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억'보다 빛난 '16년'...홍명보가 바꾼 축구문화
입력 : 2018.12.2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안암] 서재원 기자= "내 부와 명예는 축구에서 얻었다. 축구를 통해 다시 돌려드리고 싶다."

홍명보 이사장(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의 16년 변치 않은 헌신은 한국 축구 문화를 바꿨다.

홍명보장학재단은 22일 오후 2시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 2018'을 진행했다. K리그 올스타와 2002 월드컵 레전드의 대결에서, 지소연이 결승골을 터트린 K리그 올스타 팀의 10-9 승리로 종료됐다.

홍명보 자선축구대회가 16년 동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홍명보의 이름을 건 자선축구대회는 개최되지 않을 예정이다. 홍명보 이사장은 "어느덧 16년이 됐다. 지금까지 참여해 주시고, 도움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라고 올해를 끝으로 더 이상 자선축구대회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16년의 시작은 작은 마음에서 비롯됐다.홍명보 이사장이 미국 무대에서 활동하던 당시, 소아암 환자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2003년 당시에도 미국에서는 스포츠스타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활발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문화 자체가 생소했고, 시도조차 하지 못하던 실정이었다.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정확히 2003년 12월 21일, 고양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첫 대회는 2002 월드컵으로 달아오른 축구 붐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1등석 2만원, 2등석 1만원 등 적지 않은 입장료에도 수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메웠고, 입장료와 선수용품 경매, 후원금 등을 통해 모은 2억 2천만원을 전액 소아암 어린이들에게 전달했다.

물론 다음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축구 인기가 추락할 때는 자선축구대회에 대한 관심도 함께 떨어졌다. 이는 곧 경기장 섭외, 스폰서 유치 문제로 연결됐다. 날이 갈수록 스폰서 금액과 후원금이 줄어들었고, 대회 유치 자체가 위기였던 적이 매년 반복됐다.



홍명보 이사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선수와 감독, 협회의 전무 등 본인의 직업과 직책이 변화함에도 자선축구대회는 끊임없이 계속됐다. 이는 그가 중국 무대에 진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도 "어려웠을 때도 있었다.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책임감이 컸다. 멈추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쉽게 안됐다"라고 꾸준하게 대회를 개최한 원동력에 대해 밝힌 바 있다.

그렇게 16년을 달려왔다. 2003년 이후 매년 다양한 형태로 자선축구대회가 개최됐고, 복지시설 및 불우아동에 대한 지원, 지자체의 시설 및 행정 지원 등을 통한 자선기금의 확대로 총 22억 8천만원의 기금이 조성돼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됐다. 이 기금을 통해 여러 소아암 어린이들이 완치 판정을 받기도 했다. 때로는 청년실업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됐다.

사실 '22억 8천만원'이란 어마어마한 금액보다 '16년'의 시간이 갖는 의미가 더 컸다. 홍명보 전무의 꾸준한 노력과 헌신 끝에 자선축구대회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염기훈과 이근호가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자선경기를 개최하기도 했다. 홍명보 이사장이 개척한 길을 후배들이 뒤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이상 홍명보 자선축구대회가 열리지 않을 것도 그 이유다. 홍 이사장은 "축구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후배들의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해지는 시점에서 이제는 내가 뒤로 빠져줘야 할 적기라고 판단했다"며 "자선축구대회는 멈추지만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은 지속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하지만 다음에 할 때는 제 이름이 아니더라도 다른 선배나 후배의 이름으로 열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저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 (2003년 12월 21일 방송 인터뷰)

15년 전 홍명보 이사장은 자신의 첫 자선축구대회를 개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열리는 또 다른 대회.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까지 16년의 시간이 흘렀고, 홍 이사장의 변치 않은 헌신은 한국 축구 문화를 변화시키고, 발전시켰다.

사진=스포탈코리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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