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백지훈①] 자유롭게 날게 된 파랑새...''파란만장했지만 정말 행복했다''
입력 : 2019.10.0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청담] 서재원 기자= '승리의 파랑새' 백지훈(34)이 그라운드를 떠난다.

백지훈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6일 오후 2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하나원큐 K리그1 2019' 33라운드 수원삼성과 FC서울의 슈퍼매치에서 그의 은퇴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약 10년 동안 몸담았던 친정팀 수원은 백지훈을 위해 슈퍼매치 당일 은퇴식을 준비했다. 라이벌 수원과 서울의 유니폼을 모두 입어본 몇 안 되는 선수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은퇴식이다.

파랑새라는 별명처럼, 백지훈은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냈다. 200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월드컵 나이지리아전에서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트리며 역사에 남을 극적인 승부를 연출했다. 같은 해 A대표팀에도 부름을 받아 데뷔전을 치렀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참가하는 등 뜨거운 20대 초반을 보냈다. K리그에서는 전남, 서울, 수원, 울산 등에서 254경기 뛰며 이름을 날렸다. 비록 지독할 정도로 잦은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며 K리그가 아닌 홍콩에서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백지훈이라는 이름 석 자는 K리그를 넘어 한국 축구에 오래도록 기억될 전망이다.

타지에서 은퇴를 결심했기 때문에, 백지훈의 은퇴 소식은 다소 늦게 알려졌다. 지난 5월 홍콩에서 시즌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부터 나름 생각을 정리했다. 그로부터 4개월이 흘렀고, 지난 2일 서울 청담동의 모 카페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갑자기 은퇴를 결심했다는 질문에 "정말 갑자기가 맞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 하려고도 했다. 그런데 홍콩에서 시즌 마지막 경기 하면서 너무 힘든 걸 느꼈다. 상대가 꼴찌 팀이었다. 반드시 이겼어야 했던 경기였다. 0-1로 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경기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하는 팀이든, 못 하는 팀이든 지고 있을 때 그런 생각이 들면 안 된다.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몸이 안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부모님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만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결심했다. 조금 더 하면 할 수는 있는데, 홍콩이라는 나라가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또 제가 가족이 있으면 더 했을 수도 있는데, 가족도 없고 혼자 있다 보니, 은퇴를 결정하기 쉬웠던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은퇴식은 수원에서 하지만, 마지막 뛰는 모습을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게 아쉬움이었다. 백지훈도 "물론 한국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팀을 알아보지도 않았다. 오래 전부터 은퇴를 상상할 때, 추하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 있었다. 홍콩에 있으면서 괜찮은 시즌을 보냈고, 경기도 많이 뛰었다. 나름 잘 했다. 홍콩 친구들도 제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 너무 아쉬워했다. 아쉬움이 남을 때 떠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온다면 K리그2는 갈 수 있다는 생각한다. 하지만 뛰는 것 자체만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 잘 뛰면 좋겠지만, 못 뛰었을 때 은퇴를 한다면 더 실망스러울 것 같다. 조금이라도 더 박수 받을 때 떠나고 싶었다"라고 털어놨다. 마지막이 왜 홍콩이었는지에 대해선 "어릴 때부터 항상 외국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고, 부상도 겹치면서 외국에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홍콩에서 먼저 제안이 왔다. 동진이 형도 먼저 가 있었고, 키치라는 팀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자주 나왔기에 홍콩에 대해 익히 들었다. 물론 제가 간 팀은 생소했다. 일단 외국 생활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영어도 배우고 싶었다. 꼭 축구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외국 생활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1년 전만해도 은퇴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홍콩행 비행기를 탔을 땐 마흔 살까지 축구를 할 수 있겠다는 꿈을 꿨다. 백지훈은 "사실 40살까지 축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홍콩에서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마흔 살 이상 선수들이 홍콩에서 많이 뛴다. 홍콩이라는 나라가 축구가 약하기 때문이다. 저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너무 편했다. 실력적인 면에서 제가 뛰어났던 게 사실이다. 제가 국가대표로 뛰었고, 월드컵에 나갔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다 알기 때문에, 모두가 저를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인정받으면서 축구를 하고 있었고, 경기장에서 그 친구들보다 나은 부분이 많았다. 동료들도 저에게 의지했다. 그래서 충분히 40세까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이 될 때쯤 제가 너무 힘들었다"며 "사실 은퇴 이후 계획을 확실히 짜놓은 게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은 미리 구상해 놓는다. 저는 갑작스럽게 결정을 했고, 계획이 없었다. 저희 아버지도 홍콩에서 더 뛰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다. 처음에 홍콩에 오셨을 때 그 일 때문에 싸우기도 했다. 아마 아버지가 제 몸 상태를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백지훈의 고민이 하나 있었다면, 은퇴 후 계획이 없었다는 점. 그러나 무계획은 반대로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그는 "요즘에 사람들도 만나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축구하면서 못 했던 것들이 너무 많다. 축구하면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다. 이제는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배울 수 있는 것도 많다.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고 도전해보고 싶다"며 "제일 마지막까지 은퇴를 고민했던 이유는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은퇴를 하고 이후에 계획이 있으면 절차를 밟으면 되지만, 이후에 확실한 계획을 안 잡아두니 주변 친구들이 오히려 걱정을 한다. 저는 정말 계획이 없다. 어떻게 보며 막연하게 은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홍콩 가서 1년을 더 하면서 생각을 해볼까라고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이 행복할 거 같지 않았다. 은퇴를 하면 새로운 것들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다. 실제로 생기고 있다. 뭐든지 결과론이겠지만 제가 은퇴를 했을 때 잘 하면, '은퇴를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제가 하기 나름이다"라며 앞으로의 삶을 기대했다. 이어 "지도자에 대한 생각도 당연히 있다.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는 하고 있다. 언제 어느 팀에서 저를 불러 줄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도 준비를 할 계획이다"라고 미소 지었다.



백지훈은 화려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도 많았다. 조심스럽게 '내리막 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역시 끄덕이며 인정했다. 백지훈은 "어린 나이에 이룰 수 있는 것, 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을 다 이뤘다. 어릴 때부터 꿈이 뭐냐고 물으면 '국가대표'라고 답했다. 그런데 국가대표가 됐다. 이후에 꿈을 물으면,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또 월드컵에 나갔다. 이후에 '해외진출'이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거기까지 꿈은 없었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오면서, 연봉적인 면과 팀 자체 등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대표팀에도 가고, 팀에서도 자주 뛰었고, 연봉도 또래보다 많이 받았다. 거기에 안주하고 만족했던 것 같다. 사실 그 누구도 저에게 '더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안 했다. 대부분 '잘 해', '잘 하고 있어'라고만 해줬다. 제가 진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성이형처럼 해외에 나가서 하려는 생각이 있었어야 했는데, 수원에 있을 때 제 자신에 만족했다. 이제 돌아보니 후회가 된다. 제가 경험을 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국가대표에 있는 게 다가 아니다. 더 큰 꿈을 꿔서 한 단계 성장을 했으면 좋겠다. 만족하는 순간 저처럼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게 뻔하다"라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유리몸'이라 불릴 정도로 부상이 잦았다. 쉬기도 오래 쉬었다. 백지훈은 "저는 수원에 와서 잔부상도 많았고, 기복도 있었다. 2010년도에 좋아져서 대표팀에도 갔다. 윤성효 감독님이 부임한 후 한참 좋아졌을 때 다시 부상을 입었다. 아예 운동장을 밟지 못했다. 1년 반 동안 재활만 했다. 몸이 완전히 갔다. 그런 상태에서 군대에 입대했는데, 군대에서도 1년 반을 쉬었다. 5개월은 재활을 했어야 했는데, 재활보다 개막전 출전에 몸을 맞췄다. 개막전부터 경기를 뛰기 시작하다보니, 사람들은 '백지훈 갔다'는 말을 했다. 그 때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몸이 엉망이었다. 무리였다. 군대 제대하고 울산으로 1년 임대 갔을 때까지만 해도 몸이 안 좋았다. 수원에 돌아와서 운동도 많이 하다 보니 몸이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더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수원으로 갔을 때, 2015년과 2016년 정말 좋았다. 경기를 많이 못 뛰어도 행복했다"라고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부상을 떠올렸다.

스스로 돌아본 축구 인생은 어땠을까. 백지훈은 "20대 초반에 진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봤다. 월드컵이라는 경험도 해봤다. 물론 뛰지는 못했지만, 참가의 기회가 오고, 함께 훈련도 해봤다. 어떻게 보면 파란만장했다. 굴곡도 심했다. 부상도 있어서 오래 쉬기도 했다. 순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 좋았던 시절도 있고, 너무 안 좋았던 시절도 있었다. 중간이 없었다. 그래도 재밌게, 행복하게 축구했던 것 같다. 프로에 있으면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도 제 이름을 말하면, 수원이라는 팀이 떠오르고, '파랑새'라는 별명도 따라다닌다. 정말 행복하게 축구했다"라며 자신의 축구 인생을 돌아봤다. 마지막으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파랑새라는 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상징이다. 저를 생각했을 때, '이 선수 때문에 행복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고 떠올릴 수 있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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