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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만렙] 영원히 기억해야 할 ‘서프라이즈’ 마라톤 영웅 서윤복 스토리

기사입력 : 2019.11.12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공유


[스포탈코리아] 이은경 기자= ‘비인기 종목의 설움’ 같은 말도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2019년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은 전세계 어느 곳의 어떤 국제 대회에 나가도 실력으로나, 지원으로나 당당하고 거리낄 게 없다. 오히려 어린 선수들은 인터넷이나 사회적인 인프라 면에서 외국 대회나 전지훈련을 가는 게 한국에 비해 후진적이고 불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72년 전, 1947년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는 지금 세대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에서 뛰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은 마라톤 금메달을 따고도 꽃다발로 일장기를 가린 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1947년 서윤복이 갓 탄생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해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 도전기는 그의 저서 <혓바닥이 나온 구두를 신고>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일단 당시 서윤복과 손기정 감독, 남승룡 코치는 보스턴까지 갈 비행기 값이 없었다. 미군의 도움으로 군용 비행기를 타는가 했는데, 미국에 사는 한국 동포가 재정 보증을 서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출국이 금지됐다. 결국 한국에 있던 스매들리 부인이라는 미국인의 도움으로 미군의 돈을 모아 겨우 군용 비행기를 탔다.

이들 선수단의 여정은 김포를 출발해 도쿄, 괌,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들어간 뒤 다시 뉴욕을 거쳐 보스턴으로 가는 루트였다. 3명의 미니 선수단은 샌프란시스코까지 미군 비행기를 바꿔 가며 공짜로 겨우 얻어 탔다.

적도 부근을 지날 때는 냉방이 잘 되지 않는 군용기 안에서 겨울 옷을 껴입고 질식할 정도로 땀을 흘렸다는 웃지 못 할 회상도 나온다. 이때 녹아내린 신발 밑창(손수레 바퀴의 고무를 덧댄 것이었다고 한다)이 혓바닥처럼 너덜거려서 미국 본토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는 스토리가 결국은 책의 제목이 되었다.

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영어 한 마디 못 하던 이들은 세관에 가방을 압수당하는가 하면 미개인 취급을 받으며 곤욕을 치른다. 그때마다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의 도움을 받거나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 목사가 달려와서 도와줘 겨우 여정을 이어갔다.

보스턴에 도착했을 때도 말이 통하지 않는 가난한 나라 선수를 바라보는 현지 기자들의 차가운 시선, 마치 미개인을 보는 듯 노골적으로 깔보는 질문을 서슴지 않았던 취재진에 서윤복이 버럭 화를 냈던 일화도 나온다.

막 2차 대전이 끝났던 시기, 승전국인 미국에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조차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서윤복은 “나라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어렵게 챙겨 입고 온 대마 양복과 광목 와이샤쓰는 거의 걸레나 다름없이 되었고, 늘 볕을 받고 연습했던 우리의 얼굴은 검붉게 타고 수염은 자랄 대로 자라 있었다”고 당시 자신들의 모습을 회상했다.

1947년 4월19일, 그렇게 시작된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세계 각지에서 온 156명의 선수 중에는 유럽 챔피언도 있었다. 전통 깊은 이 역사적인 대회에서 서윤복은 기적처럼 우승을 차지한다.

도로에 응원을 나와 후반 코스에서 서윤복에게 물을 건네 주기로 했던 교포는 서윤복이 선두로 뛴다는 소식에 너무 좋아서 춤을 추다가 그만 물을 다 쏟아버렸다고 한다.

서윤복의 우승으로 보스턴에 있던 교포들도, 한국에서 소식을 전해 들은 국민들도 모두 서럽게 울었다. 당사자인 서윤복과 손기정 감독, 남승룡 코치도 얼싸안고 서럽게 오열했다. 서윤복의 우승은 그해 6월 한국이 IOC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은 미국 서부 지방에서 한국에서 이민 간 농부들을 만난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삼사 십 년 동안 그곳에서 남의 집 살이를 하고 있었다. 주인들은 그들이 나라 없는 백성이라고 깔보았다. 그런데 내가 우승한 기사가 신문에 나가고, 내 얼굴이 텔레비전과 뉴스에 나가자 그들의 주인들도 한국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 ‘혓바닥이 나온 구두를 신고’ 중

가난한 조국을 위해 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고, 신생국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서러움의 눈물을 흘렸던 서윤복의 스토리다.

한국 선수가 시상대 꼭대기에 서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 한류 영향으로 한국 선수라고 하면 다른 나라 선수들이 너도나도 친근함을 먼저 표시하는 시대. 현재 시점에서 볼 때 72년 전 이야기가 더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서윤복과 선수단은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고도 한국으로 돌아올 여비가 없어서 미국에서 다시 모금을 한 다음에야 며칠씩 걸려 겨우 귀국했다고 한다. 한국 육상의 영웅 서윤복은 2017년 6월24일 영면했다.


사진=뉴시스

*‘국대만렙’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자랑스러운 성공 스토리를 담은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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