음으로 경기를 준비해요. 만약, 분석하고 훈련한 대로 상대가 안 나오더라도 선수들과 소통하며 시시각각 변화는 상황에 잘 대응하고 있어요. 축구라는 게 그렇잖아요. ‘흐름이 중요하니까 평점심을 유지하자’고 강조했죠. 유리하다고 자만하거나 불리하다고 주눅들 필요 없이. 경험 있는 선수들이 조언하되 어린 선수들 이야기도 새겨듣고. 계속 소통하니 달라졌어요. 코칭스태프도 부담을 안 주고 잘 이끌어주시죠. 개인이 가진 걸 운동장에서 발휘할 수 있게. 일단, 마음이 편해요. 요즘은.”



김영욱은 중앙→측면→중앙, 포지션 이동을 언급했다. 더불어 골잡이 부재, 이를 어떻게 타개해갈 것인가에 관해서도 속 시원히 털어놨다.

“유상철 감독님이 아마 저의 다른 모습을 보셨을 거로 생각해요. 중앙도 좋지만, 측면에서 플레이할 때 더 낫거나 뭔가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 아니었을까요. 시즌 초, 중반까지 부상자가 정말 많았어요. 선수 기용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죠. 포지션마다 장점이 있어요. 측면에 서면 위쪽에서 더 강하게 압박하고, 수비 가담은 필수죠. 스피드도 따라줘야 하고요. 제가 위에서 조금 더 투쟁적으로 뛰고 이끌어줬어야 했는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결과(계속된 무승)라 봐요. 최근에 다시 미드필더로 복귀하니 심적으로 안정됐어요. 중앙에서 균형을 잡고,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죠. 위험 상황에서 끊어주기도 하고. 제가 허리에 있으니 후배들도 믿고 뛰는 것 같아요. 항상 이야기해요. ‘잘 막아볼 테니 마음껏 해봐’라고. 감독님이 바뀌면서 팀이 달라진 것보다 선수들 스스로 위기를 느끼고 슬기롭게 헤쳐 나가고 있다고 봐요.”

“공격수 같은 경우 확실한 원톱이 없다 보니 힘든 게 사실이죠. 다른 팀은 마무리해줄 선수가 있잖아요. 해당 포지션에 있어야 할 선수가 다치고,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하는데, 빈자리를 채우고 또 채우고. 미드필더가 공격수로 올라가고. 쓸 카드가 많이 없어서 부담이 크긴 해요. 우리 외국인 선수들(마쎄도, 완델손)과 이야기했어요. 짐을 내려 놓고 편하게 하라고. 최근 부상자들도 복귀하면서 힘을 받고 있어요. 개인 역량이 서로 시너지를 내고, 부족한 점을 하나씩 채워가고 있어요.”

김영욱의 말대로 전남은 반전 계기를 마련했지만, 아직 만족할 수 없다. 광양의 축구 열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동안 전남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적 없지만, 이토록 무기력했던 적 또한 없었다. 그래서 그의 어깨가 무겁다.

“프로라면 관중이 많은 경기장에서 뛰고 싶죠. 유소년 시절부터 항상 꿈꿨었거든요. 아마 최근 몇 년간 계속 흐름이 좋지 않다 보니 팬들 발길도 많이 끊어졌어요. 팬들이 안 오시는 건 제 책임, 우리 책임이라고 봐요. 결과가 좋든 안 좋든 훈련장 경기장에 오셔서 일부 팬들께서 ‘결과보다 선수들이 마음을 안 다쳤으면 좋겠다’고 직접 응원해주시고, 챙겨주시고. 단 한 분이라도 목소리를 내어주시니 감사하죠. 소중함 잊지 말고 단 얼마의 시간이 주어져도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뿐이에요. 상주전에서 200경기라는 숫자를 받아든 순간 더 뼈저리게 느꼈죠. 한 팀에서 이렇게 많이 뛸 수 있었던 건 큰 영광이에요. 1년 차 때 마음가짐으로 쭉 가고 싶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프로라면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올해 잘해야 내년도 있고. 저도 슬럼프가 있었죠. 어떤 팬이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미안하고 고마운 선수’라고요.”



사실, 김영욱은 몇 번이나 전남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게다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병역에서 자유로워졌다. 돈만 쫓았다면 이미 K리그에 없었을 텐데. 스스로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지도자라면 욕심 낼 만한 미드필더가 바로 김영욱이다. 그가 이토록 전남에 목을 메는 이유는 뭘까.

“솔직히 2013, 2014년 초에 정체기가 왔어요. 해외로 나간 (윤)석영이 형, (지)동원이가 부럽기도 했고, 더 성장하고 싶은데 뚜렷한 목표가 없었죠. 다시 마음먹었죠. 이대로는 안 된다고. 아시안게임 멤버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잘 해내면 축구 인생의 전환점이 올 거라고. 금메달을 따고 난 직후 몇 차례 해외 진출 기회가 왔어요. 꿈을 이룰 기회였어요. 그런데 팀이 매번 힘든 거예요. 그래서 고민했죠. ‘전남은 나를 키워줬는데, 나는 전남을 위해 뭘 했을까’라고. 심지어 지난해에도 이적 제의가 있었어요. 구단과 상의해서 남았어요. 지금도 해외 진출 욕심은 있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전남은 제게 아픈 손가락? 팀을 보고 팬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못 가겠더라고요.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못가죠(웃음).

김영욱은 전남에서 벌써 200경기를 채웠다. 김태영(250경기), 노상래(219경기), 김도근(206경기) 3명뿐이 레전드 길을 걷고 있다. 김영욱은 ‘아직 멀었다’며 한사코 비교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남은 시즌 기대에 부응할 것을 다짐했다.

“세 분 모두 저의 선배이자 스승이시죠. 함께 거론되는 건 영광인데, 제가 이분들과 비교될 만큼 업적을 남겼거나 아우라가 없잖아요. 부흥기를 이끈 주역들이신데(웃음). 선수라면 기록(최다 출전)을 넘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성적도 내고 더 잘해야죠. 나중에 레전드라 불려도 부끄럽지 않게. 일단, 이번 시즌에는 매 경기 승점 쌓고 이기도록 노력하는 게 우선이에요. 우리만의 스타일로 승부해야죠. 함께 경쟁하는 팀 신경쓸 겨를 없어요. 시작도 좋았으니 끝도 좋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전남 드래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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