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백지훈②] 수원이 싫었던 백지훈...전환점 된 이임생의 '한마디'
입력 : 2019.10.0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청담] 서재원 기자= '파랑새' 백지훈(34)은 사실 수원삼성행을 원치 않았다. 푸른 유니폼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수석코치였던 이임생(현 수원 감독)을 찾아가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사정하기도 했다. 그 때 이임생의 한마디가 백지훈의 마음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백지훈은 6일 오후 2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하나원큐 K리그1 2019' 33라운드 수원과 서울의 슈퍼매치에서 은퇴식을 갖는다. 수원은 은퇴를 선언한 백지훈을 위해 특별히 슈퍼매치에 은퇴식을 계획했다. 그가 서울에서 수원으로 다이렉트로 이적한 첫 번째 선수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백지훈에게 슈패매치에 은퇴식이 거행된 사연을 물었다. 그는 "매니지먼트 회사 분께서 수원에 알리셨다. 특별히 무엇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수원에서 먼저 은퇴식을 잡아주셨다. 기다리다 보니, 슈퍼매치에서 은퇴식을 열어주신다고 하시더라. 정말 감사했다. 사실 3주 전에 은퇴식 이야기가 처음 나왔다. 슈퍼매치 앞에도 경기가 많이 있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울산전(9월 25일)에 할 거라 예상했다. 슈퍼매치 때는 구단에서 준비하는 행사가 많을 거라 생각했다.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빅매치에, 많은 관중들 앞에서 은퇴식을 열어주신다고 해서 너무 고마웠다"라고 슈퍼매치에 은퇴식이 열리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백지훈은 수원과 서울, 서울과 수원에서 모두 뛴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곧바로 이적한 첫 선수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그 입장에서 은퇴식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지훈은 "부담스럽지는 않다. 더 감사했다. 그런 큰 경기 앞에 은퇴식을 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물론 제가 서울에도 있었고, 수원에도 있었지만, 제 마음은 수원이 더 크다. 당연히 수원이 이기길 바라는 마음이다. 만약 제 마음 속에서 두 팀의 비중이 50대 50이었다면 부담스러웠을 텐데, 저는 완전히 수원에 마음이 있기 때문에 부담감은 없다. 오히려 서울 팬 분들에게도 인사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라고 여유 있는 웃음을 보였다.

수원은 백지훈에게 운명이 된 팀이다. 그러나 그가 원치 않는 이적이기도 했다. 이적 당시에도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백지훈은 "전혀 아니었다. 처음에 수원에 갔을 때 양쪽으로 욕을 다 먹었다. 서울에서는 수원 간다고 욕을 먹었고, 수원에서는 서울에서 왔다고 욕을 먹었다. 저는 갈 생각도 없었다. 2006년에 FA자격을 얻었다. 외국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월드컵에 갔다 오니까, 구단끼리 이야기를 끝낸 상황이었다. 수원을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그 때 들었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다. '안 간다', '못 간다', '내가 왜 가야하나'라며 버텼다. 그랬더니 서울에서 임의탈퇴를 시키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 때 당시 어느 선수가 구단을 이기겠는가. 서울이라는 큰 기업구단은 못 이긴다. 어린 나이에 무서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수원에 가게 됐다"라고 13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은 싫었지만, 분명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을 터. 백지훈은 "처음에는 적응을 못했다. 서울은 숙소가 아파트다. 1층, 2층, 3층에 결혼 안 한 친구들이 모여 살았다. 한 채에 6~7명이 들어갔다. 친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 살았다. 누구의 생일이면 몰래 생일파티도 해줬고, 다 같이 모여 드라마도 같이 봤다. 진짜 가족이었다. 그리고 수원에 갔는데, 2인 1실이었다. 방에 비밀번호도 있었다. 제 방에 룸메이트 외에 들어올 수 없는 구조였다. 운동시간 아니면 동료들을 볼 수 없었다. 운동 하러 나갔는데, 정말 형들이 많았다. 운동 시간 외에는 형들과 말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이임생 코치님에게 찾아갔다. 정말 부탁이라고 서울로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여기서 축구를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코치님이 나가서 살아 보라고 하셨다. 서울에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가서 살았는데 너무 좋았다(웃음). 마음이 너무 편했다. 이후 마음이 열리고, 형들과도 친해졌다. 마침 수원에서 첫 골을 넣었는데, 결승골이었다. 제주전으로 기억한다. 그 때 이후 저를 욕하시던 팬 분들도 점점 응원해주셨다. 그렇게 자신감을 찾았다"라며 나름 심각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우여곡절 끝에 인연을 맺게 된 수원에서 무려 10년을 함께 했다.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을 거다. 백지훈에게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묻자, "수원이라는 자체가 너무 좋았다. 경기에 뛸 때 팬들이 정말 많았다. 뒤에 든든한 지원군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원정을 가도 수원 팬들이 더 많았다. 그런 점들이 더 좋았다"라고 답했다. 그 좋았던 수원에서 뛰면서 '파랑새'라는 별명도 얻었다. 중요한 경기, 중요한 순간에 극적인 결승골을 터트려서 얻게 된 그의 상징과 같은 별명이다. 그렇다면 백지훈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2006년도 플레이오프를 했을 때, '정성룡(당시 포항)'을 상대로 골을 넣을 때가 기억이 많이 난다. 큰 경기였고, 그 골이 결승골이 돼서 결승에 올라갔다"라고 유독 정성룡의 이름을 강조해 말했다.

그러나 백지훈의 마지막은 수원이 되지 못했다. 수원에서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6년도에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계약 만료 후 서울 이랜드FC로 팀을 옮겼다. 이후 홍콩 리만FC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마지막이 안 좋았기에 서운한 감정도 당연히 있었을 텐데, 백지훈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서운한 건 없었다. 제가 받아 들여야 하는 부분이었다. 2015년과 2016년 내내 부상으로 고생했다. 일단 서정원 감독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그래도 저에게 기회를 많이 주시려고 했었고, 저를 많이 안아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하지만 제가 잘 못해서 주전 자리를 못 찾았다. 이후에는 제가 팀을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이랜드를 갔다. 그렇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은 없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백지훈은 수원의 마지막 우승을 경험했던 선수였다. 10년 동안 몸담으면서 수원의 몰락도 지켜봤다. 백지훈은 지금의 수원에 대해 "당연히 안타깝다. 홍콩에 있을 때도 경기는 못 봐도 결과는 항상 챙겨봤다. 지금도 그렇다. 저 있을 때까지만 해도 경기에 나서면 진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순위는 내려간 적은 있지만, 마지막은 항상 좋았던 것 같다. 그 때 당시는 투자도 많았고, 좋은 선수가 많았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해 투자도 줄었고, 선수층도 얇아졌다. 오히려 지금은 다른 몇몇 팀들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는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수원은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라며 조심스러우면서도 남다른 애정을 표현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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