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호를 울린...'축구선수 어머니'로 산다는 건
입력 : 2019.06.1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상암] 홍의택 기자= "제 인생은 뭐였을까요. 아들 잘되기만 바라보며 달려왔는데". 어느 축구선수 모친의 말이었다. 그 가정만 그랬던 건 아니다. 백승호가 왈칵 눈물을 쏟은 대목도 "엄마"에서였다.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전. 백승호는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이젠 힘내란 말도 지겨워요"라며 답답해했던, 참고 또 참아온 한을 78분 플레이로 풀어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백승호가 기술, 전술 면에서 진가를 발휘했다"고 엄지를 내보였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백승호는 담담했다. 감정적으로 쉬이 흥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차분히 소감을 전하고 앞으로 각오를 내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그렁그렁했다. "엄마께 선발로 나갈 거라고 전화하니 너무 기쁘다며 우시더라". 운동장에서 대차게 싸우는 이 청년도 집에서는 또 한없이 어린 막내였다. "엄마한테 미안해서"란 한 마디엔 참 많은 게 담겨 있었다.




백승호는 한국 나이 열넷에 스페인으로 떠났다. 짧게나마 스페인어를 익혀 갔지만, 현지 적응 문제는 또 달랐다. 한국에 적을 둔 부친이 몇 달 간격으로 양국을 오가며 버팀목이 된 가운데, 모친이 옆에 붙어 뒷바라지한 게 올해로 10년째다. 대동초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간은 더욱더 길다.

전 세계에서 볼 좀 찬다는 아이들이 몰려든 곳. 바르셀로나에서 살아남기란 상상 이상으로 버거운 일이었다. 선수도, 가족도 "타지에서 축구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시작했다"고. 다시 하라면 못할 그 일을 백승호는 모친과 지지고 볶으며 견뎌 왔다. 특히 구단 내부 문제, 에이전트 문제 등 축구 외적으로 설움을 겪었을 때는 더했다. 서로 어르고 달래며 가시밭길을 돌파해야 했다.

바르셀로나 훈련장 주앙 감페르 출석률로 치면 백승호 모친만한 외부인이 없었다. 수년 전 훈련 참관 차 그곳에 출입했을 때, 관계자들이 먼저 그를 알아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과거 간호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선수 몸 상태를 간단하게나마 체크하는 것도 모친의 몫이었다. 또, "우리 엄마가 못하는 요리가 없어요"라던 백승호의 자랑도 떠오른다. 키가 안 커 걱정이었던 아들을 늘 잘 먹이려 애 썼다. 둘은 지로나 생활도 동행했다. 성인이 된 백승호가 "엄마, 이제는 한국 들어가 쉬세요"라고 해도 자리를 지켰다.

개인적으로 "축구선수는 만들어진다"는 말을 믿는다. 지금껏 성장기 선수, 이들을 둘러싼 가정을 수없이 지켜보며 내린 답이다. '극성'이란 시선도 있지만, 그토록 매달리지 않고선 다다르기 어려운 경지다. 손흥민과 그 부친이 그랬던 것처럼, '축구선수'는 개개인이 흘리는 피땀과 주변에서 쏟는 정성으로 이뤄진다. 빛만 보고 쫓기엔 그 이면의 그림자가 너무도 짙다. 완주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페이스 메이커가 돼줘야만 한다.

국내는 최근 고교 6월 대회를 마쳤다. 현장을 돌다보면 '우리 아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란 근심 어린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두손 꼭 모으고 기도하는 어머니, 태연한 척 안절부절못하는 아버지. 비단 백승호뿐 아니라 대부분 선수들이 부모 얘기에 애달파하는 이유다. 바늘구멍보다 좁은 통로, 때로는 잔혹하기까지 한 여정이다. 이제 갓 데뷔전을 치른 데 불과하나, 백승호가 흘린 눈물은 이 길을 함께 걷는 이들에겐 꽤 묵직한 메시지였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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