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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태근의 축구이상] 기성용의 ‘기초’를 세운 36년 장인

기사입력 : 2019.10.30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공유


[스포탈코리아=광주] 채태근 기자= 축구 지도자들 사이에 최고의 명예는 자신이 키운 선수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A대표팀의 기둥 역할을 했던 기성용(30, 뉴캐슬)의 기초를 닦았던 스승은 여전히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전남 순천중앙초(교장 임덕희) 축구부에서만 1983년부터 36년째 재직 중인 정한균 감독(61)은 자신의 청춘을 바친 지도자 인생을 ‘천직’이라는 단어로 축약했다. 동석했던 ‘기성용 아버지’ 기영옥 광주FC 단장과 과거 직접 지도를 받았던 김대욱 씨(전남 드래곤즈·올림픽대표 출신)는 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기초를 다지는 장인”이라는 표현으로 정 감독의 업적을 높이 기렸다.

20대 중반 젊은 날부터 만 61세 정년을 앞둔 올해까지 한 눈 팔지 않고 초등학생을 가르친 유소년 전문 지도자. 기성용을 비롯해 다수의 국가대표와 프로선수를 키워낸 정 감독을 지난주 광주광역시 시내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기성용, 남기일, 김영광, 김종혁 등 수 많은 별들의 스승

훌륭하게 성장한 선수들은 지도자에게는 한없는 자랑이다. 정 감독은 겸손하게 말을 아꼈지만 거목으로 자라난 제자들의 이름만으로도 36년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순천중앙초 축구부 출신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기성용 외에도 김영광(서울 이랜드), 이종호(나가사키), 허용준(포항), 김동준(성남), 이한샘(아산), 한찬희, 이슬찬(이상 전남) 등 현역 프로선수들을 비롯해 남기일 성남 감독, 김정수 U-17 대표팀 감독 등 지도자 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다. K리그 심판으로 활동했던 김종혁 대한축구협회 심판운영팀장도 정 감독의 제자다.

“조그마하던 아이들이 훌륭히 성장해 한국 축구에 이바지 하는 걸 보면 뿌듯하다”고 미소 지은 정 감독은 “어렸어도 특징은 비슷했다. 기성용은 플레이가 부드러웠고, 남기일 감독은 그때부터 승부욕이 강했다. 안 지려고 하고 똑똑했다”고 스타들의 어린 날을 추억했다.

# 기초 기술, 인성, 공부 모두 중요하다

수많은 스타를 육성해낸 순천중앙초의 비결은 무엇일까. 정 감독은 “36년 동안 가장 중요시 한 게 인성과 기초 기술을 잘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걸 전통으로 삼고 지금까지 지켜왔다. 초등학교 시절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예전부터 공부 다 시키고 축구를 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어 중앙초 출신 중 도드라지는 박순배 부장 검사에 대해 설명했다. “박순배 검사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운동하다 공부로 전향을 했다. 학부모들에게 축구를 하면서도 공부 잘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고 전했다.



이 대목에서 김대욱 씨는 “과거에는 초등학교에서도 수업 안 들어가는 축구부가 있었다. 우리는 한 번도 수업 빠진 적이 없다. 공부 다 마치고서야 훈련 시작했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이에 정 감독은 “몇몇 지도자들은 본인만 생각하고 아이들 미래는 소홀히 한 것”이라며 공부와 축구를 병행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 성적 폐지, 8인제 축구…“기본기 습득에 좋은 제도”

대화 주제는 최근 트렌드로 이어졌다. 유소년 축구의 성적 폐지와 8인제 경기에 크게 공감했다. “진작부터 주말리그, 대회 성적 없앨 것을 건의했다”면서 “주말 경기 성적 내기 위해 경기 위주로 가르치면 기본 교육이 소홀해진다. 기본기 습득이 안 된 채로 중 고등학교 가서는 늦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성적 내려고 지도자 선수 학부모 모두 과열이 됐다. 그렇게 해서 언제 밑바닥 기본 교육을 하겠느냐. 경험이 많은 지도자는 잘 해쳐나가겠지만 신임 지도자들은 쉽지 않은 문제”라고 성적 중심 문화의 폐해를 지적했다.

8인제 경기를 하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부분도 짚었다. “8대8 경기가 좁은 공간에서 볼 터치가 더 많아지니 잘 도입한 것이다”라고 전제한 뒤 유럽과 남미에 비해 축구에 입문하는 시기가 늦는 우리나라 현실을 주목했다.

“유럽과 남미는 5~6세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니 11~12세 때 경기를 많이 해도 괜찮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축구를 늦게 시작한다. 지방은 아직도 10~12세 정도 평균 11세 정도에 입문한다. 기본기를 열심히 다져야 할 때 무작정 경기 뛰면서 성적까지 내려면 결국 선수 본인이 피해를 보게 된다. 우리나라는 11~12세도 기본기 교육을 바탕으로 경기를 치러야 한다”고 현장 지도자로서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잘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 3시간 보다 2시간 훈련이 효과적, 혹사 방지해야 꽃 피운다

유소년에 알맞게 제도가 변화하는 과정에 앞서 정 감독은 자신만의 철학을 현실에 적용하고 있었다. “늦게 시작한다고 마음이 급하면 혹사를 시키게 된다. 그러니 20세 넘어 성인이 되면 힘을 못 쓰는 것이다”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 “스포츠 과학에 기반 하면 체력은 안 쓰면 떨어지고 많이 쓰면 고장이 난다. 유소년 단계에서는 그 사이를 적절하게 잘 맞추는 게 기술자다. 그걸 굉장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열심히’와 ‘영리하게’를 잘 구분해야 한다는 뜻이 담긴 말도 이어졌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운동 많이 시키면 당장은 통하고 성적 낼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아이들이 살아남질 못 한다”면서 “초등학교에선 3시간 보다 2시간 훈련이 효과적일 수 있다. 과한 훈련은 시간이 쌓이면 몸에 고장이 난다. 반면 기초 기술을 다져놓으면 훗날 꽃 필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확고한 지도 철학을 전했다.

정 감독과 오랜 선후배 사이인 기영옥 광주FC 단장은 “틀린 말이 하나 없다. 혹사당해서 골병들고 유연성 떨어지면 큰 선수가 못 된다”고 맞장구를 치면서 “그래서 나도 (기)성용이를 정 감독이 있던 중앙초로 보냈던 것이다. 데이터로 나오지 않느냐. 순천중앙초가 배출한 대 선수들을 키워낸 노하우을 정 감독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정 감독은 올해를 끝으로 정년을 맞이한다. 상기한 아이들의 기초에 집중하는 철학을 강조하면서도 전국소년체육대회 축구 부문 국내 최다인 5회 우승을 비롯해 113개의 우승컵을 순천중앙초에 남기고 퇴임한다.

그는 겹겹이 쌓인 지난 발걸음에 대해 “직접 중앙초 축구부 창단을 하고 유소년 교육에 평생을 바쳤다. 다른 팀에서 제의도 많았지만 그 자체로 감사했다. 꿈나무들 지도하는 걸 천직으로 생각하고 중앙초의 전통을 세웠기에 다른 데로 옮기는 걸 생각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정 감독의 꿈나무를 지도하는 ‘청춘’은 정년으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학교 축구부가 FC(유소년 축구클럽)로 바뀌는 중이다. 정년 후엔 조금 쉬었다가 아이들이 보고 싶어지면”이라며 꺾이지 않는 열의를 에둘러 표현했다.

한국 축구의 거목들을 키워낸 36년 발자취를 모두 담기엔 부족한 지면일 것이다. 하지만 국가대표, 프로선수들을 비추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그들의 기초를 세운다는 사명감으로 평생을 바친 정한균 감독과 같은 ‘장인’이 존중을 받는 축구 문화가 확립되길 기원해본다.

사진=순천중앙초등학교, 정한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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