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ZOOM-IN] 고교 시절 황희찬보다 날렸던 이광혁, 시련 딛고 일어서다
입력 : 2019.10.0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포항] 이현민 기자= “사실 고등학교 때 (황)희찬이도 잘했는데, (이)광혁이가 더 날렸죠. 프로에서 만개할 줄 알았는데...”

이광혁(24, 포항 스틸러스)의 어린 시절을 지켜본 다수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과거 필자도 현장에서 두 눈으로 목격했다. 이광혁이 휘젓고 황희찬이 마무리하고. 스타일이 달라 직접 비교는 어려웠으나, 둘은 크랙과 골잡이로 명성을 떨쳤다. 함께 뛰니 상대에 공포 그 자체였다. 포항 U-18팀(포항제철고)의 확실한 승리 공식이었다.

이광혁은 포항제철고 시절 고교무대를 평정했다. 흔히 말하는 ‘메시 놀이’를 할 정도로 단연 돋보였다. 2014년 프로에 직행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6년 차. 하지만 ‘만년 유망주’ ‘기대주’라는 꼬리표를 아직 못 뗐다. 반면, 황희찬(잘츠부르크)은 해외 무대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포항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으면서도 아픈 존재가 바로 이광혁이다. 터지고 뭔가 잘된다 싶으면 부상에 발목 잡히고. 30경기 이상을 소화한 적이 2017년 한 번밖에 없다. 지난해에는 16경기 출전에 그쳤다. 올해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결정적 순간 일어섰다. 10월 6일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날았다. K리그1 33라운드, 라이벌 울산 현대와 163번째 동해안더비에서 본인과 팀 역사에 길이 남을 한 방을 꽂았다.

포항은 파이널A 자력 진출을 위해 반드시 울산을 잡아야 했다. 한 치 물러섬 없이 과감하게 맞섰다. 경기를 잘 풀어가던 후반 5분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김기동 감독은 후반 9분 허용준, 16분에 이광혁 카드를 꺼냈다. 계속 몰아쳤다. 그래도 안 터지자 33분 팔로세비치로 승부수를 던졌다. 41분 완델손이 얻은 페널티킥을 팔로세비치가 마무리해 균형을 맞췄다. 무승부 기운이 감돌던 추가시간, 이광혁이 골망을 흔들었다. 아크에서 툭툭 치고 들어가다 왼발 슈팅을 시도, 볼이 모서리로 빨려 들어갔다. 스틸야드가 달아올랐다. 팬들은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서 ‘이광혁!’을 목청 높여 연호했다.

그럴만했다. 비겼다면, 파이널B로 떨어졌다. 같은 시간 포항과 얽혀있던 상주 상무가 강원FC가 2-1 역전승, 그것도 추가시간 골로 극적인 승리를 따냈다. 이광혁이 천금 포로 상위행을 이끌었다. 게다가 앙숙인 울산을 격파했으니 기쁨은 배가 됐다.

현장에서 만난 이광혁은 “포항에 오래 있어 경기의 중요성을 알았다. 더비이기 때문에 팬들도 예민하신 걸 인지하고 있었다. 감독님이 공격적인 주문을 했다. 무조건 포인트나 골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좋은 위치에서 기회가 와 득점할 수 있었다”고 모처럼 미소를 보였다.

김기동 감독은 “이광혁에게 뽀뽀해주고 싶다”고 웃으면서도,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일어서 뿌듯하다”며 대견스러워했다. 이번 골은 이광혁 본인, 포항에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이광혁은 지난해에 무릎 수술만 네 차례 했다. 그동안 팀에 많은 보탬이 못된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몸을 끌어올리기부터 쉽지 않았다. 힘들어도 이 악물고 버티고 이겨내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다짐했다. 경기 감각을 서서히 찾았지만 뭔가 눈에 띄는, 승리를 가져올 만한 무기가 안 보였다. 그래도 김기동 감독은 믿었다. 짧든 길든 출전 기회를 부여했다. 어릴 때부터 이광혁을 지켜봤기 때문에 장점, 활용법을 안다. 결국, 한해 농사가 달린 울산전에서 빛났다.

이광혁은 “개인적으로 최고의 날”이라고 울산전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네 번이나 무릎 수술을 했는데 정말 힘들었다. 주저앉을 수 없었다. 나를 믿어주는 가족, 감독님, 동료들, 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특히 팬들이 크게 실망하고 계셨다. 쓴소리와 격려 모두 받아들였다. 열심히 훈련하고, 몸 만들고, 그라운드에서 증명하는 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했다”며 아팠던 순간을 떠올렸다.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후 가장 먼저 연락 온 사람은 친형인 이광훈이었다. 이광훈이 2012년 포항에 먼저 입성, 2년 뒤 이광혁이 합류했다. 2014년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다. 대전 시티즌, 수원FC, 내셔널리그를 거친 후 부상 여파로 일찍 은퇴했다. 현재 포항 U-12팀 코치를 맡고 있다.

형 이야기를 꺼내자 이광혁은 “울산전이 끝나고 연락이 왔다. 축하 인사를 건네더라. 평소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자주 대화를 나눈다. 사실, 형 말을 듣기 싫은데, 자기나 잘하지...”라고 손사래를 치며 현실판 형제의 모습을 보였다. 이내 “옆에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항상 고맙다”고 멋쩍게 웃었다.

이제 비상하는 일만 남았다. 이광혁은 “슈팅을 차는 순간 살아있다는 걸 느꼈다. 골과 팀 승리로 자신감이 붙었다. 포항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고 싶다. 파이널A에 올라갔으니 다음 시즌 아시아 무대 진출권 획득을 위해 5전 전승을 노리겠다”고 다짐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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