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영 칼럼] 열악한 여자축구 인프라, 상무팀 탄생 비화
입력 : 2019.06.2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필자는 대한축구협회 기획실 출신으로, 일반 기업 경영 후 다시 축구계로 돌아와 프로축구단 마케팅 총괄을 경험했습니다. 현재 축구산업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칼럼을 통해, 10년 이상 축구계에 몸담으며 겪은 한국 축구의 근원적 부분과 나아갈 방향을 팬들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현재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여자 월드컵을 야심차게 밀어주고 있다. 아쉽게도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여자축구대표팀은 기대 이하의 성적인 3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여자월드컵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나라 여자축구의 현실을 되짚어보기 위해서다. 이번 화에서는 상무여자축구팀(현재 보은상무) 창단에 관한 ‘썰’을 풀겠다.



대한축구협회 기획실 근무 당시 여자축구 업무를 맡게 됐는데, 당시 막내인데다 초중고 주말리그 등의 카테고리보다 발전이 늦어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여자축구 개발을 맡는 건 당연했다.

축구협회 기획실은 여러 기관과 연결된 스페셜 프로젝트를 늘 다뤘다. 그 중에서 국가 중앙부처와 관련된 일이 많았다. 특히 상무여자축구팀 창단은 ‘문화체육부-국방부-기획재정부-여자축구연맹’으로 연결된 업무였다.

축구협회는 당시 여자축구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여자축구연맹과 논의 끝에 초-중-고-대학 등 여자 축구팀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고교 및 대학 이후에 직업으로 여자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을 넓혀 줘야 한다는 취지로 실업 축구팀을 창단하자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이런 배경으로 상무여자축구단 창단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실업 축구팀이 창단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나 기업 등이 나타나야 한다. 기업은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지자체 중 부산시체육회가 운영비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국군체육부대와 협력하며 부산상무여자축구팀 창단을 계획하게 됐다.

국군체육부대는 여자부사관 TO를 신설, 여성 단기 부사관으로 여자축구선수들을 확보, 코칭스태프 비용은 부산시체육회가 부담하는 식이었다. 더불어, 창단을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관해 관계기관들과 협의 했다. 그 결과 2002 한일 월드컵 잉여금 일부로 숙소 자금을 지원하는데 합의했다.

2002 월드컵 잉여금은 문화체육관광부에 귀속돼있었다. 사단법인인 대한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에 속한 단체종목이다. 이로 인해 정부 관련 업무는 문체부와 진행을 해왔고, 2002 월드컵 모든 사항은 문체부에 귀속이 됐다. 그리하여 문체부-국방부-대한축구협회의 합의로 잉여금 중 일부인 20억 원을 부산 상무여자축구단 숙소 건축비로 지원하게 됐다.

당시 국군체육부대는 성남시와 서울이 접경하는 지역에 위치했다. 군의 여러 개혁 사업의 일환으로 경북 문경으로 부대 전체를 이전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원받은 자금으로 숙소를 건축한다고 하더라도, 몇 년 내에 허물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경북 문경으로 부대 이전할 시 그 자금을 다시 사용 하려면, 성남시에 위치한 기존의 체육부대와 근접한 곳에 신축 빌라 2동 전체를 전세하기로 했다. 그렇게 2002 월드컵 잉여금으로 여자축구성인팀 창단 지원, 부산시체육회는 운영자금 지원, 국군체육부대는 여자축구선수를 부사관으로 모집해 선수단을 구성하는데 최종 결정했다. 부산상무여자축구단이 첫 발을 내딛게 된 계기다.

2002 월드컵 잉여금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한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남은 수익금’이다. 축구산업 인프라 구축을 통해 향후 축구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의 투자금이었던 셈. 이 투자 사업을 간단히 설명하면, 축구팬들이 한 번쯤 들어봤을 ‘천안-창원-목포’로 이어진 축구센터와 각 지역에 있는 축구공원을 얘기한다.

이는 2002 월드컵으로 벌어들인 수익금과 유치할 지자체의 자체 제원 및 그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국비를 매칭해 입찰(비딩)한다. 이를 통해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월드컵 잉여금을 배분 받아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구축된 축구인프라로 전국 대회, 주말 리그 등 대한축구협회가 야심차게 기획했던 연중, 전국 각지에서 축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고 했다. 그 중에서 일부가 여자축구 발전에 배정, 상무여자축구팀의 창단 지원금으로 활용됐다.

지금부터 그때 사업 추진을 하며 느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필자가 2006년 기획실에 배정된 2006년 상무여자축구팀 창단 사업을 했다. 실무자였던 터라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 했다. 그러나 초짜가 보기에서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 많았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유럽 축구단에서 짧은 리서치 인턴 생활을 하며 형성된 지극히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백그라운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존재했다. 당시 미국 여자축구는 여자프로축구리그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파산 선언을 했다. ‘스포츠하면 미국’인 곳에서 남는 게 없다며 장사를 접겠다고 공표한 상황에서 한국에 저변도 없는 여자축구를 위해 실업 축구팀을 창단한다니, 의아했다.

당시 나의 담당자로서는 반대 의견을 피력했으나, 자금을 기한 내에 사용해야 하는 한계 등 다양한 현실적인 제약 사항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던 그 프로젝트는 진행됐다. 이로 인해 같은 부서의 상급자와 여러 차례 부딪히고, 정말 아닌 걸 알면서도 추진해야 했다.

만약, 그 당시부터 한국 여자축구의 불합리한 구조적 모순을 정확히 분석, 발전적이고 개혁적인 방향을 만들어 실천하고, 상무여자축구팀 창단 지원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면, 지금 어떻게 변하고, 어떤 산업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효과를 거뒀을까?

잘못된 점을 짚고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모색,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그 작은 니치 마켓(여자축구팀 관계자)에 속해 있는 구성원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필자는 그 당시에 상무여자축구팀 창단을 위해 무리한 지원을 했다는 점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 변호사이자 정치평론가 밴 사피로의 “사실은 당신의 감정을 신경 쓰지 않는다(facts don't care about your feelings by Ben Shapiro)”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아래에 여자축구의 저변을 확대하고, 지금의 이상한 구조를 개선시키기 위해 어떤 방향성을 띄어야 하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KFA 등록 인구를 보자. 쉽게 등록 팀을 기준으로 분류를 하겠다.

여자 등록 팀은 초등학교부터 선수를 시작하면 10명 중 6명은 축구선수를 직업으로 가진다. 그러나 남자의 경우 초등학교부터 엘리트 및 클럽 유소년 축구 선수를 시작했을 때, 프로선수가 되는 것은 100명 중 7명에 불과하다.

10명 중 1명도 직업 선수가 될 수 없다. 단 0.7명만 직업축구선수가 된다는 이야기다. 여자축구 저변이 얼마나 빈약하면, 60% 이상이 직업 선수가 된다는 말인가. 내가 근무하던 당시에도 이와 비슷한 통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저변에서 과연 제대로 된 선수가 나올까? 이런 구조는 실제 난센스다.

둘째, 과연 얼마나 많은 관중이 여자 축구를 관전할까?

종종 네이버나 다음 등 인터넷에서 여자 축구를 중계한다. 많이 봐야 몇 백 명이다. 이런 곳에 기업이 직업 선수를 위해 자금을 지원하고, 지자체 혹은 공기업이 실업팀을 위해 세금까지 내준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무료 관중인데다 수익도 전무한 구조다. 공기업, 사기업은 자선 단체가 아니다. 그나마 지원하는 곳은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이다. 한국에서 여자축구는 국제 대회 성적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이번 여자 월드컵에서 드러났듯.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언급했는데, 이 외에도 불합리한 점을 수백 개 나열할 수 있다. 이미 이를 본 축구팬들은 현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발전 가능성은 있는가? 이번에는 방향을 제시하고 한다.

1. 초중고 여자축구 지도자들이 엘리트 축구팀만 운영해서는 안 된다. 유소년축구로 영역을 확장해 시장 논리로 유소년 팀을 키워야 한다. 그 중 여자선수를 남자선수와 함께 육성해야 한다. 여자축구팀만 따로 운영하는 것이 아닌, 젠더를 뛰어 넘어야 한다. 기존 일반 유소년 축구팀으로 규모를 확대 운영, 지금까지 해왔던 여자축구팀을 특성화시켜 더 많은 아이가 축구를 하게 유도할 필요성이 있다.

2. 많은 지도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현실을 모른다고 말한다. 아직 이런 사고에 갇혀있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물론 당장은 아니겠지만(진학과 관련 있으니). 서서히 그 영향력은 희미해지고, 여자축구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3. 성인 실업팀은 K리그와 깊은 협의를 통해, 프로축구단으로 흡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존의 여자 성인팀을 운영하는 지자체, 공기업, 기업과 가까운 연고의 프로축구단으로 합쳐지는 방식이다. 다만 지금까지 지원해오던 기관, 기업은 그대로 프로축구단에 후원을 하는 것이 맞다.

4. 여자 성인 축구선수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해야 한다. 자연스레 U-12, 15, 18세 팀의 숫자가 증가하고, 축구를 배우려고 하는 학생들도 많아진다. 전문가인 지도자들도 설 자리가 있다. 기량에 따라 형태를 다르겠지만, 여자 실업 축구선수들도 일부는 전업으로 연봉을 받으며 축구할 수 있다. 일부는 평소 학생들을 코칭하거나 다른 직업을 갖고 운동할 수 있다.

기본 골격을 갖춘 구조로 변해야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않는다. 우수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첫 번째 과제는 바로 ‘기본’이다. 억지로 짜 맞추면 그럴싸하게 포장될지 몰라도 얼마 못가 무너진다.

지금 한국 여자축구는 진학을 통해 짧은 기간 직업인을 배출한 괴물의 모습이다. 그 어디에도 국가 전체 여성을 위한 축구 인프라는 없다. 산업 구조와 형태를 변형시키기 위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바뀌지 않으면 10년 뒤에도 분명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최호영]
전) 부산아이파크축구단 홍보마케팅 실장
전) (주) 삼광에너지 상무이사 (S-OIL 공식 일반유 판매대리점)
전) (사) 대한축구협회 기획실, 발전기획팀, 교육운영팀
리버풀 대학교 축구산업MBA
인디애나대학교 켈리비즈니스스쿨 경영학부

글=최호영
정리=이현민 기자
사진=대한축구협회, 한국여자축구연맹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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