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태근의 축구이상] ‘프로’ 축구단, ‘매력 승패’ 시대
입력 : 2019.09.2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수원, 인천] 채태근 기자= 5,066명 VS 6,623명.

21일 수원월드컵경기장, 22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의 관중 숫자다. 6위 수원 삼성(승점 40), ‘꼴찌’ 12위 인천 유나이티드(승점 21) 간의 순위가 무의미하다는 걸 보여주는 수치다.

한 경기가 모든 걸 대변할 수 없지만 하루 사이 많은 걸 시사하는 차이기도 했다. 프로축구단이 보여줄 수 있는 건 승패나 순위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푸념에 무색무취 빅버드와 시즌 막판을 향하는 시점에서 ‘생존왕’이라는 희망을 홈팬들과 공유하고 있는 인천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와 닿은 이유다.

# 4부리그 팀에 지고 군팀 깨지 못하는 수원, 을씨년스러운 빅버드

21일 수원-상주 경기 전후로 빅버드엔 ‘한계’가 가득했다. 18일 FA컵 준결승 1차전에서 K3리그 화성FC에 당한 0-1 충격패 이후 "FA컵 우승을 하지 못하면 책임을 지겠다"는 이임생 수원 감독의 발언에 대한 해석으로 경기를 맞이했다.

킥오프 후엔 특별할 것 없는 ‘축구’가 펼쳐졌다. 상주에서 복귀한 김민우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어수선한 수비 혼전 중 ‘팀 후배’ 김건희에게 후반 6분 동점골을 내줬다.

동점 허용 이후 약 40분이라는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지만 수원에는 무승부를 승리로 바꿔줄 킬러가 없었다. 타가트는 부상으로 교체됐고, 만 38세 데얀은 끝까지 벤치를 데웠다. ‘유망주’ 전세진이 교체 투입돼 활발히 뛰어다녔지만 상주와 다른 수준을 증명하기엔 역부족인 경기력이었다.

# 엘리트의 전유물 ‘수원병’이 그리울, 날개 잃은 블루윙즈

현직 국가대표 뿐만 아니라 국적 불문 전성기를 구가하는 최고의 스트라이커들이 상대를 제압할 기회를 따내기 위해 주전 경쟁을 하던 과거가 떠오를 후반 중반 즈음. 전광판에 5,066명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우리가 가야 길이 된다’고 외치던 6위 수원(삼성)의 야망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차가워진 초가을 날씨 속에 북쪽 스탠드 프렌테 트리콜로의 열광적인 응원만이 ‘이곳이 빅버드’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 언제나 살아남는 인천, 2019년 ‘킬러 콘텐츠’ 대구

수원과 인천은 정체성 자체가 다른 클럽. K리그 역사를 아는 팬이라면 굳이 위상 차이를 거론하는 게 실례다. 이날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정확히 1,557명이 더 입장했다. 큰 차이가 아닐 수 있지만 웬만한 K리그2 한 경기 관중이다.

더 중요한 건 클럽을 둘러싼 활력이었다. 인천은 역부족을 느끼면서도 ‘강등은 없다’는 메시지를 선수단과 팬들이 공유하며 몇 년째 항해 중이다. 세련미는 없지만 가을이 되면 인천의 플레이엔 ‘독기’가 깃들고, 팬들의 지지는 꼴찌가 아니다.

올 여름 제주를 떠나 인천으로 강제 트레이드된 김호남은 “이런 팬들은 없다”며 기꺼이 팀에 녹아들었고, 잔류 경쟁 팀 11위 제주의 최윤겸 감독마저 ‘인천처럼 투지 있게 뛰어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

원정을 떠나온 대구의 무게감도 달라져 있었다. 이날 경기 전 “지난해 전반기만 해도 우리도 최하위에 있어 봤다. 인천의 심정을 잘 안다”며 인천의 처지에 공감을 표한 안드레 감독의 대구는 잔류가 아니라 아시아가 목표다. 조현우가 “(FA컵 상관없이 ACL) 3위로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팀이 됐다.

대구는 2014년 부임한 조광래 대표이사의 장기 플랜 하에 FA컵 우승, ACL진출, ‘DGB대구은행파크’ 건립, 좌석점유율 90% 달성 등. 축구를 넘어 대구를 대표하는 콘텐츠로 클럽을 일궈나가고 있다.

명실상부 2019년 K리그의 핫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한 대구의 기운 덕분일까. 인천-대구라는 매치업에 예년과 다른 무게감이 실렸다.



# 수직적 순위 경쟁이 아닌, ‘정체성’으로 승부 보는 시대

몇 년 전과는 전혀 다른 K리그 판도다. 대표팀의 선전으로 인해 팬들이 K리그로 유입되고, 지속적으로 지역 사회에 뿌렸던 씨앗를 차츰 거둬들이고 있는 클럽도 있다. 리그 관계자들 사이에도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주시하고 있는 시기다. 축구팀으로서 영원히 성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으나, 그 이상을 바라보며 클럽 문화를 만들어갈 토대가 쌓이고 있다.

K리그1 12팀, K리그2 10팀 총 22개 팀이 매 라운드 11경기로 승패를 나눈다. 상기 언급했던 수원, 인천, 대구 외에도 다양한 클럽의 수많은 관계자들도 축구 발전을 위해 머리를 싸맨다.

올 시즌 최용수 감독의 복귀 하에 정체성을 되찾고 있는 서울, 10년 만에 찾은 ‘모란 운동장’을 기반으로 올드팬들의 기억을 깨운 성남, 매주 ‘가변석’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안양 등. 전북과 울산의 선두 싸움 말고도 자신의 팀에 애정을 담을 무언가가 있다면 팬들도 알아보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최고를 지향하는 새파란 유니폼의 푸른 날개’를 사랑하던 수원 팬이 희망을 되찾고, 올 시즌도 ‘생존’이 인천 팬의 자존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2020년 이후에도 대구가 시대를 선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갈 수 있을지 상상력을 돋우는 하나원큐 K리그 2019 30라운드였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채태근 기자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