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유감(有感)] 최동원상 유감(遺憾)
입력 : 2019.11.1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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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지난 5일, 2019년 최동원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이변은 없었다. 예상대로 린드블럼이었고, 예상대로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다.

최동원. 한국 야구가 낳은 최고의 선수이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간 선수다. 투수라는 단어에 이 이상 어울리는 이름은 없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딴 최동원상은 그해 최고의 투수에게 시상하기에는 너무 작은 상이 되어 버렸다. 미국과 일본의 사이영상, 사와무라상과 달리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상이다.

핵심은 권위다. 상에 권위가 있으면 관심은 알아서 따라온다. 반대로 상에 권위가 없으면 다른 노력을 아무리 많이 해도 관심을 받을 수 없다.

최동원상은 왜 권위를 잃었는가. 이는 3가지 부분에서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첫째, 시상하는 주체에 권위가 없다

한국에서 야구와 관련된 모든 권위는 KBO에 집중되어 있다. KBO가 주관하면 작은 상이라도 권위가 생기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금이 아무리 많아도 권위가 떨어진다. 당장 지난해 일구회 대상 수상자가 누군지 기억하는가?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은? 또는 필자가 오늘부터 ‘선동열상’을 만들어 린드블럼을 올해 수상자로 선정하면, 상금으로 1억을 걸어도 그 상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최동원상의 시상 주체는 최동원 사후에 설립된 ‘최동원 기념사업회’다. KBO에서 공식적으로 시상하는 상이 아니라는 점은 큰 약점이다. 왜 처음에 상을 제정할 때 KBO와 충분히 합의 과정을 거쳐 KBO 공식 기록으로 만들지 못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사와무라상도 NPB가 아니라 ‘열구(熱球)’라는 잡지에서 제정한 상이다. 그렇지만 사와무라상은 제정된 이후 스스로 그 권위를 쌓아나갔고, 최동원상은 그러지 못했다.


둘째, 수상자 선정 방식에 권위가 없다

최동원상은 야구 원로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투표해 시상한다. 선정단 한명 한명이야 조금도 권위가 부족하지 않다. 초대 선정단은 어우홍, 김성근, 김인식, 허구연, 천일평, 양상문, 선동열으로 구성되었다. 누가 이들에게 야구로 도전하겠는가.

그러나 최초에 이 7명을 어떻게 모았는지, 사퇴 시 후임은 어떤 식으로 지정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중도에 선동열과 김성근이 빠지고 박영길, 차명석, 강병철이 들어왔는데 왜 하필 이 3명이 새롭게 들어왔는지, 현재 구단에서 활동 중인 인사가 참가해도 괜찮은지 등의 문제는 아무도 모른다. 지난해 선정위원회에서는 새 위원장을 ‘박수로 추인’하기도 했다.


<출처=최동원 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캡처>



수상이 지나치게 소수의 투표로 결정되는 것도 문제다. 물론 선정위원이 많다고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소수의 선정위원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투표가 흘러갈 위험이 있다.

심지어 올해부터는 팬 투표를 30% 반영했다. 팬 투표는 이벤트 경기인 올스타 선정에 알맞은 방식이지 어떤 권위 있는 상을 시상할 때 팬 투표를 한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인기 투표로 변질될 위험도 있다. 어쩌다 이런 발상을 하게 됐는지 몰라도 아무도 문제가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는 게 참 안타깝다.

엄선된 기자단에 의한 투표도 가능하고 미국의 일부 상처럼 선수단이나 감독, 코치진이 투표하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선정위원회를 구성하는 명확한 기준만 있다면 지금과 같은 야구 원로들도 괜찮다. 확실한 건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 수상자 선정 내용이 권위가 없다

최동원상은 2014년에 처음 선정 기준을 발표할 때 대상 선수를 국내 선수로 한정하며 시작부터 빈축을 샀다. 최고 투수를 선정한다면서 국적을 가린다는 발상으로 ‘그해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는 명예를 스스로 부정했다. 2018년부터 외국인 투수들에게도 문호를 넓힌 건 유일하게 칭찬해 줄 만한 일이다.

그나마 국내 선수라도 제대로 선발했으면 조금이나마 나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2015년 2회 시상에서 6가지 수상 기준을 모두 충족한 양현종 대신 다승 1위인 유희관이 수상하며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다. 그리고 3회부터는 누가 수상하더라도 물의조차 일으킬 수 없는 상이 되어 버렸다.

다른 제반 조건이 모두 적절해도 수상자가 부적절하면 상은 권위를 잃는다. 대표적으로 KBO 골든글러브가 그렇다. 납득하기 어려운 시상이 반복되며 스스로 권위를 내버렸다. KBO라는 후광조차 없는 최동원상은 말할 것도 없다.


최동원상이 권위를 찾을 수 있는 날이 올까. 현 시점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KBO가 최동원상을 흡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좋든 싫든 KBO가 시상하기 시작하면 최소한의 권위는 생긴다. 그 권위를 마지막 동아줄로 생각하고 투명하고 일관된 방법으로 납득할 수 있는 수상자를 선정해 나가면 언젠가는 지금까지의 실책이 ‘그 시절의 해프닝’으로 이야기되는 시절이 올지도 모른다. 제발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야구공작소
오연우 칼럼니스트 / 에디터=이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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