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백지훈③] '선수' 백지훈 키운 최건욱, '파랑새' 완성시킨 차붐
입력 : 2019.10.0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청담] 서재원 기자= 나름 쿨하게 은퇴를 선언한 백지훈(34)도 스승의 문자 한 통에 눈물을 흘렸다. 선수 백지훈을 키운 최건욱 감독의 축하 문자였다.

은퇴를 선언하자, 백지훈에게 수많은 연락이 쏟아졌다. '고생했다'는 축하 메시지가 대다수였다. '은퇴 후 계획이 없다'는 말에,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하는 전‧현직 동료들의 잔소리도 있었다. 백지훈에게는 모두 다 감사한 말들이었다. 그 중 어떤 멘트가 가장 가슴에 와 닿았는지 묻자, "(조)원희 형이다. 최근에 은퇴를 했고, 요즘에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 저에게 '뭘 해도 될 거다'는 자신감을 줬다. 막연하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수원에 있을 때도 저와 룸메이트였고, 같이 미드필더로 섰을 때 궂은일을 다해줬던 형이었다. 은퇴 후 유투브, 축구교실 등 여러 가지를 하고 있는데, 그런 형이 '뭘 해도 잘할 거야', '뭘 해도 될 거야', '시작만 하면 된다'고 말했을 때 정말 감사했다"라고 답했다.

인터뷰를 계속 진행하던 중, 백지훈을 있게 한 스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백지훈은 "고등학교 감독님이다. 최건욱 감독님이다. 그분 때문에 제가 있는 것 같다. 진짜 무서웠다. 많이 뛰게 하고, 선수들 머리도 빡빡 깎아 놓으셨다. 중학교 때부터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처음에 안동고에 간다고 했을 때, 축구 안한다고 한 달 동안 나와 있었다. 정말 가기 싫었다. 한 달 동안 나와 있으니 축구가 다시 하고 싶어졌다. 부모님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안동고를 갔다. 그렇게 감독님을 만나게 됐다"라고 스승 최건욱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한 최건욱 감독이지만, 백지훈을 아들처럼 예뻐했다. 이후 백지훈이 가장 사랑하는 스승이 됐다. 그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너무 작았다. 감독님께서 그런 저를 보더니, 6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먹고 자라고 배려해주셨다. 그렇게 체격을 키웠다. 보통 고등학교 1학년 때 감독님 방을 청소한다. 그런데 저는 3년 내내 감독님 방을 청소했다. 그만큼 저를 예뻐해 주셨다"며 "제가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갔을 때 감독님이 새 유니폼을 가지고 오셨다. 원래 3학년 형들이 번호를 정하고 남는 번호를 가져가야 했다. 그런데 10번 유니폼을 따로 빼놓으시더니, 저에게 주셨다. 형들이 다 있는데 주셔서 엄청 민망했다. 그 정도로 저를 너무 아껴주셨다. 친구들이 질투할 정도였다. 아마 동기인 (김)진규가 잘 알거다. 너무 감사한 분이다. 프로에 와서도 조언은 물론 자주 연락을 해주신다"라고 최건욱 감독에 대하 감사함을 표했다.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그제야 진짜 감사한 메시지를 떠올렸다. 최건욱 감독의 문자 메시지였다. 백지훈은 "이번에 은퇴한다고 했을 때, 문자가 하나 왔다. 눈물이 났다. 제가 보여드리겠다. 혹시 이런 게 기사로 나갈 수 있다면, 나갔으면 좋겠다. 스승님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해 드리고 싶다. 이 내용이 그대로 실렸으면 좋겠다"라고 부탁했다. 백지훈은 다시 한 번 문자를 확인하며, 잠시나마 깊은 감정에 빠졌다.



"사랑하는 지훈아...! 은퇴를 하니 섭섭함도 허전함도 있지만 너는 많은 팬들에게 기억될 수 있는 선수로 영원히 남아 있단다.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참 예쁘게 공을 차는 너를 보고 훌륭한 재목임을 느껴 풍기중학교에 보내 나의 제자로 삼았지. 넌 나의 훈련을 잘 버텨주었고, 청소년 대표로 출전하여 세계대회에서 골을 넣었을 대 새벽잠을 설쳤던 기억. 축구인생에서 최고의 보람이고 정말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단다. 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훌륭한 선수로 있어 주어서 고마웠다. 나의 지도자 생활에 버팀목이 되어주고 자랑스러운 제자로서 나는 참 복도 많고 큰 행운을 잡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이제 인생의 2막에서 출발선에 선 너. 지훈아...! 그동안 고생 많이 했고 어깨에 진 짐 내려놓고 푹 쉬거라.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잘 개척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넌 늘 잘해 온 자랑스럽고 멋진 제자이기에 잘 해내리라 믿는다. 은퇴식에 못 가더라도 너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TV라도 꼭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죽을 때까지 행복했던 안동고 시절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항상 나의 제자로 남아 주어서 고맙다. 정말 축하하고 사랑한다"

스승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계속 나눴다. 프로와 대표팀에서도 수많은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그였다. 고등학교 감독님 외에 프로에서 누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에 대한 질문에, 백지훈은 차범근 감독을 꼽았다. 그는 "차범근 감독님께 감사한 부분이 있다. 사실 저에게 공격 본능이 많은지 몰랐다. 감독님이 개인 면담을 하는 걸 좋아하셨는데, 시합 전날 항상 방으로 부르셨다. '너는 다른 사람이 안 가지고 있는 게 있다'고 말해주셨다. 감독님도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저 스스로 알고 있는 점이라고 하셨다.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드필드진에서 치고 올라가 골을 넣는 타이밍이었다. 그걸 스스로 일깨우게 해주셨다. 제가 그렇게 골을 넣으니, 다음 경기 때 다시 부르셔서 '그것 봐. 할 수 있다고 그랬지. 또 그렇게 할 수 있어'라고 하셨다. 그런데 또 진짜 골을 넣게 됐다. 그래서 골 냄새, 타이밍을 깨닫게 됐다"라고 차범근 감독과 일화를 설명했다.



물론 모든 스승들이 감사했다. 그러나 백지훈이 차범근 감독을 꼽은 이유는, 자신이 가장 행복했을 때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차범근 감독이 수원으로 백지훈을 데려왔고, 그 시절 파랑새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백지훈은 "저를 전남에서 서울로 데려오신 이장수 감독님. 이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서울로 못 갔고, 그러면 수원에도 없었을 거다. 상주 때 박항서 감독님은 물론, 서정원 감독님 모두 좋으셨다. 아시다시피 서정원 감독님은 모든 선수들이 좋아하는 감독님이다. 그런데 차범근 감독님을 꼽은 이유는 제가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저를 원하셔서 수원으로 부르셨고, 저를 일깨워주셨다. 아마 선수들 모두가 자신이 가장 잘 했을 때 감독님을 최고로 꼽을 거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수많은 스승 중 또 다른 의미의 스승인 팬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늘 한결 같은 마음으로 응원을 아끼지 않은 팬들이다. 백지훈은 "갑작스럽게 은퇴한다는 소식 듣고 많이 놀라셨을 거다. 항상 제일 감사한 분들이다. 제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항상 제 편이었다. 항상 제게 힘이 돼 주셨다. 그런 것들을 선수 때 표현을 못했다. 너무 감사한대도, 직접 만나면 '네~'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건방지다', '싸가지 없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많으셨을 거다. 제 성격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정말 감사하다. 이제는 은퇴를 하고, 다른 삶을 살게 될 텐데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선수 때 못했던 것들, 웃으면서 이야기도 많이 해보고 싶다"라며 팬들을 향해 몇 번이고 감사함을 표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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