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재 ''독일 2부에 저도 있어요''...함부르크와 운명적 만남
입력 : 2018.12.1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홍의택 기자= 기회는 불쑥 찾아왔다. 그것도 3년간 몸담으며 투쟁했던 함부르크SV와 운명적 만남이었다.

왼쪽 측면 수비수 서영재(23, MSV뒤스부르크)의 유럽 도전기는 2015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양대 2학년생이었던 당시, 유망한 측면 수비수를 찾던 함부르크 레이더망에 잡혔다. 흐름은 괜찮았다. 1군 등 번호를 받고 훈련을 겸했다. 하지만 본인을 영입한 단장이 자리를 잃으면서 더는 지지를 받지 못했다. 2군(4부리그) 경기만 뛰며 견디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외면받은 건 아니었다. 이 선수를 눈여겨본 2부리그 네다섯 팀이 손을 내밀었다. 마침 함부르크도 2부리그로 강등된 마당에 본인을 원하는 또 다른 팀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좋은 조건으로 접근한 K리그 팀도 있었으나, 서영재는 "지금까지 고생했는데 여기서 답을 내고 싶다"며 고사했다.

그랬던 서영재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15일(한국시간) 2018/2019 독일 분데스리가2 17라운드 함부르크전. 독일 생활 3년 반 만에 치른 데뷔전이었다. 그토록 갈망했던 순간이 덜컥 왔건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아무렇지 않네요"라며 담담해 했다. 장난기 넘치던 성격도 악쓰며 살아남으려던 환경에서 조금씩 변해갔다. 축구선수 이전에 한 사람이 바뀌어 갈 만큼 녹록한 여정이 아니었다.




■ 서영재는 지난여름 뒤스부르크 유니폼을 입었다. 벤치에도 몇 차례 앉으며 데뷔전 기회를 틈틈이 엿봤다. 다만 포지션 경쟁자이자 주장인 케빈 볼체의 벽이 높았다. 인고의 시간 속 코치진에 "나는 대체 언제 뛰냐" 따지기도 했지만 "볼체가 먼저라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그러던 중 운명처럼 함부르크전에 출격했다.

"사실 주장이 옐로카드 5장을 받아서 저한테도 기회가 온 거죠. 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경기 당일 오전까지도 말을 안 해주더라고요. 경기력은 괜찮았던 거 같아요. 실점 과정에서 제가 파울 항의하고 동료들이 커버하는 거였는데 소통이 잘 안 된 것 말고는 무난했어요. 더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오랜만에 나가니 60분부터 쥐까지 나서···. 그거 숨기고 풀타임 뛰었거든요"

"데뷔하면 되게 기분 좋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그냥 그래요. 함부르크에서 3년을 참았고 여기서도 6개월 만에 뛰었잖아요. 그런데 함부르크라니. 뭔가 되게 묵직했어요. 새로 바뀐 함부르크 코치진 외에는 팀 매니저, 스태프, 그리고 선수들도 다 알았거든요. 홈에서 무조건 이겼어야 했는데 마음처럼 안 돼 아쉽죠. 함부르크가 잘하더라고요"

■ 기다리는 게 쉽지만은 않다. 당차게 도전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한창 뛰면서 성장할 시기를 놓쳐 이도 저도 아닌 선수가 돼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서영재도 많이 치였다. 소외감을 넘어 비참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남들이 "고집부리지 말라"던 바로 그 '고집'이 이 선수의 데뷔전을 만들었다.

"원래 데뷔하면 기사도 좀 뜨고 하던데 황희찬한테 다 가려서. (웃음) 오늘에서야 드디어 뛰었는데 감독님 인터뷰 내용 보니 '잘해줬다'는 식이더라고요. 팬들도 '이제 경기는 세오(SEO)가 뛰어야 한다'고 하고요. 주장이 이번 시즌 살짝 안 좋았던 것도 있는데, 그래도 보람 있고 안심도 됐어요.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요"

"한국시각으로 새벽 경기라 제가 뛰는 거 본 분들 거의 안 계실 거예요. 함부르크 3년 있는 동안 '1군 훈련했다', '1군 벤치 앉았다'는 이런 말만 반복되니 주변 사람들도 기대하다가 지친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이후로는 경기 관련해 아예 연락을 안했고요. 제가 항상 긍정적이라 조금만 과묵해져도 '무슨 일 있냐'는 말을 듣곤 했는데, 저도 사람인지라 어떻게 안 지쳤겠어요"

■ 독일 2부가 갑자기 뜨거워졌다. VfL보훔 이청용, 홀슈타인 킬 이재성, 함부르크 황희찬 등. 갓 발을 내디딘 서영재도 그 틈바구니에서 애쓰고 있다. 본인 말대로 아직 한 경기를 뛴 데 불과하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나, 반대로 크게 잘될 수도 있다. 지난 3년 반 동안 터득한 생존법으로 더 큰 그림을 그린다.

"한국에 있는 분들께 아쉬웠던 적도 있어요. 하나 같이 '들어와서 축구 하면 안 되냐'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이재성, 황희찬도 힘들게 하고 있는데 네가 되겠냐. 경기 못 뛸 거니까 돌아오라'고요.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정재권 한양대 감독님만이 '이 악물고 열심히 해봐라', '버티면 좋은 시간 온다'고 말씀해주셨죠. 사실 내용만 보면 별 얘기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게 진짜 힘이 됐어요. 저를 믿어주는 사람이 한 분이라도 계시는구나 싶었죠"

"어떻게든 유럽에 남으려 했던 이유요? 무엇보다 이런 데서 경쟁하면 축구 실력이 안 늘고 싶어도 안 늘 수가 없어요.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으니까 제 실력도 오를 거라고 보거든요. 또, 팬들이 응원해주는 축구 문화나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보통 경기 끝나고 2층 VIP룸에서 식사하는데요. 저는 그동안 못 뛰니 아는 척도 안 해줬어요. 그런데 오늘은 황희찬, 사카이 고토쿠랑 대화하면서 뒤늦게 나오는데 수십 명이 축하해주는 거예요"

"얼마 전에 이재성 형이 원정 경기 때문에 뒤스부르크에 왔었거든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좋은 얘기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죠. 이청용 선수가 있는 보훔은 여기서 20분이면 가요. 그런데 아직 서로 모르는 사이라···. 훌륭한 선배 알아두면 그만큼 더 배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사진=MSV뒤스부르크, 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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